삼국유사 기행 (40) 신무대왕과 염장 그리고 궁파

흥덕왕 이후 왕좌를 두고 벌어진 권력 다툼은 치열한 혈육 간의 전쟁으로 대를 이어 길게 진행됐다. 희강왕과 민애왕에 대항해 싸웠던 김균정은 전쟁에 패배해 죽었다. 이때 죽은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은 완도로 도망해 장보고에게 의탁했다.김명이 희강왕을 죽이고 민애왕으로 왕위에 오르자 김우징은 복수전을 결심했다. 우징은 장보고의 도움을 얻어 군사를 일으켜 왕도로 쳐들어가 민애왕을 죽여 복수하고 왕위를 찬탈했다. 그가 신라 45대 신무왕이다.신무왕은 왕좌에 앉은 지 3개월 만에 죽어 최단명 왕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아들이 46대 문성왕으로 즉위했다.신무왕이 군사를 일으키면서 장보고에 남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장보고의 반란을 야기 시켰고, 해상을 주름잡으며 신라의 위상을 떨쳤던 해상왕 장보고를 허무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삼국유사: 신무대왕과 염장 그리고 궁파제45대 신무대왕이 왕자였을 때 데리고 있던 신하 궁파에게 “내겐 함께 하늘을 같이하지 못할 원수가 있소. 그대가 나를 위해 제거해 주고 내가 왕위에 오르면 그대의 딸을 맞아 왕비로 삼겠소”라고 말했다.궁파가 이에 응낙하고 마음과 힘을 함께 하여 군사를 일으켜 서울을 쳐 민애왕을 죽이고 김우징을 왕으로 삼아 신무왕이 되었다.왕위에 오른 다음 궁파의 딸로 왕비를 삼고자 했으나 여러 신하가 극렬히 반대하며 “궁파는 미미한 사람입니다. 왕께서 그 딸을 왕비에 앉게 하시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고 한사코 궁파의 딸을 궁으로 데려오지 못하게 했다. 왕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따랐다.그때 궁파는 청해진에서 군사를 이끌고 있었다. 왕이 약속을 어긴 것을 원망하여 반란을 꾀하였다. 마침 염장 장군이 이를 듣고 왕에게 “궁파가 불충을 저지르려 합니다. 제가 그를 제거하겠습니다”라며 용감하게 나섰다.왕은 기꺼이 허락하였다. 염장은 왕의 명령을 받들고 청해진에 가서 비서를 통해 뵙자 하면서 “저는 이 나라 왕에게 자그마한 원한이 있기에 현명하신 장군에게 붙어 이 몸의 목숨을 보전코자 하나이다”고 거짓으로 귀순의 허락을 구했다.궁파가 이를 듣고 화를 내며 “그들이 왕에게 아뢰어서 내 딸을 내쳤거늘 무슨 염치로 나를 보려 한단 말이냐”라고 오히려 꾸짖었다.염장이 다시 “이는 여러 신하가 말한 바이오. 나는 꾀임에 끼지 않았으니 현명하신 장군은 혐의를 두지 마십시오”라고 간청했다.궁파가 이를 듣고 염장을 불러들여 “그대는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가?” 하고 묻자 “왕에게 거스르는 짓을 했습니다. 장군께 붙어 해코지를 면해보려 할 따름입니다”라고 둘러댔다.궁파는 의심을 풀고 “잘 왔다”며 술을 마시며 즐거이 놀았다. 술이 거나해지자 염장은 궁파의 긴 칼을 뽑아 목을 베었다. 그러자 군사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모두 땅바닥에 엎드렸다.염장은 그들을 이끌고 서울에 이르러 왕에게 보고하였다. “궁파의 목을 베었나이다.” 왕은 기뻐하며 상으로 아간 벼슬을 내렸다. ◆신무왕신라 45대 신무왕의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우징(祐徵)이다. 원성왕의 증손자로 43대 희강왕의 사촌 동생이다.839년 4월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도움으로 서라벌로 쳐들어가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7월에 승하함으로써 재위 3개월 만에 죽어 신라 천 년 역사에 가장 단명한 왕이 되었다.신무왕릉은 경주시 배반동 낭산 동남쪽에 위치해 사적 제18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고분의 지름 15m, 높이 3.4m다. 신라왕릉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것으로 평가된다.죽은 뒤 제형산 서북쪽에 장사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에 의해 이곳으로 비정하고 있다. 무덤의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으로 아무런 시설이 없는 일반민묘 형태로 단순하다.그러나 이 능이 신무왕릉이 아니고, 경주시 충효동의 사적 제21호 김유신 묘 또는 현곡면의 사적 제24호 진덕여왕릉이 양식과 연대로 보아 신무왕릉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왕의 약속우징은 제륭과 김명의 군사들에 밀려 병사 절반 이상을 잃었다. 전쟁 중에 아버지 김균정이 눈앞에서 화살에 관통상을 입어 죽음을 맞았지만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고 살길을 찾아 도망치기에 바빴다.집요하게 추적하는 제륭의 무리를 김양의 군사가 막아 다소 지체하는 시간을 벌었지만 김양도 살을 맞아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우징과 마찬가지로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우징은 아버지 김균정이 상대등에 있을 때 신라의 바다를 수호하겠다며 흥덕왕에게 군사를 빌리러 왔던 장보고에게 흔쾌히 은혜를 베풀었던 것을 생각하고 무작정 완도로 필사의 도주를 감행했다. 우징은 도망하면서 군사적 지원을 얻게 해준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아버지에게 기어이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하던 듬직해 보였던 사내 장보고를 기억해냈던 것이다. 예상대로 장보고는 우징을 내치지 않았다. 패잔병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면서 힘을 추스를 시간을 주었다.그러나 장보고는 의리의 사내이기도 했지만 크게 신라의 충신이었다. 딱히 왕을 죽이는 반란군은 아니었지만 왕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던 우징을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상대등이었던 김균정이 자신을 도와주었던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나라를 위한 일에 국록을 먹는 이가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 장보고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장보고는 그들의 싸움에 깊이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징의 군사들에 대한 지원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선이었다. 그렇지만 의지할 곳이 없었던 우징에게는 큰 언덕이었다. 육상으로 나가면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할 판이었다.와신상담하던 김우징에게 기회가 왔다. 김우징과 왕권을 두고 맞붙었던 김제륭, 김명이 내부적으로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우징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제륭은 희강왕이 되었고, 김명은 상대등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던 그들이 갈등을 일으켰다.김명이 군사력을 장악하고 희강왕을 압박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희강왕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명이 44대 민애왕으로 등극했다. 김우징은 장보고 앞에 앉았다. “내겐 같은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는 원수가 있소.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김명이란 자요”라며 우징은 장보고의 군사력 지원을 부탁했다. “그대가 나를 도와 원수를 죽여준다면 내가 왕이 되어 그대의 딸을 왕비로 삼겠소”라고 약속했다.장보고는 왕을 죽이는 일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백성이자 나라의 녹을 먹는 장군으로 최소한의 의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충한 왕을 몰아내고 자신의 딸을 왕비로 책봉해 줄 왕을 돕기 위해 자신의 수하와 군사를 기꺼이 지원했다. 그리고 그의 숙원을 해결했다. 왕의 약속을 기대하면서.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AI와 함께하는 세상 (47) 세상 변화의 이름 ‘혁신’

‘혁신’은 무작정 ‘새로움’에 국한되지 않는다. 새롭되 세상을 변혁시켜야 할 책무가 상존한다. 새로운 것은 많다. 새 학기에 들어 처음 만난 새로운 담임 선생님, 친구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난 후 처음으로 부대낀 회사 내 선배, 동기들, 수십억 분의 1이란 ‘선택받은 유전자’를 타고 첫 번째로 만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이 모두가 새로움의 연속이건만 이를 두고 혁신이라 지칭하진 않는다. 혁신은 ‘파괴’를 수반한다. 그것도 선한 의미가 선순위 돼야 할 까다로운 조건을 수반한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엔터테이먼트적 요소가 새로움이라면 자율 주행의 ‘편의’와 ‘안전성’은 바야흐로 변혁의 경지로 풀이된다.혁신가에 관한 보호를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 ‘선천적 혁신가’를 폄훼하지 않은 채 개별의 아이덴티티를 존중, 이와 더불어 ‘후천적 혁신 가’를 인내하고 발굴해 낼 수 있는 ‘사회적 시각’이 요구된다. 마치 ‘실리콘밸리’의 그것처럼 말이다. ◆세계적인 혁신가들‘넷플릭스’는 미국 엔터테이먼트 시장의 상징적 기업이다. 회사의 주력은 영화에 인터넷을 가미한 ‘스트리밍 서비스’. 스트리밍이란 상시재생의 기법을 인터넷과 각종 영상에 투영·연계시키는 기법으로 1990년대 중반 대중에 첫선을 보였다.넷플릭스의 전신은 ‘비디오 대여 사업’으로부터 비롯된다. 비디오 산업은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호황을 누렸는데, 이는 당시만 하더라도 파일을 내려받는 방식이 아닌 비디오를 통해서만 영상을 접했던 시류에 기인하다.이 같은 비디오의 몰락과 함께 넷플릭스는 영상과 음성을 디지털의 과정을 거쳐 저장해내는 DVD를 거친 뒤 지금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투신한다.현재 넷플릭스의 이용 가입자 수는 미국 내에서만 우리나라 인구에 버금가는 5천만 명을 육박한다. 세계적으로 추산해볼 땐 전체 인구의 2% 정도에 해당하는 1억5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넷플릭스의 창업주는 ‘리드 헤이스팅’이다. 2010년 애플의 ‘스티븐 잡스’를 제치고 포춘이 선정한 ‘2010년 올해의 기업인 1위’로 선정된 바 있는 헤이스팅에겐 ‘불가사의한 능력자’, ‘골리앗에 맞선 다윗’, ‘DVD의 몰락을 예견한 선견지명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들이 마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넷플릭스의 성공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지칠 줄 모르는 공격성’과 ‘콘텐츠의 오리지널’이다. 넷플릭스는 ‘디즈니’를 공략한다. 디즈니가 무엇인가. ‘애니메이션의 상징’, 이자 ‘패밀리 콘텐츠’의 고유명사와 같은 엔터테이먼트 업체다.넷플릭스는 디즈니와의 공격적 콜라보를 성공적으로 일궈냄으로써 OTT(Over The Top) 기업으로의 용틀임을 시작했다.여기서 OTT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의미하는데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2년에 성사된 이 역사적 협업의 대가로 매년 3천억 원에 이르는 판권이 투입됐다. 판권은 저작권자와의 계약을 성사함으로써 저작자로부터 파생된 저작물의 이용, 복제, 더 나아가 판매 등에 이르는 각종 이익 등을 독점한다는 권리 양식이다.넷플릭스의 아이덴티티는 ‘고유성’으로 대변된다. 보통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장에 잠입돼 있는 콘텐츠를 사들여 재공급해 오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 넷플릭스 개별로의 콘텐츠 범주를 공고히 함으로써 ‘콘텐츠의 오리지널화’를 실현하기에 이른다.넷플릭스는 이용자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클릭 몇 번으로 보고 싶은 영상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러니까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한 ‘편의성 측면’과 더불어 연작의 경우 끊기는 일 없이 ‘원스톱’으로 시청하고픈 소비자 심리를 적극으로 취합, 이로써 넷플릭스는 명실공히 전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30% 이상을 독점함과 더불어 여타 매체와 전 세계인들의 갖은 호평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테슬라’는 태생부터 이례적이다. IT, 벤처문화의 산실로 점철되는 실리콘밸리에 자동차 산업이 태동했다는 자체부터가 우선 혁신이다. 테슬라는 곧 ‘전기자동차의 아이콘’으로 대변된다.전기차는 말 그대로 기름의 힘이 아닌 전기를 통해 동력을 창출해내는 자동차다. 영문명으로 electric vehicle. 실리콘밸리의 팔로알토에 위치한 테슬라는 비교적 짧은 업력(창립 2003년)에도 불구, 미래 학자들 사이에선 ‘4차 산업혁명의 시류에 가장 안착한 자동차’로 평가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창업자 엘론 머스크의 이력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인 엘론의 캐치 프레이즈는 바로 ‘재생’과 IT, 그리고 그의 괴짜 적 천재성이 십분 가미된 ‘우주산업’으로 요약된다.테슬라의 전기 자동차는 오롯이 ‘환경을 위함’이다. 이에 엘론은 친환경의 모토를 제반에 두고 ‘단점의 장점 화’ 전략을 꾀한다. 과거 전기차의 주요 맹점으로 꼽혀온 디자인, 주행거리 등의 요소를 불식시키는 것이야말로 테슬라 전기차의 핵심기술이다.테슬라는 가솔린 자동차가 지니지 못한, 그중에서도 좋은 방향의 시그니처를 여럿 표출해내기에 이른다. 1회 충전에 400㎞ 이상 운행이 가능한 주행거리와 최대출력(4초) 약 100㎞에 달할 만큼의 스피드를 대중 앞에 선보이게 된다.연비는 말할 것 없고, 디자인마저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기존 스포츠카 못지않은 신박함 내지, 스마트하다는 평이다. 혁신에 일장일단은 어불성설이다. 진정한 혁신은 단점마저 장점으로 보완해야 하는 암묵적 의무, 또는 의미를 함의한다. ◆공유경제가 대세이 기업을 논하자면 ‘플랫폼’의 이해가 선결조건이다. 플랫폼의 원초적 어원은 ‘스테이션’, 바로 정거장이다. 4차 산업에서의 플랫폼은 ‘특수 시스템 내부를 구성하는 베이스’를 통칭한다. 다시 말해 총체적 요소는 제반에 두되, 이에 파생된 시스템적 부산물을 연계, 아울러 개발해내는 개념이다. 조금 더 쉽게 보자면 일종의 ‘브릿지’로 설명될 수 있다.택시 한 대 없이 세계 최대 규모의 택시회사로 성장한 아이러니한 기업 ‘우버’를 드러내기 위한 사설이 길었다. 우버는 플랫폼 기업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 차량과 그 차량이 필요한 승객을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브릿지 서비스’를 제공한다.올해로 창업 10년째를 맞은 우버. 창업자 트레비스 캘러닉은 벤처의 기본소양 중 하나로 꼽히는 ‘공격성’을 담뿍 드러내고 있다. 사실 개인적 부침에 설왕설래를 거듭 중이지만, 어찌됐건 ‘공유경제’의 기조에는 그 누구보다 마초 적 기질을 띈다. 참고로 우버의 경제적 가치는 한화 기준 약 75조 원에 육박한다.공유경제에선 모든 물품을 ‘사유의 의미’가 아닌 ‘공유의 모토’로 둔다. ‘렌트’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협업’, ‘협동’의 기조로, 예를 들어 어떠한 서비스건 개인이 보유하지 않고 자신이 쓸 만큼의 (본인 기준) 정량만 빌려 쓰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는 (서비스를) 더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우버는 곧 ‘공유경제’로 빗대어진다. 기존의 택시산업 중 파생되는 (사납금 등) 높은 비용을 일정 부분 해소시킨다. 통상 택시업계에 부여되는 ‘택시 번호판 총량 규제’에 묶여 발생되는 지대를 우버는 피해간다.이 지점에서 분명 ‘규제혁파’냐, 또는 ‘규제회피’냐에 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을 사실 하나, 우버는 렌트의 개념을 두고 사유가 아닌 공유의 프로세스를 강조함으로써 우버 스스로의 시장점유율을 켜켜이 쌓아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구획과 범주에서 벗어나야말썽쟁이였다. 천재적 기질은 분명했으나 그러한 기질이 자칫 ‘이단’으로 치부될 리 충분해 마지않을 그였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세계 유수의 IT업체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지만, 자신의 여자 친구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복수 프로그램’을 생성하는가 하면, 어렵게 입학한 일류대학을 중퇴해버리는 등 통상의 과정을 벗어난 특이한 궤적을 보인 그였다.하지만 사회는 그를 특이하게 보지 않았다. 되레 특별한 시각으로 지켜본다. 그의 저력을 꽃 피우고자 하는 투자자와의 연계에 여념 없고, 그가 믿는 ‘맹신’을 ‘혁신’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천재성을 결코 유리되게 하지 않았다. 복수의 시스템을 선한 의미의 혁신적 기술로 업그레이드시킨 셈이다.시가총액 700조 원에 이르는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은 이렇게 탄생했다. 자칫 궤변으로 간과될 뻔한 그의 괴짜적 기질에 투자자 ‘피터 틸’은 배팅했고, 개인사에 국한됐던 어느 프로그램을 실리콘밸리는 ‘파괴적 혁신’이라 여겨 발굴해냈다.혁신에 이데올로기와 민족성은 투영되지 않는다.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역설하던 시기는 이미 흘렀고, 파괴적 새로움에 ‘민족’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주창하던 구태란 이젠 물러나야 할 시점이다. 혁신은 다만 초월적이어야 하며, 혁신가는 단지 구획과 범주로 나뉜 채 선별돼서도 안 될 노릇이다.혁신의 기로에 섰다. 여기엔 두 가지 갈림길이 보인다. ‘리더의 험로’와 ‘추종자의 꽃길’. 당신은 과연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요가, 매트 한 장만 있으면 ‘OK’…잡념은 잠시 비우고 천천히 호흡 내뱉어봐요

