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소멸, 발등에 불 떨어졌다

지방대 붕괴가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학령 인구 감소와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된 탓이다. 학생 수는 줄고 재정난을 견디다 못한 지역 대학이 수도권으로 탈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자체도 비상이 걸렸다. 대학의 타지역 이전을 반대하며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고민이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가 일부 또는 전부를 타지역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 이사회는 최근 경주캠퍼스를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 내렸다. 그러면서 학제 개편 등 경쟁력 강화와 함께 학교 일부 또는 전부를 이전하는 장기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이에 주낙영 경주시장이 강한 반대 의사를 밝혔으며 동국대 동문들과 경주시민들이 반대했다. 동국대 주변 상인들도 반발했다. 경주가 술렁댔다. 주 시장은 동국대 경주캠퍼스 이전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논의 배경과 향후 계획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또한 시민들과 함께 이전 저지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1978년 설립한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그동안 5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등 지역 인재 양성의 요람이다. 또한 동국대 의대와 한의대는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역할이 컸다. 학생과 교직원 수만 1만 명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대학촌이 형성돼 지역 경제의 한몫을 담당해왔다. 이러한 위상의 대학이 이전할 경우 지역 교육계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 지역민들이 이전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대학 측은 인구 감소와 사회적 수요 변화에 맞춰 대학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경주와 함께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전 문제는 대학 존립 문제와 맞닿아 있어 쉽게 숙지지 않을 전망이다.최근 발표한 경주 동국대의 정시모집 경쟁률은 3.89대 1로 영남권 4년제 대학 중 최고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하지만 전국 지방대의 평균 경쟁률은 2.7대 1을 기록했다. 3차례 원서를 낼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미달이다. 지방대 위기가 현실화되자 탈출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보인다.대학의 수도권 이전은 지역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이미 일부 지역 대학 중에는 학생 유치가 비교적 쉬운 수도권에 분교를 설치, 운영해 오고 있던 터이다. 학생 유치 어려움을 겪던 고령의 가야대학교는 김해로 이전한 전례도 있다.타 대학들보다는 비교적 상황이 나은 형편인 경주 동국대의 이전 논의가 예사롭지 않다. 지방대 고사가 눈앞에 닥쳤다는 경고다. 교육부는 물론 지자체도 나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겨울철 눈(雪), 미세한 차이가 만드는 다른 결과