<편집자 주>100세 시대에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운동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에도 도움을 주는 등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그러나 ‘운동을 시작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달리 행동으로 옮기긴 어렵다. 어떤 종목이 나에게 맞는 운동인지, 시작에 따른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등 다양한 고민이 시작을 가로 막기 때문이다.이에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체육’에 대해 소개해본다. 매트 한 장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생활체육이 있다.바로 ‘요가’다.요가는 명상과 호흡, 스트레칭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심신 수련 방법이다.2000년대부터 연예인들이 다이어트나 미용을 위한 요가 비디오를 내놓으면서 요가는 대중적인 운동이 됐다.과거 요가의 목적이 심신 수련이었다면 최근에는 다이어트 등 내적과 더불어 외적으로 자신을 가꾸기 위해 많은 시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요가가 각광받는 이유현대 사회에서 요가가 주목받는 이유는 몸을 건강히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대구시요가협회에 따르면 작업적 습관적 쏠림상태를 확인해서 요가 ‘아사나’로 반대적 동작을 통해 균형이 회복된다. 유연성과 근력 강화, 통증 완화,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하다. 심신수련을 함으로써 건망증, 치매를 예방하며 절제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육체적, 정신적 건강상태를 유지한다.아이들의 경우 유연성을 키워줘 키 크는 데 도움이 되고 바른 자세 습관을 길러질 수 있다.전신 스트레칭으로 노폐물이 제거 되고 소화력이 좋아지며 다이어트에도 탁월하다.집에서 할 수 있는 요가 동작에는 ‘아사나’가 있는데 △받다 코나 아사다(나비 자세) △마르자르 아사나(고양이 자세) △아르다 마첸드라 아사나(반물고기신 자세) 등이 대표적이다.◆매트와 편한 복장이면 ‘OK’요가는 요가매트와 편한 복장으로 쉽게 배울 수 있다. 요가매트는 관련 상점에서 3~5만 원 사이에서 구매할 수 있다. 요가복은 따로 필요 없다. 편안한 복장이면 된다. 요가를 시작하려면 꾸준함이 중요한데, 가까운 요가원을 찾으면 된다. 교습비가 부담스러우면 집 근처에 있는 주민센터의 ‘요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쉽게 따라 해봐요①나비 자세를 하는 방법은 양 발바닥을 맞대고 앉아 허리를 곧게 편다. 숨을 들이쉬며 양손으로 발을 잡고 상체를 숙이면서 숨을 내쉬고 양다리를 지그시 눌러 주면 된다. 끝으로 상체를 최대한 숙여 이마를 바닥에 댄다. 자세가 완성되면 편안하게 복식호흡을 유지 하면 된다.나비 자세는 생식, 비뇨기 계통의 질환에 효과적이다. 또 골반과 무릎관절의 유연성을 향상시켜 준다. 여성의 경우 자궁 주변의 율혈을 풀어주기 때문에 생리 불순과 생리통에 좋다. 골반, 복부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며 순환을 촉진해 피로를 풀어준다. ◆쉽게 따라 해봐요②고양이 자세의 시작은 양 무릎을 꿇고 양손을 바닥에 대고 엎드린다. 숨을 들이쉬며 허리를 아래로 끌어당기고 꼬리뼈를 위로 들어 올린 후 시선은 위로 준다. 숨을 내쉬면서 복부와 등을 최대한 위로 동그랗게 말아 올리고 고개를 숙인다. 이때 복부 수축이 핵심이다.고양이 자세의 효능 및 효과는 소화기와 호흡기 기능을 향상시켜 준다. 목과 어깨의 피로를 풀어주고 척추의 탄력성을 증대시켜 오십견을 예방하는 데도 좋다. ◆쉽게 따라 해봐요③왼다리는 무릎을 구부려 바닥에 놓고, 오른다리는 왼다리 바깥쪽에 둔다. 무릎은 중앙에 오도록 한 다음 양손으로 바닥을 살짝 짚고 허리를 곧게 편다. 이후 숨을 들이쉬며 오른쪽으로 상체를 비틀고 왼손을 위로 뻗어 올린다. 이때 양쪽 엉덩이가 바닥에 뜨면 안 된다.숨을 내쉬면서 왼팔을 오른다리 바깥쪽에 오도록 하고 오른손은 몸의 뒤쪽 바닥을 짚는다. 팔과 다리를 밀착시키면 완성된다.반물고기신 자세는 척추 신경계와 인대를 마사지해 주며 신경, 세포, 혈관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변형된 척추를 교정하는 데 좋다. 또 장 내 가스를 제거하고 변비 예방에 좋다. 등과 옆구리 선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대구시요가협회를 아시나요대구시요가협회는 지역 요가인을 대표하는 단체로 2015년 대구시체육회 회원종목단체 ‘정회원’으로 가입했다.지난 6월1일 최경애 회장이 취임하면서 요가인의 저변확대와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지, 덕, 체를 겸비한 요가 전문인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협회는 매년 대구시장기 생활체육 요가대회, 대구시민생활체육대축전 요가대회를 개최하는 등 요가 저변 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특히 최 회장을 중심으로 올해 요가인의 날을 새롭게 신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지난 10월13일 제4회 대구시장기 생활체육 요가대회와 겸해서 열린 요가인의 날은 처음으로 야외(동성로 야외무대)에서 열려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또 내년에 열릴 예정인 대구시장기 생활체육 요가대회를 전국대회로 승격시키기 위해 실무진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협회는 대구시요가회장기 요가 대회를 신설해 지역 요가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계획이다.공정한 심사를 위한 노력도 눈길을 끈다.협회는 2019년부터 요가대회의 공정한 심사를 위해 요가 1급 심사연수회를 개최해 대회의 질을 높이고 있다.◆대구시요가협회 최경애 회장 “요가를 하고 싶다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요가원이나 주민센터, 스포츠센터를 찾으면 됩니다. 꾸준함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요가를 처음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구시요가협회 최경애 회장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대답했다.요가는 다양한 동작과 명상수행을 통해 마음과 몸의 균형을 추구하는 수련이자 운동이다. 요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으로 몸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시대에 요가를 통해 육체의 틀어짐을 바로잡아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요가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최근 요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진입장벽이 높을 것이란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최 회장은 “요가원 등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본인과 가장 잘 맞는 환경을 찾는 것이 첫걸음”이라며 “요가복이 없더라도, 개인 매트가 없더라도 운동할 수 있는 복장을 갖췄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또 요가가 여성만의 운동이라는 편견이 가장 크다.이 같은 편견을 깨고자 지난 10월 대구시요가협회는 시내 한복판에서 제4회 대구시장기 요가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이번 대회 우승자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 처음으로 야외에서 진행된 대회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대회를 준비한 최 회장은 “생활체육으로서 요가의 저변확대를 위해 야외에서 진행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했는데 성공적이었다”고 강조했다.많은 요가인들은 요가의 매력에 대해 명상수행을 통해 마음과 몸의 균형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남녀노소 제약 없이 어디서든 요가 매트 한 장으로 운동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매력 포인트다.최경애 회장은 “요가는 온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아들, 딸, 손자, 손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같이 할 수 있다”며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요가로 심신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요가의 매력에 한 번 빠져보길 바란다”고 말했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얽히고설킨 족보 속 혈육간의 ‘피의 전쟁’ 끝나지 않은 ‘막장 드라마’ 배신 뒤엔 또 다른 칼 끝이

일연스님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역사적 사실들을 모두 기록하지는 않았다. 왕력편에서 신라 왕들을 시대별로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기이 편에서는 왕조사에 대해 소개하면서 흥덕왕 이후 희강왕과 민애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헌덕왕과 흥덕왕이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신라하대 왕위를 두고 일어난 비사의 출발을 보였다. 흥덕왕에 이어 희강왕은 민애왕과 손을 잡고 삼촌 균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함께 뜻을 모았던 민애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모두 원성왕의 직계 후손들이지만 워낙 얽히고설킨 싸움을 벌여 혈육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후손으로 부끄럽기까지 하다.삼국유사 기록에는 없지만 역사에서 삭제할 수 없는 흐름이라 희강왕과 민애왕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 쓰는 삼국유사에서 다루어본다.◆희강왕희강왕의 성은 김, 이름은 제륭이고 시호는 희강(僖康)이다.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증손자로 조부는 원성왕의 셋째아들인 김예영이다. 아버지는 이찬 김헌정이다. 비는 흥덕왕의 동생 김충공의 딸인 문목부인 김씨이다. 6촌 누이를 비로 맞이한 것이다. 자식으로는 제48대 경문왕의 아버지인 아찬 김계명이 있다.희강왕은 836년 12월에 당숙인 흥덕왕이 아들 없이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당시 희강왕은 숙부인 상대등 김균정과 왕위 계승을 위해 전쟁을 벌였다. 시중이던 김명, 아찬 이홍과 배훤백 등이 희강왕을 지지해 승리했다.아찬 김우징(제45대 신무왕)과 김예징, 김양 등은 김균정을 지지했다. 김우징은 적판궁에서 아버지 김균정을 왕으로 세우고 김양 등과 함께 왕위 쟁탈전에 나섰다.김명과 이강 등은 적판궁을 에워싸고 공격해 김균정을 죽이고 제륭을 희강왕으로 옹립했다.그러나 희강왕의 재위 기간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실 내부의 갈등은 더욱 확대되었다. 김균정의 아들인 김우징은 가족들과 함께 황산진으로 도망쳐 배를 타고 청해진, 지금의 완도로 건너가 장보고(張保皐)에게 의탁했다. 김균정의 매제인 아찬 김예징도 아찬 김양순과 함께 김우징의 세력에 합류했다. 한기로 도망친 김양도 산속에 숨어 세력을 모으며 복수를 꾀하다 청해진으로 와서 합류했다.왕실 내부의 갈등으로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838년(희강왕 3) 정월에 상대등 김명과 시중 이홍 등이 군사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켜 희강왕의 측근들을 죽였다.희강왕은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을 알고 궁중에서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희강왕은 소산에 매장되었다. 오늘날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에 있는 희강왕릉은 사적 제22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희강왕이 죽은 뒤에는 상대등 김명이 왕위에 올라 제44대 민애왕이 되었다. 그는 김충공의 아들로 희강왕의 왕비인 문목부인과는 남매 관계로 희강왕과는 처남 매부가 된다.◆민애왕민애왕의 성은 김, 이름은 명(明), 시호는 민애(閔哀)이다. 신라의 제38대 원성왕의 증손자로 조부는 원성왕의 맏아들인 혜충태자 김인겸이며, 부친은 제39대 소성왕과 제41대 헌덕왕, 제42대 흥덕왕의 동생인 대아찬 김충공이다. 어머니는 귀보부인 박씨이며, 비는 윤용왕후 김씨이다.제43대 희강왕의 왕비인 문목부인, 제47대 헌안왕의 생모인 조명부인과는 남매 사이이다. 제40대 애장왕과는 사촌 사이이다.민애왕은 흥덕왕 때인 835년 자리에서 물러난 김우징(제45대 신무왕)을 대신해 시중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836년 음력 12월에 흥덕왕이 적장자가 없는 상태에서 죽자 이홍, 배훤백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희강왕을 왕으로 세웠다.민애왕은 아찬 이홍과 함께 적판궁을 에워싸고 김우징 일파를 공격해 김균정을 죽이고 희강왕을 왕위에 앉혔다. 이러한 공으로 희강왕이 왕위에 오른 뒤에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하지만 838년(희강왕 3) 음력 정월에 시중의 자리에 있던 이홍과 함께 다시 군사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켜 희강왕으로 하여금 목숨을 끊게 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민애왕이 희강왕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자 청해진(지금의 완도)의 장보고에게 피신해 있던 김우징과 김예징, 김양 등은 장보고를 설득해 군사를 일으키게 했다. 장보고는 친구인 정년(鄭年)에게 5천의 군사를 주어 반란을 일으켰다.민애왕은 이찬 대흔과 대아찬 윤린, 억훈 등을 보내 김양의 군대를 막도록 했으나 연이어 크게 패했다. 결국 민애왕은 측근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 월유택으로 도주했으나 병사들에게 잡혀 목숨을 잃었다. 이홍도 가족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쳤으나 붙잡혀 죽음을 맞았다.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사리호(보물 제741호)에는 민애왕의 행적을 나타낸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민애왕은 839년 음력 1월23일에 죽었고 당시 나이는 23세였다고 한다. 삼국유사 ‘왕력’ 편에는 음력 1월22일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민애왕이 죽은 뒤 김우징이 제45대 신무왕으로 왕위에 올랐고, 신하들은 예를 갖추어 민애왕의 장사를 지냈다. 민애왕의 장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데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의 고분이 민애왕의 왕릉으로 전해지며 사적 제190호로 지정되어 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원성왕 후손 처남 매부간의 전쟁신라 43대 희강왕과 44대 민애왕은 원성왕의 증손자로 각자 할아버지가 친형제인 6촌 간이다. 또 희강왕의 비는 민애왕의 여동생이어서 둘은 처남 매부 사이다. 이점은 김유신과 김춘추의 관계와 같다.처남과 매부가 손을 잡고 희강왕 제륭의 삼촌인 김균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를 때까지는 사이가 좋았다. 민애왕은 희강왕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을 인정받아 상대등의 벼슬에 올라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서의 실권을 잡았다.민애왕은 아버지 충공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자, 늘 왕권에 대한 미련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기회는 꿈꾸는 자의 몫인 양 희강왕의 정치적 타락으로 쉽게 찾아왔다.민애왕 김명이 상대등에 올라 실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 그의 여동생이자 왕비였던 문목왕후가 그를 찾아왔다. 희강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여색에 빠져 자기를 천대한다는 것이었다.김명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아찬 이홍과 함께 군사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켰다. 모든 병사들을 움직이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김명에게 궁궐을 접수하는 일은 여반장이었다.희강왕은 제대로 보고조차 받지 못하고, 불길에 휩싸이는 자신의 침소를 보아야 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반란의 우두머리가 처남 김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저히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희강왕은 숨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민애왕도 왕좌에 올라 3년을 버티지 못하고, 해상왕 장보고의 군사를 등에 업고 쳐들어오는 김우징과 김양의 칼끝을 피하지 못하고 전쟁통에 시해됐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진실을 목숨으로 보여준 비극이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어젯밤 한숨도 ‘못잠’ 습관만 바꿔도 ‘꿀잠’

분명 이 같은 논리가 맞아떨어진다면 ‘약령 시장’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잠이 보약’이라던데, 사람의 인생을 80년으로 잡고 하루 6~7시간의 수면을 취한다고 가정해 볼 때, 전 인생을 통틀어 3.2/1 정도의 시간을 우리는 수면으로 할애하는 셈이다.하지만 진정 보약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한다면 수면의 정체성부터 재정립해봐야 한다. 잠이란 그냥 자는데 그침이 아니다. 어떻게 자는데서 건강의 성패를 좌우한다. 수면은 살아있는 상태로 ‘의식이 상실’ 됨을 의미한다.미국의 소설가 로버트 앤슨 하이라인은 잠에 관해 “행복은 충분한 수면으로 이뤄져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렘수면과 논 렘수면통상의 수면을 ‘오르토’라고 명시한다. 오르토는 영문 표기상 ‘표준’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오르토 수면은 ‘정형화된 표준 잠자리 방법’을 뜻한다. 진정한 오르토 수면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선 혈압과 맥박, 호흡이 정상수치의 범주 내 들어있어야 한다. 의학적으로 정상혈압은 120mmHg 미만, 정상맥박은 분당 60~100회, 정상호흡은 맥박 4회당 1회로 기준 한다.또 다른 수면의 범주로는 ‘렘수면’과 ‘논 렘수면’이 있다. 렘수면은 쉽게 말해 ‘얕은 잠’으로 설명된다. 자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깨어있음도 아닌 상태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숙면도 선잠도 아닌 터라 ‘패러독스 슬리핑’, 혹은 ‘빠른 눈동자 슬리핑’이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논 렘수면은 렘수면의 반대로 ‘정상 수면’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는 ‘오소 수면’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오소란 ‘ortho sleep’의 첫 글자를 뗀 약어다. 말 그대로 숙면을 취하다 보니 대뇌의 활동이 미약하다. 대뇌는 전체 뇌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주요한 부위로써, 언어와 기억 등을 관장하는 기관이다. ◆불면증 해결책 없을까프랑스의 혁명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지독한 불면증 환자였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선천적으로 약했던 나폴레옹의 위장상태가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던 나폴레옹은 거북한 속사정으로 말미암아 밤잠을 설치는 일이 예사였다고 전해진다.나폴레옹은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역발상적 측면’을 파고든다. 숙면을 위한 노력 대신 수면 시간을 줄여 그 시간에 맞춰 몸의 내성을 키워낸다는 것인데, 쉽게 말해 잠자지 못하는 것을 그냥 못 자는 대로 몸에 맞춰 렘수면은 논 렘수면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나폴레옹 수면법’ 이다.이 수면법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이상적 수면 시간으로 일컬어지는 8시간을 목표로 잠을 청해본다. 잠이 오건 말건 눈을 붙이고 버텨보는 것이다. 다음날에는 아예 수면을 취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간헐적 단식’과 시간상 차이만 있을 뿐 방식은 얼추 비슷하다.그 다음날부터 5일까지는 기본 8시간에서 2시간을 더 줄인 6시간으로 수면 시간을 맞춘다. 전날 잠을 자지 않았으니 어쨌든 수면은 가능해질 터다. 이후 일주일이 지나면 6시간에서 또 2시간 줄인 4시간을 최종 수면 시간으로 정한다. 여기서 잠깐. 이 과정에서 쪽잠, 자투리 잠을 청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열흘이 흐른 뒤에는 또 한 번의 밤을 지새워본다. 이번이 (밤을 지새운 지) 두 번째니 원론적으론 (잠을 자지 않는 게) 훨씬 용이해질 터. 이다음부터는 하루에 4시간의 수면 시간을 공고히 함과 동시, 일주일에 한 번은 간헐적 수면 거부를 지속한다. 이렇게 몸을 단련(?)하다 보면 8시간의 절반인 4시간만 자도 정상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우리나라 불면증 인구는 성인 기준 10명당 2~3명꼴로 나타난다. 특수한 상황 속 간헐적 불면이야 별문제 있겠냐만, 이것이 만성화로 발전된다면 생활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무서운 질병으로 대두될 공산이 크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의 수는 2013년에 비해 약 30% 이상 증가했다.단순 수면제에 의존해서는 근원적 문제해결이 될 리 만무하다. 수면제의 근본은 ‘마취’에 있으며, 이를 소량으로 투여할 시 ‘진정작용’을 일으킨다. 수면제의 이용은 최단 시간에 최소량으로 한정해야 함이 약리적 상식이다. 수면제 과다복용 시 최악의 경우 일시적 심정지로 인한 뇌사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불면 치료는 고질적이지만 않다면 간단한 생활습관의 개선으로도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 우선 생체리듬 유지와 혈액순환을 위한 ‘유산소 운동’은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잠자리에 들기 몇 시간 전 미온수로 샤워를 해보는 것도 불면증 완화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기본적이지만 수면 시간 이외 자투리 잠자리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불면증의 근원적 개선을 위해선 ‘습관’의 변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숙면 여부와 별개로 누워 있는 시간은 반드시 통일하도록 하자.이쯤에서 수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수면 유도 식품’의 종류를 공유해보겠다.첫 번째로는 ‘따뜻한 우유’가 있다. 이는 우유에 포함돼있는 ‘트립토판’으로 설명되는데, 트립토판이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하나로, 섭취를 통해서만 흡수되는 필수 중의 필수 아미노산이다.두 번째는 ‘바나나’. 이는 바나나 속 포함돼있는 ‘멜라토닌’과 ‘당분’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멜라토닌은 뇌에서 분출되는 생체 호르몬으로 말미암아 불면증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이며, 당분이란 단맛이 포함된 물질을 통칭하는 용어다.이 밖에도 호두, 대추, 체리, 아몬드, 키위, 호박 등이 숙면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반대로 고기와 토마토, 브로콜리 등은 숙면에 방해가 되니 잠자리 직전엔 피하는 것이 좋다. ◆바른 자세가 깊은 수면으로위에서 언급했듯 숙면의 선결 조건은 ‘좋은 습관’이다. 우선 (잠자리의) 자세가 중요하며 베개와 이불 등의 (잠자리를 위한) 부가 선택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습관을 바꾸면 잠자리도 분명 바뀐다는 사실, 간과해선 안 된다.수면의 가장 이상적 자세는 몸을 위로 향하는 올곧은 자세다. 하지만 이는 오르토 수면이 가능한 일반인의 기준이고,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은 옆으로 돌아누운 자세가 오히려 숙면에 도움이 된다. 이는 코골이의 원인과 직결된다. 코골이의 주 사유가 바로 ‘기도 막힘’ 으로써 발생하기 때문.베개의 높낮이도 숙면에 큰 영향을 끼친다. 베개는 곧 ‘수면 자세의 바로미터’로써 만약 베개가 기준보다 높거나 낮다면 목 뒤편의 신경을 압박, 손·발 저림을 야기하고, 더 나아가 코골이의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올바른 베개로 올곧은 수면을 취할 시 ‘인대 노화’를 일정 부분 방지함은 물론 목 디스크 예방의 효과 또한 거둘 수 있다. 의학적으로 이상적인 베개의 높이는 성인 남성 기준으로 5㎝, 여성은 3㎝로 본다. ◆성장 중인 수면산업수면도 곧 ‘산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생의 3분의 1 가까이를 잠으로 소요하다 보니, 이에 파생된 수면 산업의 용틀임은 어찌 보면 섭리와도 같다.유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수면산업 규모를 약 2조 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곧 잠자리 관련 산업이 ‘미래 주요 먹거리 프로젝트’의 하나로 급성장 중이라는 방증이다.가까운 미국의 경우에도 약 50조 원에 가까운 수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11년 이래 (수면산업에 관한) 가일 층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중국은 2010년부터 연간 25%에 가까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해가고 있다.맥주와 소시지의 나라 독일에서도 숙면의 중요성을 사회적 모멘텀으로 설정, 침구류 산업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침대산업) 10% 가까운 상승폭을 기록했다는 것이 이를 단박에 증명한다.고전의 광고 카피 중 ‘침대는 과학’이라는 문구가 있다. 사실 앞선 연재에서도 몇 차례 다루긴 했지만, 그때는 주체가 아닌 아류로써의 인용이라 허투루 넘겼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주인공이다. 침대는 분명 과학이었고, 그 과학적 논리 속 오롯이 숙면을 취하는데 집중하는 따뜻해마지 않을 밤이 되길 바란다.슬픔을 해소하는 세 가지 방법. 한 잔의 따뜻한 커피와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맡기는 여유, 그리고 세상 둘도 없을 따스한 수면이다.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왕도 없는 자궁근종치료…제대로 알고 선택…크기·위치 고려해 근종제거·자궁적출 등 결정

-박원규 대구시의사회 부회장(SM 영상의학과의원 원장) 자궁근종 진단을 받고 병원을 찾았다가 “임신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거라면 자궁을 떼어내자”는 이야기를 듣고 상심에 빠진 환자들을 볼 수 있다. 수술대신 다른 방법은 없는지, 꼭 치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증상이 없거나 미미한 경우는 굳이 치료를 하지 않고 경과 관찰만 해도 된다.또 수술을 대신할 수 있는 치료법도 있다. 인터넷에서 자궁근종의 치료에 대해 검색을 하면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결정하기가 힘들다는 이들도 있다. 호르몬 치료로 출혈을 예방하기도 하지만 일시적인 방법이며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는다.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수술로 병변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최근 수술을 기피하는 경향이 늘고 있어 보존적 치료가 많이 이용된다. 수술적 치료방법에는 자궁을 모두 제거하는 ‘자궁적출술’과 근종만 제거하는 ‘근종절제술’이 있다.자궁을 보존하려는 여성들이 많아 보존적인 치료가 많이 발달하고 있다. 보존적 치료에는 ‘하이푸’와 ‘자궁동맥색전술’ 등이 대표적이다. 하이푸 시술이란 체외에서 방출된 초음파를 돋보기처럼 한 점에 집중해 목표한 지점의 온도를 상승시켜 종양세포를 파괴하는 치료법이다.일반적인 수술과 다르게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 시술 후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초음파 및 MR 유도 하에 시술을 할 수 있으며 MR 유도로 시행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나 국내에서는 대부분 초음파로 하는 경우가 많다.크기가 작은 단발성 근육 내 자궁근종의 경우 비교적 안전하게 시술할 수 있으나 크기가 크거나 다발성인 경우 치료시간이 늘어나는 단점이 있다.또 주위 장기조직과 인접하거나 움직이는 경우 주위조직에 손상(화상)을 입히는 경우가 있다.위치, 크기, 개수에 따라 시술에 제한이 많으며 고가의 치료비도 환자에겐 부담이 된다. 또 다른 보존적 치료인 자궁근종 색전술의 원리는 근종으로 가는 혈관을 막아 영양공급을 차단해 서서히 괴사키는 것이다.색전술의 장점으로는 근종의 위치, 크기, 개수에 상관없이 치료가 가능하며 다발성인 경우도 한번 시술로 모두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이다.자궁을 보존할 수 있으며 시술비용이 저렴하고 재발 가능성도 낮다.또 전신마취가 필요 없고 개복을 하지 않아 합병증이 드물며 회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색전술의 시술시간은 1~2시간 정도이다.대부분 시술 다음날 퇴원을 할 수 있다.전 미국무부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금요일 자궁동맥 색전술을 받고 다음주 월요일 백악관 회의에 참석을 했다.이로 인해 전 세계에 색전술의 빠른 회복성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단기 및 장기 추적결과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로 인정을 받아 2008년 미국산부인과할학회에서 ‘레벨 A’ 치료로 지정되기도 했다.자궁전절제수술과 동일한 수준으로 치료효과도 비슷하다는 점을 잘 나타낸다. 자궁을 적출하면 여성성 상실로 인한 상실감과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최근에는 만성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보고도 있다.미국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의 연구 결과 자궁을 절제한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 등에 더 잘 걸릴 수 있고 특히 심장병 발병률이 3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자궁적출술은 다른 치료를 먼저 한 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미혼이거나 임신을 원하는 경우는 근종만 제거하는 근종제거술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한다.근종만 제거하기가 어렵다면 색전술 등 다른 방법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자궁근종 치료는 너무 다양해 ‘왕도(王道)’가 없으므로 크기나 위치, 개수 등을 고려해 근종제거술, 자궁적출술, 색전술, 하이푸 등의 치료법 중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안전한 방법을 여러 전문의와 잘 상의해서 결정을 하는 것이 좋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뇌졸중 예방관리…기온 급격히 떨어지는 겨울철, 사망률도 급증

뇌졸중은 흔히 중풍이라고 불리는 ‘뇌혈관질환’이다. 뇌에 혈액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이차적인 뇌 손상이 오고 이에 따른 신체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이다. 주요 증상으로는 갑자기 발생하는 발음 어눌 또는 언어장애(하고 싶은 말이 잘 나오지 않거나 엉뚱한 말이 나오는 증상), 한쪽 팔다리 마비, 안면근육 마비 등이 있다. 뇌졸중이 다른 질환과 구분되는 특징으로는 첫째, 노화와의 연관성으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발병할 확률이 증가한다.둘째, 한 번 발생하면 완전히 회복하기가 힘들어 3분의 1 정도는 후유장애로 인해 일상 활동에 복귀하지 못하거나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다행스럽게도 80% 정도에서는 관리를 통해서 재발 또는 발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과 같은 겨울철이면 외래에 방문하는 뇌졸중 환자 또는 보호자들이 흔히 질문하는 내용이 있다.겨울이 되면 뇌졸중이 더 잘 생기는지,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방한용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추울 때는 바깥 외출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등의 걱정을 쏟아낸다. 정말 환자나 보호자들이 걱정하듯이 추운 겨울철은 뇌혈관 질환에 치명적일까? 이론적으로는 갑자기 추운 환경에 노출되면 일시적인 혈압 상승이 동반될 수 있다.이러한 혈압 상승은 건강한 뇌혈관을 가진 이들에게는 영향이 적으나 뇌혈관이 약해져 있는 경우 뇌졸중의 위험성이 커진다. 또한 이러한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이 된다면 더더욱 안전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이러한 연관성은 최근 발표된 월별 뇌혈관질환 사망률에 대한 통계청 통계자료에서도 잘 나타난다.주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겨울철과 일교차가 큰 3월에 사망률이 높아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철을 어떻게 보내면 될까?뇌졸중이 다른 질환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역시 예방이 가능한 질환이라는 점이다.따라서 ‘심뇌혈관질환 예방 관리 수칙’을 명심하고 실천하면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겨울철에는 무리한 외부 활동보다는 실내 활동이 추천되며 특히 이른 새벽이나 아침에 평소와 같이 바깥에 나가서 운동을 하는 등의 활동은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추운 겨울 집안에서만 웅크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규칙적인 실내 활동 및 따뜻한 낮 시간을 이용한 외부 활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튼튼한 뇌혈관을 유지해 뇌졸중으로부터 자유로운 겨울을 보내보자. ◆심뇌혈관질환 예방·관리 9대 생활수칙 1. 담배는 반드시 끊는다.2. 술은 하루에 한두 잔 이하로 줄인다.3. 음식은 싱겁게 골고루 먹고, 채소와 생선을 충분히 섭취한다.4. 가능한 한 매일 30분 이상 적절한 운동을 한다.5. 적정 체중과 허리둘레를 유지한다.6. 스트레스를 줄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자.7. 정기적으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을 측정한다.8.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을 꾸준히 치료한다.9. 뇌졸중, 심근경색증의 응급 증상을 숙지하고 발생 즉시 병원을 찾는다. 도움말=경북대병원 신경과 황양하 교수(대구·경북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구미 불교문화의 관광자원화…천년세월 우리 삶에 스며든 불교…민족의 맥을 잇는 문화가 되다

한 스님은 “우리나라에서 불교는 종교이기도 하지만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다”고 말한다.어디 여행이라도 가려면 가장 먼저 그곳에 유명 사찰이 있는지를 알아본다. 물론 오랜 역사를 가진 고찰에는 볼만한 문화재가 있기 때문이다.그밖에 의성 고운사처럼 몇몇 사찰은 평소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사찰 음식을 장만해 대중들에게 공양하기도 한다.또 마을의 어느 할머니나 어머니는 ‘무슨 무슨 보살이네’라는 소리를 듣는다.그만큼 불교는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불교문화의 이해구미의 불교를 연재하면서 중간 중간 불교문화를 소개했다.인도 불교에서 시작된 탑의 유래와 구미에 남아 있는 탑의 형태, 구미 불교의 종단 변화, 불교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용의 의미, 일주문과 천왕문의 의미, 금오산의 사찰 분포 형태, 불상의 구별방법과 보살과의 차이점, 불상마다 다른 손 모양(수인) 등이 그것이다.종교와는 별도로 유교를 유교문화, 이슬람을 이슬람문화라고 부르듯이 불교를 불교문화라고 통칭해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종교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하지만 불교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불교를 신앙해서 될 일만은 아니다. 우린 문화를 어려서부터 생활 속에서 체득하기도 하지만 학교 등에서 배운다.불교문화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불교문화를 이해하려면 역시 배워야 한다.구미의 대표적인 농악인 무을농악이 태어난 곳이 무을 연악산 자락의 수다사란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불교는 1천600여 년 이상 우리의 삶 속에 함께하면서 특유의 어울림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발전시켜왔다.그래서 불교문화를 이해해야만 불교문화와 결합한 우리의 전통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불교문화의 진정한 저력이다.‘알면 알수록 더 많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불교문화를 알아두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찰의 전각과 불상 등 문화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불교문화의 관광자원화지난 1일 광주불교사찰순례단 40여 명이 제주를 찾았다.이들은 관음사와 천왕사 등 제주불교 성지순례 길을 탐방한 후 제주불교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체험했다.이들이 도보로 걸었던 길은 제주가 제주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 만든 불교 성지순례 길, 일명 ‘절로 가는 길’이다.제주는 2012년 ‘지계의 길’을 시작으로 6개의 불교순례 길을 조성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최근 관광객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제주시는 도보순례 길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제주불교순례 길은 마음의 혼돈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무아’의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제주시는 이를 위해 보시의 길(대원정사~해륜사, 42.9㎞), 지계의 길(관음정사~관음사, 14.2㎞), 인욕의 길(관음사~존자암, 21㎞), 정진의 길(존자암~남국선원·선덕사, 18.6㎞), 선정의 길(선덕사·쌍계암~광명사, 39.6㎞) 등의 순례코스를 지정했다.제주의 불교성지순례는 최근 일상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걷는 즐거움과 함께 종교를 통한 마음의 안식과 여유를 가져다주는 건강과 치유의 관광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제주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는 불교문화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경기도는 ‘경기방문의 해’ 사업 중에 평택시 수도사 전통사찰 음식 학습체험관, 포천시 자인사와 파주시 보광사 투어, 양평군 용문사의 ‘산사로 떠나는 마음여행’ 등 불교를 테마로 한 사업들을 포함하기도 했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해 도지사 선거 당시 호국불교의 숨결이 이어지는 경북의 전통사찰과 불교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전통사찰의 보존과 관리, 불교문화 홍보와 관광자원화를 약속한 바 있다.이 도지사는 “유명사찰을 중심으로 한 불교 미술, 불교 문학, 불교유적, 순례길, 그리고 무형적 문화로서 불교 음악과 의례의식, 수행생활 등을 종합해 체계적이며 독창적인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문화관광 테마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구미 불교문화 관광자원화구미는 아도가 신라에 가장 먼저 불교를 전한 신라불교초전지다.이후 통일신라 때에는 신라불교의 성지로 지역 곳곳에 융성했던 불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석가탑과도 견줄만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륵사 폐탑이 그렇고, 아도가 창건했다는 도리사가 그렇다.구미시는 장세용 시장 취임 이후 최근 문화와 관광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관광진흥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을 진행하고 이에 자문할 전문가 자문회의를 정기적으로 갖고 있다.하지만 국내 최고 산업도시라는 명성에 밀려 새로운 관광콘텐츠를 찾기란 쉽지 않다.그래서 장 시장이 주륵사 폐탑 복원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구미의 불교문화 자원은 어떤가. 충분하다.아도화상이 신라에 가장 먼저 불교를 전파했던 구미시 도개면에 신라불교 초전지가 있다.신라불교 초전지는 경북도 3대 문화권(유교·신라·불교권) 조성 전략 사업에 선정돼 국·도비와 시비 등 400억 원을 들여 2017년 10월13일 개관했다.3만6천여㎡(1만1천 평)나 되는 부지에 초전기념관과 전통한옥체험관, 대강당, 불교음식체험관, 단체생활관과 전시가옥 등을 갖췄다.발우공양과 각종 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휴일에는 대관하기 어려울 정도다.이곳에선 기존 사찰 템플스테이와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객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있다.하지만 여기까지다. 지역 곳곳에 산재한 불교문화자원과의 연계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도리사가 지척에 있고 주륵사 폐탑지가 바로 곁에 있지만 이와 연계한 프로그램은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부분이다.도리사와 수다사 인근에는 아름다운 임도가 있다. 이를 이용한 순례길 걷기 등의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불자들은 윤달이 되면 각기 다른 세 곳의 절을 한꺼번에 순례하며 액을 없애고 복을 비는 삼사순례를 행한다. 최근에는 윤달과 관계없이 불자들 사이에서 성행하고 있다.구미시 사암연합회를 통해 삼사순례객을 모으고 다른 지역 불자 단체들과 교류하며 순례행사를 갖다 보면 더 많은 외지 불자들이 신라 때 찬란하게 꽃피웠던 구미의 불교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구미를 찾을 것이다.물론 의성 고운사처럼 사찰도 사찰 나름의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천생산 천생사처럼 가을이면 국화 축제를 연다든지, 도개 문수사의 와인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도 괜찮다.각 사찰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계해 관광자원화할 수도 있다.◆대혜 스님(금오산 약사암 주지)이 시대 최고의 과제는 경제와 관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은 쓰기 위한 것이고 그 쓰일 곳을 만드는 것은 관광이 큰 몫을 담당한다.그런 면에서 구미는 큰 가치가 있는 곳이다.산업지향적인 구미에서 관광마저 진흥시킨다면 구미의 발전은 약속된 것이라 확신한다.불교와 유교 등 역사적 문화와 천혜의 자연 그리고 현재 산업기지인 구미 국가산업단지를 관광자원화할 수 있다면 구미는 한국 최고의 관광지가 될 것이다.금오산은 어느 도시의 산보다도 특별하다. 이 때문에 전국의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감탄한다.최초의 도립공원에 걸맞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할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수많은 산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올라보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금오산 마애여래불뿐만 아니라 곳곳의 등산로와 전망대, 역사적 가치는 전국 세 곳의 금오산 중의 으뜸이다.금오산과 신라 최초의 불교 전래지 모례원, 태조산 도리사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금오산 약사암에서 굽어보는 낙동강은 시내를 관통하는 강으로 세계 어느 지역의 강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또 구미 국가산단은 생산에 그치지 않고 산업의 역사를 가르치고 그에 따른 전시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산업문화로 만들어 낸다면 국내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는 공장만 지어서 윤택한 삶을 사는 시대는 아니다.경제와 문화가 조화를 이룰 때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도시가 될 것이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천 년을 한결같이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진리 체득한 이, 모두 ‘붓다’ 사찰엔 다양한 부처 있어 손모양으로 제 이름 말하네

사찰에는 많은 부처가 있다.석가모니불 외에 미륵불이니, 아미타불이니, 약사여래불이니, 아미타불이니 그 수를 세고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다.왜 이렇게 많은 부처가 존재할까. 불교 학자들은 불교가 ‘진리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래서 유교나 도가, 희랍철학 등과 같이 노력해서 진리를 체득한 이들, 즉 진리와 하나가 된 인간을 ‘성인’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는 이들을 붓다 즉 깨달은 사람이라고 한다.진리가 곧 석가모니 부처가 아니라는 말로 이 때문에 다양한 부처가 있을 수 있다.◆셀 수 없이 많은 부처현재를 관장하는 부처는 석가모니불이다.하지만 인간세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다. 이를 관장하는 부처가 연등불(과거), 미륵불(미래)이다. 시간적 차이를 둔 이들을 합쳐 삼세불이라고 한다.또 위치상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약사여래불, 서쪽에는 아미타불이 있는데 이를 삼계불이라고 부른다.공간상 우주에는 지구 외에 다른 많은 세계가 있다. 이곳에도 진리를 체득한 이들이 있으며 이들을 동서남북, 상하 등 방위로 표현해 10방의 부처, 즉 시방불이라고 한다.그러다 보니 사찰엔 많은 부처를 모시고 있다. 통상적으로 법당 가운데 부처를 앉히고 양쪽에 두 보살을 두는 협시가 일반적이다. 일종의 비서 역할이다.대웅전 석가모니불 곁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한다. 극락전 아미타불 옆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뜻을 받든다.금오산 약사암처럼 약사여래불 곁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앉힌다.이와는 달리 보살이 주존이 될 경우에는 보살보다 낮은 협시가 함께 모셔진다. 관음전의 관세음보살 곁에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지장전 지장보살 곁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앉아 있다.◆불상은 손으로 말한다불상을 자세히 보면 손 모양이 모두 다르다. 불상의 이름은 이를 통해 구별할 수 있다. 이를 ‘수인’이라고 한다.처음 인도 불교는 인도문화를 중심으로 오른손을 강조해 오른손이 주가 됐지만 불교가 중국으로 옮겨가면서 왼손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화했다.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오른손과 왼손이 혼합해 쓰이고 있다.우리나라 각 사찰에 모셔져 있는 불상 중 비로자나불의 경우 인도문화와 중국문화가 혼재된 보습을 보인다.앞서 불상의 이름을 수인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 아미타불은 구품인, 비로자나불은 지권인 등 특정 수인을 사용한다.항마촉지인은 오른손으로 땅을 짚어 마왕을 항복시킨다는 뜻으로 석굴암의 석가모니불이 이 모양을 하고 있다.약사여래불은 오른손으로 땅을 짚은 상태에서 왼손은 약기인이 된다.(약그릇을 들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손의 방향이 바뀐 불상도 여럿 있다)극락이라는 이상세계를 주관하다는 아미타불은 하품중생인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 동그랗게 만드는 손 모양으로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돈 내놓아라’라고 하는 모습이다.마지막으로 비로자나불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든 뒤 왼손의 검지를 세워 말아쥐는 모습이다.◆부처와 보살보통 불상은 의복 외에는 아무런 장신구를 하지 않았다. 다만 머리 모양은 상투의 모습이 종교적으로 변화한 육계(정수리가 두둑하게 솟아오른 모습으로 최고의 지혜를 나타냄)와 나발(머리카락이 소라고둥처럼 틀어 말린 모양)로 특이하다.불상은 약사여래와 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물건을 손에 쥐지 않는다. 수행자의 무소유를 강조한 것이다.이에 비해 보살상은 출가자가 아닌 재가의 국왕을 모델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보살상에는 왕관(보관)과 영락이라고 하는 다양한 길이의 구슬장식과 장신구를 표현한다.귀고리와 팔찌, 발 찌를 한 보살도 볼 수 있다.보살상은 갖고 있는 물건으로 구별한다. 문수보살은 칼을 쥐고 있고 보현보살은 폐업경(불교경전)을 들고 있거나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관세음보살은 군지라는 정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대세지보살은 폐업경이나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는다.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은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보살로 이마 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원과 달을 상징하는 하얀 원이 묘사된다.잘 알다시피 지장보살은 육환장과 투명한 보주를 들고 있다. 금오산 법성사 마당에 가면 큰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 상을 만날 수 있다.구미에는 규모가 아주 큰 불상 2구가 거대한 암벽에 조각돼 있다.하나는 보물 제1122호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이고 또 하나는 보물 제490호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이다.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은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이라고 불렸다.하지만 형태 등을 종합해 본 결과 보살의 모습이 아닌 부처의 모습이라고 판단해 문화재청이 2010년 마애여래입상이라고 명칭을 변경했다.이처럼 천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윤곽은 흐릿해지고 일부는 손상돼 당초 만든이의 생각과는 다른 이름이 붙는 경우도 생겨났다.◆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인동에서 선산으로 가는 길목 황상동 속칭 돌고개(석현)라는 고갯길 왼쪽, 산과 공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산을 배경으로 덩그러니 선 큰 바위가 있다.신라의 영원한 통일을 기원하며 사방정토, 극락세계가 이 땅에 성취하길 위해 만든 석불상으로 보물 제1122호인 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이다.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돌부처는 높이가 7.2m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바위의 면이 고르지 못하고 곳곳에 균열과 부서짐이 심하지만 보존상태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인근에는 금강선원이라는 절과 석불상 정리 괴장에서 나온 작은 파편들이 있어 예전 이곳에 절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마여여래입상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육계가 있고 잘 정제된 듯한 얼굴의 이목구비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턱 끝까지 내려온 큰 귀다.대체로 근엄하면서도 자비스러운 인상의 이 불상은 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있다. 왼손은 바닥이 안을 향하게 하고, 오른손은 밖을 향하게 해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수인의 모양으로 보아 구품인, 즉 아미타여래에 가깝다.이에 비해 금오산 마애여래입상은 암벽 모서리에 조각돼 있다. 여래상의 중심선이 모서리여서 양쪽 암벽에다 조각된 특이한 구도다.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하며 눈, 코, 입 등도 원만 상으로 처리됐다. 귀는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처첨 어깨까지 내려오며 목의 삼도는 명확하지만 목이 짧아 가슴까지 내려오는 형식적이다.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이 응시하고 있는 방향은 아마도 경주인 듯하다. 신라시대와 통일신라 때 제작된 대부분의 마애불상이 수도인 경주로 향하도록 만들어졌다는 학자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물론 금오산 해발 800m에 있는 금오산 마애여래입상도 큰 바위 모서리를 활용해 같은 방향을 응시하도록 만들었다.황상동 마애여래입상에는 구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삼국시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당나라에서 파견된 한신이라는 장군이 어느 전쟁터에서 백제군에게 포위됐다.그런데 꿈에 보살이 희모시자(중국 항주의 승려회통에 기록, 아미타불을 말함)로 변신하고 나타나 도망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이에 한신 장군은 보살이 알려준 대로 작전을 수행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한신은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갔지만 생명의 은인이었던 희모시자, 즉 아미타불의 얼굴을 잊을 수 없어 황상동 이곳 암석에 희모시자의 모습을 조각했다고 한다.현재 균열에 따라 보호각을 씌워 둔 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은 더 이상의 균열을 방지하고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정밀안전진단과 데이터 분석연구를 진행하고 있다.황상동 마애여래입상이나, 금오산 마애여래입상과 같은 석불상은 절벽이나 바위의 면을 조각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동할 수 없다.대부분 조성될 때 그 모습, 그 위치에 있어 지역적 특성이나 문화의 전파 경로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삼국유사 기행단…‘덕심 장착’ 구석구석 이야기 무대 찾아 발로 뛴다

이노버즈와 대구일보는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찾아가는 ‘삼국유사 기행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행단은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해 영화, 드라마, 뮤지컬, 인형극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접목하는 등 삼국유사를 역사문화산업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삼국유사 기행단은 경주를 비롯해 포항, 영천, 울산, 대구, 부산 등 인근 도시의 역사문화와 문화관광산업에 관심이 있는 인문학자, 역사학자, 기업인, 언론인, 교육계, 작가 등 50여 명으로 구성됐다.이들은 각자 소속된 단체 또는 독자적으로 삼국유사를 공부하고 있다. 매주 삼국유사 현장을 답사하고 있다. 기행단은 정기적으로 매월 1회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 서너 곳을 방문해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내고, 다시 새로운 시각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한다.대구일보는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매주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1년에 한 번씩 ‘새로 쓰는 삼국유사’를 책으로 엮어 전국 국·공립도서관에 배부할 계획이다.또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의견을 모으고, 정보를 교류하면서 삼국유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터전으로 삼는다. 삼국유사 기행단 운영과 블로그 운영에 대해 소개한다. ◆삼국유사 기행단 구성대구일보는 지난 2월 20여 명으로 삼국유사 기행단을 꾸려 처음 오릉과 숭의전, 나정, 양산재, 창림사지, 표암재, 석탈해왕릉, 명활산성 등에서 삼국유사 기행을 시작했다.대구일보에서 기행단 운영에 대한 총괄 책임을 맡고, 알영로타리 유소희 회장이 부단장, 경주문예대학 이인숙 시인이 사무국장을 맡았다. 블로그는 출판사 인공연못의 이원주 시인이 운영자로 다양한 자료를 업데이트하고 정보를 교류하고 편성하는 책임을 맡았다.문화해설은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과 류정숙 문화해설사가 우선 붙박이 해설사로 초빙됐다. 또 남산 지킴이 오희, 손은조, 하명옥, 이상범, 이희자, 장근희 등의 해설사가 문화해설을 보조해 진행하기로 했다. 박차양 경북도의회 의원과 한순희 경주시의회 전 의원, 이상애 경주시 전 공무원, 언론인 박대호·이은숙 기자 등도 자문역할과 함께 삼국유사 기행을 통한 문화콘텐츠 육성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이령, 지명숙, 우진호, 이상희, 박용, 정임현, 이제이, 정민정 시인 등 경주문인협회와 해동문학, 웹진시인광장 등의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도 삼국유사 기행에 적극 참여하며 창작활동에 의견을 보태고 있다. ◆삼국유사 기행역사문화 산업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삼국유사 기행단은 매우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활동한다.매월 1회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삼국유사 기행에는 보통 20~50여 명이 참여한다. 참여자들이 떡, 귤, 감, 사과 등의 간식과 김밥 등을 협찬해 늘 가족 같은 분위기다.-첫 삼국유사 기행: 2월16일 오릉 주차장에 모인 기행단은 류정숙 문화해설사의 해설로 첫 기행을 시작했다. 박차양 도의원이 금방 쪄온 떡을 나누어 주면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따뜻하게 달아올랐다. 신라의 나라 구성과 박혁거세 옹립, 박혁거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로 재구성했다. -두 번째 기행: 3월16일 30여 명이 토함산 정상에 올라 석탈해의 흔적을 더듬고, 삼국유사 기행단 발대식을 가졌다. 기행단의 안전 기원제를 겸했다. 이어 석탈해왕 탄강지, 숭덕전, 김알지의 탄생지인 계림 등을 기행했다.-세 번째 기행: 4월20일 대릉원을 둘러보면서 미추왕릉과 내물왕릉, 벌지지에서 박제상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포항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을 답사했다. 내물왕과 실성왕, 눌지왕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더듬어 보았다. -네 번째 기행: 소지왕의 월성 환궁과 내란을 짐작하게 하는 서출지, 무열왕릉, 진흥왕릉, 진지왕릉을 둘러보며 왕릉 지정 현황과 학자들이 지정하는 왕릉의 위치를 추정해 밝히는 시간도 가졌다. 법흥왕릉을 둘러보며 신라왕릉의 구조 변화에 대해서도 공부했다.-다섯 번째 기행: 6월22일 사천왕사지에서 신라가 당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진정한 삼국통일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살펴봤다. 선덕여왕릉, 황복사지, 진평왕릉에서 도시락을 펼쳐두고 삼국유사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진덕여왕릉까지 둘러보았다.-여섯 번째 기행: 7월27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에도 기행은 계속 이어갔다. 신문왕릉, 효소왕릉, 성덕왕릉, 원성왕릉을 돌아보고, 추령재를 넘어 감은사지, 이견대, 문무왕릉도 찾았다. 만파식적 설화와 원성왕의 왕위 찬탈 과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일곱 번째 기행: 무더위를 피해 8월31일에 기행을 했다. 황룡사역사문화관에 모여 호석이 잘 정비된 경덕왕릉, 흥덕왕릉까지 돌아보며 역사의 흔적을 꼼꼼하게 살폈다. 경덕왕릉과 흥덕왕릉은 특히 입구에 조성된 소나무숲이 일품으로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드는 곳이다.-여덟 번째 기행: 가장 짧은 기간 왕위에 있었던 신무왕의 능과 신라가 기울기 시작했던 52대 효공왕릉, 희강왕과 민애왕의 능을 둘러보며 왕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신라하대 피의 역사를 찬찬히 살폈다. -아홉 번째 기행: 10월26일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시기에 신라 멸망의 터 포석정, 시대적으로 맞지 않게 비정되었다는 삼릉, 경애왕릉, 헌강왕릉, 정강왕릉을 둘러보며 천 년 왕조 신라의 붕괴에 대한 과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했다.-열 번째 기행: 지난 23일 기행할 답사단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모집했다. 대형버스로 이동하기 위해 35명으로 제한했다. 5분 만에 접수가 끝나버렸다. 삼국유사 기행에 대한 열의를 짐작하게 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5시간 동안 신라 마지막 왕 김부대왕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연천까지 기행하며 천 년 신라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 마지막 기행은 다음달 21일 신라 세 번째 여왕인 진성여왕의 흔적을 찾아 양산, 용의 설화가 전해지는 처용랑과 망해사로 계획하고 있다. 삼국유사 기행에서 신화 같은 삼국유사를 그대로 해석해 전해주는 해설을 통해 역사 현실을 추정하고, 이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기행은 계속 이어진다. 기행단으로 움직이는 매월 정기적인 기행 이외에 3~4명이 매주 이야기 현장을 찾아가는 기행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삼국유사 기행 카페삼국유사 이야기에 대한 풍성한 정보를 나누는 사이버공간을 마련, 운영한다. 출판사를 경영하는 이원주 시인이 경주 남산, 역사기행 경주, 경주 힐링로드 등 책으로 출판된 경주지역의 오래된 역사 이야기를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정보의 바다를 운영하고 있다.많은 사람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삼국유사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창작을 이어간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육성하고, 문화관광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카페인 당기는 날…달콤한 당신을 따를까 씁쓸한 그대를 따를까

‘아메리카노 커피의 맛을 알아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다소 관용적 표현이 있다. 여기엔 아메리카노의 쓴맛을 쓴맛대로 음미할 줄 알아야 ‘인생의 쓴맛’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는 애매한 메시지만이 담긴 듯하다.사실 ‘커피를 커피답게 제대로 즐긴다’는 의미란 그 경계가 무척 모호하다. 다만 취향과 니즈에 따른 개별의 초이스 정도만 가능하다면, 이것으로도 충분할 듯. 이번 연재는 초반부터 그 목표를 설정해본다. 다름 아닌 그간 얕게만 인지해 온(우리와 같은 지극히 일반인 기준) 커피 본질적 지식을 부디 ‘(작은) 개념 정립’의 장 정도로 여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디오피아에서 시작된 커피물고기는 나무에서 나지 않지만 커피는 분명 나무에서 자란다. 서기 8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커피나무의 시발은 에티오피아 카파주에서 비롯된다. 카파주는 에디오피아 남부에 위치한 작은 지역으로, 커피나무는 이곳 카파주에서 양을 몰던 양치기로부터 처음 발견된다.이는 양들이 목장 인근에 서 있던 나무 열매를 섭취, 그 뒤 (양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각성작용(카페인에 의해)을 일으키는 것을 목격한 양치기의 증언에 기인한다. 한편에서는 (커피의 시작이) 에디오피아가 아닌 중앙아시아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사실 두 사안 모두 ‘정설’이라 하기엔 어딘가 미흡한 부분이 있으니 판단은 독자가 믿고 싶은 대로.하지만 정설에 가장 가까운 학설을 바탕으로 대략의 (커피) 연혁을 나열해 보자면, 에디오피아에서 출발한 커피나무는 예멘을 거쳐 9세기 페르시아와 1500년대 터키, 이후 16세기 네덜란드를 경유한 후 1600년대 후반 스리랑카로 유입, 1700년대 프랑스, 남아메리카, 쿠바, 멕시코를 차례로 지나온 뒤 1720년대 후반 브라질에서 정착됐다는 것이 그나마 공신력 있는 흐름도 일 듯하다.그렇다면 대한민국 커피의 시발은 과연 언제일까. 브라질 정착 이후 약 200년에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낼 적에야 비로소 ‘조선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1800년 후반 당시 조선에서는 커피를 ‘양탕국’이라고 불렀다.양탕국은 궁중용어가 아닌 민간에서 떠돌던 지금의 ‘신조어’와 같은 말로, 여기서 양은 ‘서양’을 의미하며 탕국은 ‘보약’을 뜻한다. 다시 말해 서양에서 넘어온 (보약과 같은)검은 물을 바로 양탕국이라 부른 것이다.이 커피의 진정한 시작을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아관파천’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다름 아닌 이 커피라는 것이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로부터 조선에 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아관파천은 명성황후 시해 후 신변에 중차대한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가 조선을 떠나 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숨겨 보호를 받게 된 사건이다.여담으로 고종은 러시아 공사로부터 공수 받은 커피를 특별한 장소에서만 음미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정관헌’이라는 곳인데 고종의 ‘전용 휴게실’임과 동시에 외교사절단을 응대하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몇 해 전 커피와 관련된 조금은 우습지만 신박해 마지않은 소식을 접한 바 있다. 세계 대회에서 몇 차례나 우승을 거머쥔 유수의 바리스타가 우리나라의 믹스커피를 맛보고 극찬을 전했다는 실로 믿기 힘든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하고 간편하기 만한 믹스커피가 외국 바리스타의 입맛에는 적잖이 충격이었나 보다. 믹스커피의 출현은 커피자판기와 맥을 같이한다.1970년대 후반 D식품회사에서 출시한 믹스커피가 선풍적 인기를 끌며 커피자판기의 수요와 공급도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다.친구와의 우정을 도모할 적엔 ‘캔 커피’를 함께 나누자. 사실 이 모든 것이 TV광고의 폐해이긴 한데, 어찌됐건 대한민국 최초의 아시안게임이 열린 해인 1986년, 라면을 주식으로 삼던 어느 어린 육상선수와 더불어 캔 커피는 대중 앞에 첫선을 보이게 된다.추출 후 음미해야 하는 ‘원두커피’의 초입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터줬다. 당시 올림픽 유치와 더불어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가 단행되며 해외여행객들의 추이가 상승, 이처럼 외국 왕래가 잦아짐에 따른 결과로 해외로부터 들여온 원두 도입은 ‘대중화’로 업그레이드 되기에 이른다. ◆많고많은 커피 종류커피에 조예가 깊은 이들에겐 큰 메리트 없겠으나, 최소한 커알못(커피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만큼은 향후 커피 선택의 범주를 높여주는 나름 유용한 정보일 것이라 믿어본다. 그런 의미로 ‘특별’하고, ‘특이함’을 철저히 배제한 채 가장 대중적인 커피 종류들로만 엄선(?), 소개해보고자 한다. 여기에 하나 더, 대중적 커피에도 나름의 사연과 개별의 방식이 있다는 정도의 소소함도 더불어 만끽해 보길 바란다.서두에서도 언급했듯 커피 세계(?)에선 ‘떡국’과도 같은 시그니처마저 띤다. 떡국을 한번 먹을 때마다 하릴없이 한 살을 더 먹듯이 아메리카노는 진정한 어른의 등용문(?)이랄까.여하튼 가장 대중적이되 쌉쌀한 향취가 일품인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기반에 물을 추가한 후 연하게 만들어 낸 커피다. 조금 더 강한 맛을 원한다면 자신 있게 ‘샷’을 추가해 보자.커피의 아이덴티티를 오롯이 느끼고자 한다면 ‘에스프레소’가 제격이다. 먼지만큼이나 잘게 갈린 원두가루를 고압에 쪄내(통과) 그대로 추출해낸 커피다. 에스프레소는 곧 ‘커피의 베이스’라고 지칭되며, 쓰디쓴 커피 맛의 시쳇말로 ‘본좌’라 일컬어지기에도 별 무리가 없다.흔히들 당이 떨어질 때, 아니면 급격한 스트레스를 하릴없이 만끽해야 할 때, 그때는 ‘카라멜 마키아토’를 선택해보자. 쉽게 단맛이 나는 에스프레소라고 떠올려보면 된다. 에스프레소에 고소한 밀크를 곁들인 후 단맛의 캐러멜 시럽으로 화룡점정을 찍어내는, 말 그대로 고소해마지않은 단맛의 향연이다.소프트함을 원하지만 단맛은 싫다. 그렇다면 ‘카페라떼’로 한번 갈아타보자. 마키아토와는 달리 에스프레소에 오롯이 우유만 믹스해 낸다. 여기다 초콜릿을 얹는다면 바로 ‘카페 모카’로 탈바꿈한다. 흔히들 ‘코코아’ 맛과 대동소이하다고들 하는데, 어찌됐건 에스프레소가 베이스 되다보니 그 참을 수 없는 쌉쌀함, 그렇지만 딱 기분 좋을 정도의 달콤, 쌉싸름한 맛이 콜라보를 이뤄 우리의 미각을 시나브로 사로잡을 것이다.이밖에도 호주에서 들여온 ‘플랫 화이트’와 이탈리아의 심벌 ‘카푸치노’, 푹푹 찌는 아메리카노에 차디찬 휘핑크림을 얹어 그 풍미를 더한 ‘아인슈페너’도 개별의 추출 방식으로 특유의 향취를 자랑하며 개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추출에서 맛 달라진다커피의 맛은 ‘추출 방식’에 의해 좌우된다. 추출 방식은 곧 ‘시간’을 의미하는데 그 시간의 제반도 여러 사항으로 나뉜다. 바로 입자, 물 온도, ‘로스팅’ 정도에 따른 차이다. 로스팅이란 날로 된 콩을 열을 가해 볶는 작업을 의미한다.커피를 내리는 방식은 크게 ‘여과식’과 ‘침출식’으로 나뉜다. 여과식은 쉽게 ‘핸드 드립’과 ‘에스프레소 머신’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침출식은 커피 가루를 물에 잠기게 한 후 추출하는 방식이다.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리 분쇄해 놓은 원두를 프렌치프레스라는 기계에 넣은 뒤,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이후 플런저를 푸쉬, 커피 찌꺼기를 따로 빼내고 커피를 추출한다. 여기서 플런저란 압축 등에 이용되는 기계를 말한다.온수가 아닌 특이하게 ‘냉수’로 추출하는 방식도 있다. ‘워터 드립’이 바로 그것인데, 워터 드립의 최대 장점을 꼽으면 커피 향의 기복을 최소화시킨다는 데 있다. 찬물은 뜨거운 물에 비해 ‘산화’가 현저히 낮다는 이유에서다. 산화란 화학 반응 중 산소를 얻는 과정을 뜻한다.사실 추출 방식이나 종류 등에 앞선 ‘진정한 커피’의 아이덴티티는 바로 ‘누구’와의 ‘어떤 마음’으로 함께 즐기는 데 있다. 비록 근사해마지않는 럭셔리한 공간은 아닐지라도, 고양이 대변으로 빚었다는 수십만 원짜리 원두는 차치하고라도, 그저 좋은 사람과 입김 섞으며 호호 불어마실 수만 있다면 자판기 커피라도 그만이다. 그렇게 마주보고 마시는 커피 한잔이 간절한 오늘이다.Good communication is as stimulating as black coffee and just as hard as to sleep after.(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은 블랙커피 만큼 자극적이고 각성제 역할을 제대로 한다.) 앤 린드버그. 글·사진 군월드 IT 사업팀

기미…레이저 치료 강하면 오히려 ‘독’…약하게, 꾸준히 받아요

-대구 예일피부과의원 차영창 원장 “최근에 얼굴에 착색이 많이 생겼어요, 기미가 생긴 건가요?얼굴에 검갈색의 색소침착이 생길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피부 질환이 ‘기미’일 것이다.본인도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그만큼 기미라는 색소질환이 치료가 어렵고 재발이 잦아 환자들이 궁금해 하고 걱정한다는 뜻이다.기미는 주로 햇빛노출부위에 발생하는 후천적인 과색소 침착증을 일컫는 용어다.기미를 발생시키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원인은 자외선 노출이다.피부가 강한 자외선에 수년에 걸쳐 꾸준히 노출될 경우 표피 내 멜라닌 세포가 자극이 돼 과도한 색소를 피부에 배출하기 때문이다.여성호르몬도 기미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다.하지만 나이가 들어 폐경이 되면 기미가 자연적으로 호전 되는 것을 관찰 할 수 있다.또 남성도 나이가 들면서 남성호르몬 수치가 줄고 상대적으로 높아진 여성호르몬으로 기미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그 외에도 음주, 흡연, 스트레스,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부족, 약물 (항경련제, 테트라사이클린계 항생제)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얼굴에 생기는 색소질환이 모두 기미는 아니다. 검버섯, 일광흑자, 오타양반점 등이 기미와 비슷한 모습으로 얼굴피부에 나타나기도 하고 기미와 섞여 있기도 한다.따라서 막연히 기미라고 단정 짓는 것 보다는 먼저 피부과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기미는 만성 재발성 질환이 맞지만 다른 색소질환인 검버섯, 일광흑자, 오타양반점 등은 비교적 쉽게 제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기미의 치료와 예방에 대해 알아보자.먼저 기미는 치료가 쉽지 않고 한두 번의 치료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하지만 최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반복된 치료를 받는다면 큰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기미 예방의 출발은 자외선 차단제 사용이다.기미 발생과 악화의 주범인 자외선을 차단하는 화장품을 꾸준히 잘 발라주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예방법이다.자외선 차단제는 도포 후 2시간정도 효과가 유지가 되고 이후는 그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에 2시간에 한 번씩 덧바르는 것이 좋다.또한 백탁현상이 있는 자외선 차단제가 더욱 효과가 좋다.하지만 자외선 차단제도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야외활동 후 실내에 들어왔을 때 잘 씻어야 한다.도포요법도 유용한 치료법이다.흔히 미백연고라고 알려진 국소도포제(하이드로퀸, 레티노이드 혼합제품)가 판매되고 있다. 적절히 사용하면 분명 기미치료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동양인, 특히 한국인 피부에 연고를 한 번에 많이 여러 번 바르면 쉽게 자극이 오고 붉어지므로 적절한 도포방법을 전문의와 상의한 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 밖에도 국소치료로 비타민 C를 피부에 침투 시키는 비타민 C 전기영동치료도 도움이 된다.또 다른 치료법은 레이저 치료이다.피부 색소질환 중 검버섯, 잡티, 일광흑자, 오타양모반 등은 강한 강도의 레이저 치료를 적절히 시행하면 빠른 호전을 보인다.문제는 강한 치료가 오히려 기미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기미 레이저 치료의 원칙은 부드럽고 약하게 꾸준히 치료하는 것.색소 레이저 중 가장 대중화된 것이 레이저 토닝 치료이다.레이저 토닝은 Q Switched ND YAG (C6,Revlite)레이저를 꾸준히 얼굴 전반적으로 뿌려 멜라닌 세포가 만들어 낸 피부의 색소 덩어리를 잘게 깨어 부수어 치료하는 방법이다.만약 얼굴에 기미 이외에 홍조와 혈관확장 등의 병변이 동반됐다면 혈관레이저(v-beam, excel V)를 이용하면 효과가 더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기미의 치료는 왕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피부상태에 맞춰 몇 가지 레이저 치료를 꾸준히 받고 동시에 국소치료와 자외선차단제 등의 예방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이명, 극복할 수 있다…적절한 투약·이명 재활치료로 좋아질 수 있어

-이준엽 이준엽이비인후과원장(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 이명은 외부에서의 소리자극 없이 귓속 또는 머릿속에서 소리를 인지하는 현상을 말한다.이는 단어나 문구가 들리는 환청과는 다른 ‘삐’나 ‘웅’처럼 의미가 없는 단순한 소리이다.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산업발전과 함께 소음이 증가하면서 최근 이명환자도 급증하는 추세이며 국내연구에 따르면 성인 중 20%가 이명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명의 원인과 종류는 다양한데 크게 타각적 이명과 자각적 이명으로 나뉜다.타각적 이명이란 신체의 근육이나 혈관 등의 소리가 실제로 환자 본인의 귀에 들리는 것으로 드물지만 객관적으로 확인도 가능하고 원인을 찾아 교정할 수도 있다.자각적 이명은 달팽이관에서 뇌에 이르는 소리신호전달체계에 이상이 생겨 외부소리자극이 없음에도 환자의 귀에 소리가 들리는 현상이다. 원인은 노화와 과다한 소음 노출, 두부외상, 중이염, 귀지 등 다양하며 이명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이명 환자가 호소하는 불편감은 일상생활의 사소한 불편부터 귀의 심한 통증, 수면장애 및 이로 인한 불안장애, 우울증까지 다양하며 심한 이명 환자의 경우 자살충동까지 느끼기도 한다.아쉽게도 현대의학에서 이명의 원인을 단번에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다만 문진과 여러 검사를 통해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파악하는 것이 최선이다.대부분의 이명은 주관적인 증상으로 환자 외에 타인이 느끼기는 힘들어 환자의 진술에 의존하며 이명환자 진단 및 치료예후 판단에 있어 가장 기본이고 중요한 것은 이비인후과에서 시행하는 진찰과 청력검사이다.이명의 강도는 보통 환자 본인의 청력과 비슷한 경향이 있다.즉 작은 소리도 잘 듣는 청력이 정상인 이명환자는 이명의 크기가 작으며 청력이 저하돼 큰 소리로 말해야 대화가 되는 사람은 이명도 상대적으로 크게 들리기 때문에 불편감을 더 느낀다.또 갑작스럽게 이명이 발생한 경우 청력이 정상인 사람은 청력이 저하된 환자에 비해 치료 후 이명이 사라질 확률이 높아 예후 판단에도 청력검사가 중요하다.이외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청성뇌간반응검사, CT나 MRI등 영상검사, 피검사, 어지럼검사 등을 추가로 시행하기도 한다.진료실에서 이명환자를 마주할 때 환자들이 가장 흔히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왜 자기가 이명이 생겼는지’, ‘이명이 완치가 가능한지’ 등이다.원인은 자세한 문진과 검사를 통해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환자들이 원하는 이명의 완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이명의 치료에는 가장 쉬운 약물치료부터 귀내 약물 주사요법, 이명재활치료, 전기요법, 보청기(난청 존재 시) 등이 있다.이중 주위 환경음, 스마트폰앱이나 소리발생기를 통한 이명재활치료가 최근 많이 시행된다.성격 급한 국민성 때문이지 일부 환자는 약물치료나 수술 등으로 한 번에 낫는 치료를 원하기도 한다.이명은 투약뿐 아니라 상담과 재활치료를 통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면 실망하며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선택하기도 한다.급성기 이명의 경우 초기치료만 잘 받고 관리만 잘하면 호전되는 경우도 많다.설령 오래된 난치성 이명이어서 비록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적절한 투약과 이명재활치료 등을 통해 이명을 관리한다면 잘 극복할 수 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금오산 약사암…기암괴석 험지의 맨 꼭대기, 가장 뛰어난 절경에 내려앉은 ‘천년고찰’

남숭산이라 불린 금오산은 통일신라 이후 조선이 불교를 억압하기 전까지 수많은 절이 곳곳에 들어서며 불교의 꽃을 피웠다.금오산은 동쪽에서 바라다보면 큰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이다. 와불 형태가 도드라져 보인다.평지지형에는 제법 큰 규모의 절이 지어지고, 산록에는 그 지형에 맞게 아담한 절이 들어섰다. 또 깎아지른 절벽 끝이나 커다란 바위를 등지고 자리한 절들도 생겨났다.신령한 영산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1천여m 가까운 산 정상에도 절은 자리했다. 금오산 정상에는 약사전과 보봉사, 동양사가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보봉사와 동양사는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신라시대 창건했다는 약사전만 약사암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불교의 성지 금오산시절을 깜빡한 추위가 살을 에이게 하는 날. 금오산(976.5m)에는 아침부터 눈발이 날렸다. 평일 때 이른 강추위에도 많은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졌다.금오산의 명물 대혜폭포에는 많은 등산객이 몰려 사진찍기에 바쁘다.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선굴이 있다. 고려 때 승려였던 도선국사가 수도했다는 곳인데 지금도 찾는 이가 많다.도선굴 아래에 대혈사라든 절이 있었다고 한다. 일선지에는 ‘대혈사는 금오산 북쪽에 있다. 임진란 후에 중창하였고, 서원에 속한다’고 적고 있다. 또 ‘야은 선생이 항상 대혈사 인근 누각 위에 거치하였고, 금산에서 대나무를 손수 옮겨 여기에 심었다. 고을 사람들이 대나무 베는 것을 금하여, 지금도 오히려 짙푸르고 무성한데, 이름을 야은죽이라 한다’고 했다.이와 관련된 야은 길재의 시가 전한다.대나무 빛은 봄가을로 절의를 굳게 하고(竹色春秋堅節義)/ 흐르는 시내물은 밤낮으로 탐욕을 씻어주네(溪流日夜洗貪婪)/ 마음의 근원이 깨끗하여 티끌이 없으니(心源瑩淨無塵滓)/ 이로써 바야흐로 도리의 참맛을 알 수 있다네(從此方知道味甘)오래된 절과 영남 성리학의 문을 연 유학자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다.금오산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고 하지만 이는 그저 멀리서 바라다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만큼 녹록지 않은 산이라는 이야기다.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급해 오래 산을 탄 등산객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산이다.그래서 일부 구간의 이름은 일명 ‘할딱고개’이기도 하다. 대혜폭포에서 수백m 정도 거리인데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경사가 급하긴 마찬가지다.또 이를 통과해도 8부 능선에 있는 철탑까지 차오르는 숨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른 경사가 이어진다.철탑 인근은 깎아지른 절벽이 있어 안전시설을 설치했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할 정도다.철탑을 지나면 평지가 이어진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다시 개축했다는 금오산성의 내성을 지날 때까지는 평지다.하지만 정상을 500여m 남겨두고 다시 급경사가 이어진다.할딱고개와 철탑까지는 그래도 잠시 쉬면서 뒤돌아서 멀리 구미시내와 낙동강을 조망하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정상을 앞둔 이곳은 주변을 둘러봐도 참나무뿐이다. 눈을 시원하게 하는 그 무엇도 없다. 잠깐이라도 긴장을 풀면 사고가 날 수 있는 곳이 금오산이다.정상 부근 작은 돌을 쌓아올려 만든 탑이 멀리 보인다. 한 노인이 사연을 담아 탑을 쌓았다는 이곳은 보봉, 백운봉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 보봉사가 있었다고 한다.금오산 정상은 현월봉(976.5m)이다. 초승달이 걸려 있는 듯한 모습에서 따 온 이름이라고 한다. 각오는 했지만 추위가 만만찮다. 산을 오르며 느끼지 못했던 칼바람에 등산객들이 우왕좌왕한다.◆성속의 경계에 있는 약사암현월봉에서 동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약사봉이다. 그 아래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 약사암이 자리를 하고 있다.정상에서 내려와 동쪽을 향하면 ‘동국제일문’이라고 쓴 약사암 일주문이 나온다.일주문은 앞으로의 공간이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상징문이다. 일주문 너머는 부처님의 영역인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약사암 일주문을 지나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길 양옆으로 막아선 엄청나게 큰 바위틈 사이로 눈 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몽환적이라고 해야 할까.내가 서 있는 쪽은 음지이고, 겨울이고, 어둠이고, 세속적인 데 비해 바위 아래로 드러난 모습은 양지이고, 여름이고, 광명이고 성스럽다.경북 8경으로 꼽히는 금오산에서도 가장 절경인 곳, 그곳에 약사암이 있다.인공으로 만든 계단을 한 발, 한 발 내려서면서 어떻게 이런 곳에 절을 지을 수 있었을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작은 전각 뒤로 마치 병풍처럼 둘러친 기암절벽, 약사봉은 그 규모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이다.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약사암은 신라시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초년에 천하 비경을 찾아 이 바위 아래에서 참선할 때 하늘의 선녀가 하루 한 끼의 주먹밥을 내려주어 하루하루 요기를 했고 약사여래가 내려와 시중을 들어줘 사바와 번뇌에서 벗어나 고승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약사암에 대한 기록은 조선 중기 학자며 선산부사를 지낸 최현의 일선지와 정조 23년(1799년)에 간행된 범우고에도 남아있다.일선지에 ‘약사전은 약사봉 아래에 있다. 돌 벼랑이 높이 솟은 곳에 바위틈을 타고 작은 암자를 지었다. 나무다리를 건너 절벽을 붙잡고 들어가는데 그 아래가 만 길이나 아득히 깊어서 내려 볼 수가 없다’는 기록이 있다.또 고종 때 편찬된 영남진지는 ‘법당은 8칸으로 성내 3리에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당시의 유적은 찾아볼 수 없다.◆삼형제 불상 중 하나 이곳에계단을 내려서면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오른편에 삼성각이, 왼편에 본당인 약사전이 있다. 이는 모두 근세에 조성한 것이다.마당이라고 하지만 그 아래에 종무소 등 다른 건물이 이 마당을 지붕으로 삼고 있다.약사전은 1985년에 중수한 법당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약사전에는 신라말이나 고려 초 사이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좌상(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62호)이 있다.약사전 옆에 약사전 석조여래좌상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석조여래좌상은 약사전에 모신 불상이며 신라 말 혹은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을 두텁게 입혔으나 화강암으로 만들었다.새로 금을 입히기 전인 1960년대 사진을 통해 원만한 얼굴모습에 완전한 형태의 석가여래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우상학의 약사암 중수기(1935년)에는 본래 지리산에 있던 석불 3구, 삼형제불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그 중 1구는 김천 직지사에 다른 1구는 김천 증산면 수도암에 봉안했다고 한다.보물 제296호인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의 설명문에 ‘수도암 석불좌상은 금오산 약사암에 있는 석불과 김천 직지사 약사전의 석불(보물 제319호)과 함께 3형제라고 하고 그 중 한 석불이 하품하면 다른 두 석불이 따라서 재채기를 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유래를 밝히고 있다.또 다른 이야기도 약사전 중수기에 전한다. 석불을 모시게 된 배경과 약사전을 중수하게 된 이유다.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도인 박유술이 불상을 만들고 금오산에 와서 석봉대 아래 쉬고 있을 때 홀연히 불상이 땅에 정좌해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곳에 암자를 세웠다고 하며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우상학이 중수했다고 한다.약사전 석조여래좌상 옆으로는 일광, 월광보살이 협시돼 있으며 후불탱, 신중탱, 독성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 ◆만길 낭떠러지, 어마어마한 약사봉 절벽을 붙잡고선 약사암약사전을 뒤로하고 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낙동강과 칠곡이 훤하게 보인다.약사전 바로 아래는 최현이 일선지에서 지적했듯이 천길 아니 만길 낭떠러지다. 그 낭떠러지 너머로 종각이 있는데 출렁다리에 의지해 건너야 한다. 지금은 등산객들의 안전을 우려해 출렁다리의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또 약사전 아래로는 좁은 철 구조물로 만든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는 동쪽 암벽에서 용출하는 약수를 받기 위해 만든 다리다. 이 약수가 나온다는 구멍에서 쌀알이 하나씩 떨어졌다는 전설이 전한다.최근에는 이곳의 주지인 대혜스님이 국내 최소 크기의 마애불을 발견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대혜스님은 약사암에서 멀지 않은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 인근에서 부처님이 좌선하는 모습을 새긴 손바닥만 한 마애불을 발견했다.그는 “지난 추석쯤 우연히 바위 위에 새겨진 부처님을 발견했는데 두광과 신광을 표현한 방법이나 바위에 새겨진 글들이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여겨져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대혜스님은 이 마애불을 보호하는 한편 연구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약사암 난간 끝에서 내려다보는 공간의 아름다움은 마침내 낙동강과 그 평야를 끌어들여 눈앞에 펼쳐지게 하고 있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금오산 법성사…금오산 채우는 법성사 개울 물소리…도심 가까운 절에서 잠시 쉬어간다

구미시 도개면 모례의 집에서 움트기 시작한 신라불교는 낙동강 건너 선산읍으로, 국보 182~184호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 금동보살입상이 발견된 고아읍으로, 이어 구미의 명산 금오산 등 구미 전역으로 확산했다.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신라불교의 성지로 우뚝 선 것이다.구미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한 금오산은 예부터 지역의 명산, 신령한 산으로 여겨져 왔다.◆남숭산이라 불린 금오산, 수많은 절터 남아 있어금오산이 불교와 관련 깊다는 것은 옛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원래 대본산이었던 금오산은 한 때 남숭산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중국 황하강 유역에 있는 중국 오악 중의 하나인 숭산과 생김새가 비슷하다해 붙여진 이름이다.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숭산이라 하고 황해도 해주(천태종과 관련이 깊다)에 북숭산을 두었다.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이 천태종을 창종한 후 문도들을 이끌고 남숭산(금오산)으로 옮겨와 수도했다는 이야기는 앞서 1편 신라 이후의 구미불교 중 선봉사 이야기에서 다룬 바 있다.그가 대각국사 의천으로 호국불교 포교와 국정 자문에 임하면서 남숭산의 품격과 위상을 높였다.금오산은 해발 1천m를 넘지 않는 산이지만 굳이 숭자(嵩字)를 붙여 중국의 유명한 숭산에 비겨 칭한 것은 모두 불교와의 연관성에서다.이렇듯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절이 금오산에 자리를 잡았다.1968년 진행했던 선산지구고적조사 보고서에는 ‘금오산은 계곡마다 물소리와 목탁소리가 끊어질 날이 없었다’고 기록할 정도였다.또 다른 조사에서도 유구와 유적, 표석이 남아 있는 금오산 평지와 산록부, 정상부에 입지한 절터 18곳이 확인되기도 했다.이 조사에서 확인한 금오산 평지와 곡저부의 절터는 대혈사, 갈항사, 선봉사, 옥림사 등 7곳이다.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가운데 신라의 고찰 갈항사와 대각국사비가 있는 선봉사의 경우 규모가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이에 비해 산록에 있던 절은 2단이나 3~4개의 계단식 터를 갖고 있었던 것이 특징이며 규모도 작았다.물론 정상부에 있었던 절 또한 규모가 상당히 작았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는 현존하는 약사암과 같이 입지조건 때문이었을 것이다.다만 성안의 동남쪽에 있었던 진남사는 터의 규모로 보아 상대적으로 잘 갖추어진 가람배치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금오산 절터, 지형에 맞춰 규모와 가람배치또 금오산에 자리했던 절들은 금오산의 지형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으로 지어졌다.산록배치형인 구미시 수점동 절골의 절터는 남과 북의 단애가 결정되는 지점의 폭포수나 병풍바위 등 수직적 구조를 배경으로 가람을 배치해 성속의 공간 구분이 명확한 도량조건을 갖췄다.또 현존하는 약사암과 같이 정상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보봉사와 동양사는 정상의 장점을 살려 가장 먼저 해를 맞거나, 구미지역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절을 지었다.금오산 정상 보봉에서 조금 내려선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양사터에서는 주춧돌과 기와, 자기, 옹기파편, 구들장 일부가 발견됐다.특히 약사암이나 보봉사 처럼 해발 8~900m 수준의 봉우리와 정상부에 입지한 절터는 거대한 암석이나 화강암 단애를 배경으로 조형된 것이 지형적 특색이다.금오산에 있던 절에 대한 기록은 최현의 일선지에도 등장해 그 존재를 입증하고 있다.일선지에 ‘금오산의 최상봉이 보봉이다. 봉 아래에 작은 사찰이 있으니 곧 보봉사이다. 남동쪽 수백 리를 두루 바라볼 수 있다’라던가 ‘동양사는 보봉사 동쪽에 있다. 아침 햇빛이 먼저 비치기 때문에 이름으로 하였다. 시선이 미치는 곳은 보봉과 다름이 없고, 산에는 해송이 많다’고 적었다.또 ‘전종사와 보제사는 금오산 서쪽 기슭에 있었다. 임진란에 함께 불탔다’고 기록하고 ‘도선굴은 금오산 북쪽에 있다. 상하로 푸른 절벽이 천 길이나 깎아지른 듯이 서 있고 가운데에 바위 구멍이 있다.(중략) 민간에 전하길, 고려의 신승 도선이 거처하던 곳이라고 한다’고 전한다.◆고려시대 창건했던 옥림사터에 재창건한 법성사이렇듯 남숭산, 즉 금오산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신령스러운 산으로 예부터 많은 절이 모여 있었다.이곳에 현재 천 년 고찰 약사암과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해운사, 고려말 창건했다가 폐사됐다는 옥림사터에 지어진 법성사 등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법성사는 현대 창건한 절이다.금오산 상가 주차장에서 구미시 형곡동을 잇는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형곡동 전망대에 미치지 못해 오른편에 법성사라는 절이 있다.기록에 따르면 법성사 인근에 제법 규모를 갖춘 옥림사가 있었다고 한다. 옥림사는 고려말에 창건해 조선 중기인 정조 때 폐사됐다가 다시 고종 때 중건된 후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시 폐사됐다고 한다.조선말인 고종 때 재건 당시에는 법당 6칸과 방 10칸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한다. 법성사는 구미지역에서 도심에 가장 가까운 절 가운데 한 곳이다. 이 절은 1962년 7월 해운사 주지로 부임한 지우 스님이 현 절터에 토굴을 마련하고 수행했던 곳이다.이후 1991년 4월부터 중창불사를 시작해 정면 3칸 규모 팔작지붕의 대웅전과 2층 누각형식의 종각, 천불전, 요사채, 종무소 등을 갖추고 있다.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법성사를 바라보면 절 앞으로 키만 늘씬하게 키운 소나무 몇 그루가 종각과 대웅전을 가리고 섰다.종각을 통해 대웅전을 올려다본다. 언제 칠했는지 단청이 가을 단풍마냥 곱다. 종각 아래인 천왕문에 들어서면 양편으로 사천왕이 그 큰 눈을 부라리며 호기롭게 지키고 서 있다.불교에서는 이 사천왕이 수미산(불교의 우주론 중 가장 근본이 되는 상상의 산) 중턱에 살면서 4방위를 관장하며 악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켜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천왕문에 있는 사천왕 역시 부처님의 성역을 악과 사사로움으로부터 지켜내는 상징이라고 한다.대웅전에 다가가기 전에 종각 아래, 즉 천왕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누하진입이라고 한다. 종각루 아래를 지난다는 말이다. 이는 절을 찾은 이가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라는 절 건축의 숨은 의도이다.종각을 통과하면 조금은 넓은 마당이 나타나고 계단 위로 대웅전이 앉아 있다. 초기에는 법당과 요사채를 같이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웅전 왼편에 요사채를 새로 지었다.대웅전 오른편 뒤쪽에 문화재가 한 점 있다.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84호인 금오산 법성사 석가여래불상(좌상)이다.이 불상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헌종 6년(1840) 하고미면에 살던 정민기씨의 꿈에 5대조 할아버지가 자신의 소유 전답이 있는 원남동 일명 부처골에 나타났다. 이튿날 아침 그곳에 가보니 부처 형상의 불상이 있어 그 자리에 토담집을 지어 보존 관리해왔다는 것.이후 1965년께 지금의 구미문화예술회관(구미시 송정동)이 있는 곳으로 옮겨와 보관하다가 이 일대가 신시가지로 조성되면서 1970년께 법성사 창건주인 지우 스님과의 인연으로 법성사에 기증했다고 한다.이 석가여래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초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대좌 위에 나나의 돌로 불상이 조각돼 있었다. 불두는 마멸이 심한 상태였다.그래서 보존 중 마멸되거나 부서진 곳을 시멘트로 고쳤다가 2009년께 시멘트 등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아직 곳곳에 고쳤던 흔적이 남아 있다.이 불상은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약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있다.대웅전 왼편에는 절에 있는 전각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형태의 전각이 하나 있다. 산신각이다.전하는 말에 따르면 원래 이곳에 남겨진 무속인의 건물을 부수려 했으나 중장비 기사가 이를 꺼려 형태를 남겨둔 채 법당으로 꾸민 것이라고 한다.법성사는 그 규모와 맞게 단출하다. 아니 깔끔한 인상이다. 법성사는 왕성한 사회봉사 활동으로도 유명하다.1996년 봉사단체인 자비회를 결성한 법성사는 2002년에는 법운사회복지회를 설립하고 효행장학금과 중·고생 급식비, 학자금, 저소득층 생활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라오스 동북부 생쾅주 반폰통 지역의 교육지원 사업 등에도 적극적이다.법성사 왼편은 금오산 도수령에서 흘러내리는 개울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있다.금오산은 원래 계곡이 깊지 않아 물이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법성사 옆 개울은 마를 날이 없다.앞서 선산지구고적조사 보고서에 ‘금오산은 계곡마다 물소리와 목탁소리가 끊어질 날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었다. 아마도 이 말은 법성사 개울 물소리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