박광석기상청장우리나라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울릉도’다. 그렇다면 울릉도에는 어느 정도까지 눈이 많이 올까? 울릉도는 하루 동안 내린 눈(신적설)이 150.9㎝까지 기록된 적도 있고, 이전에 내린 눈을 포함해서 쌓여 있는 눈(적설)이 가장 많았을 때는 293.6㎝까지 기록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올겨울도 역시 울릉도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일 30㎝가 넘는 많은 눈이 내렸고, 올해 1월에도 한파와 함께 1일부터 20일까지 나흘을 제외하고 16일 동안 눈이 내렸다. 일시적으로 기온이 높아져 낮 동안 눈이 녹기도 하고 눈의 무게에 다져지기도 했지만, 최대 70.8㎝까지 적설이 관측됐으니 어른 허벅지만큼이나 내린 눈에 울릉도 주민의 안전이 걱정이 되는 한편, 우리나라 최다설지의 위용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울릉도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은 동해 한가운데 위치한 지형학적 원인이 크다. 겨울이 되면 시베리아에서 차갑게 냉각된 공기가 편서풍을 타고 내려오면서 칼바람과 함께 한파가 발생한다. 이때 차가운 공기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동해를 지나면서 눈구름대가 만들어져 울릉도에 눈을 뿌리게 된다. 만약 육지라면 눈구름에서 눈이 내리면서 위세가 약해지고 건조한 육지를 지나며, 점차 소멸하기 때문에 눈이 내리는 기간이 비교적 짧다. 하지만 울릉도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며칠에 걸쳐 밀고 내려오고 동해에서 지속적으로 수증기가 공급되기 때문에 눈이 내리는 시간도 길어지고 양도 많아진다.우리나라에서 눈이 내리는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할 때 서해를 지나면서 서해안을 중심으로 많은 눈을 내리는 ‘서해안형’이다. 울릉도에 대설이 내리는 과정은 서해안형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대설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유형이다. 지난 6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10㎝ 안팎의 많은 눈이 내린 사례도 이 유형에 속한다.두 번째로 북동풍이 불어올 때 만들어지는 눈구름이 높은 태백산맥에 부딪혀 강원도 영동과 경북 동해안을 중심으로 눈이 내리는 ‘동해안형’이다. 서해안형이 겨울 초기인 12~1월을 중심으로 한파와 함께 주로 발생하는 반면, 동해안형은 1~3월에 주로 발생한다. 동해안형은 지형요소가 더해지기 때문에 서해안형에 비해 조건이 더 복잡하다. 북동풍의 강도, 눈구름대의 발달 높이 등에 따라 눈이 해안을 중심으로 내릴지, 산간지역으로 내릴지가 달라지기도 하고, 해륙풍의 영향으로 낮에 주로 많은 눈이 내리거나, 바다에 내리는 눈이 해안으로 접근하지 못하기도 한다. 지난 2014년 2월 강릉에 110㎝, 대관령 74㎝의 매우 많은 눈이 내렸다. 울진과 포항에도 각각 25.7㎝, 11.8㎝의 많은 눈으로 인해 리조트의 강당 지붕과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등 안타까운 인명피해까지 발생했었다.마지막으로 차가워진 우리나라로 서해와 남해상을 거쳐 따뜻한 공기가 이동해 올 때 눈이 내리는 ‘온난이류형’이 있다. 겨울철 저기압이 통과하면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내륙지역에도 대설을 유발한다. 지난 2018년 3월, 대구에 7.5㎝의 많은 눈이 내린 사례가 이에 속한다. 특히, 온난이류형에서는 기온의 연직 조건에 따라 눈, 비, 진눈깨비와 같은 강수의 형태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대기 상층에서 눈으로 내리다가 중간층에서 영상의 기온으로 눈이 녹아 비로 바뀌어 내릴 수도 있고, 다시 지면 부근에서 얼기도 한다. 처음 강수가 시작될 때는 비가 내렸으나 점차 눈으로 바뀌면서 많이 쌓이기도 해 1℃의 작은 차이, 그보다 더 미세한 기상상태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예보관의 판단을 어렵게 한다.눈의 발생 과정에서 보듯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수많은 것을 진단하고 판단해야 하기에 예보관들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최신 기상관측자료를 반영해 최종 예보를 생산한다. 그러나 예보와 더불어 예고 없이 발생하는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겨울철 눈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심과 대비가 필요하다.최신 기상정보를 수시로 확인하고, 집과 시설물 주변 환경을 미리 점검해 둬야 한다. 또 눈 예보가 있을 시,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가 차량은 월동장비를 구비해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노약자는 미끄러운 길에 낙상사고가 발생하기 쉬우므로 외출을 자제해 안전수칙을 지켜주시기 바란다.올겨울도 기상청은 눈과 함께 겨울을 난다. 적든 많든 매 순간 예보를 위해 판단을 하고, 또 실제 눈이 오면 그것을 기록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여우들이 꿈꾸는 세상

김시욱에녹 원장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우는 꾀가 많고 영악한 동물로 그려지는 것이 다반사다. 이솝우화 ‘까마귀와 여우’는 여우의 특성을 잘 그려내고 있다. 먹음직한 먹이를 입에 문 까마귀를 본 여우는 숱한 감언이설로 먹이를 차지하고자 시도한다. 어떤 새에게서도 볼 수없는 몸매와 위엄을 갖췄다며 칭찬하며 제대로 된 목소리만 있다면 진정한 ‘새들의 왕’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까마귀를 추켜세운다. 이 말을 들은 까마귀는 자신의 목소리에 이상이 없음을 과시하고자 우렁찬 목소리로 울음소리를 낸다. 먹이는 나무 아래로 떨어지고 잽싸게 먹이를 가로 챈 여우는 ‘아아, 까마귀야! 만일 거기에 판단력만 갖췄다면 너는 새들의 왕으로서 부족함이 없을 텐데’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우의 재치와 술수가 두드러지는 이야기다. 더불어 목적을 이루고서도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짚어주고 떠나는 여우의 비정함도 드러난다.중국 ‘전국책’과 ‘초책’에서 유래하는 ‘호가호위’란 말이 있다. 초나라 선왕시절, 재상 초해율은 북방의 모든 나라가 두려워하는 대상이었다. 이에 선왕이 연유를 묻자 누구 하나 제대로 대답을 못 하고 있는 가운데 강일이라는 신하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호랑이가 모든 짐승들을 잡아 먹이로 하다가 하루는 여우를 잡았다. 여우가 죽지 않으려고 말하길 ‘그대는 감히 나를 먹지 못할 것이다. 천제께서 나를 온갖 짐승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지금 나를 먹으면 천제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내 뒤를 따라와 봐라.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 짐승이 있는가 보아라.’ 호랑이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여우와 함께 갔다. 이를 본 짐승들은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고 호랑이는 모든 짐승들이 자신이 아닌 여우를 두려워한다고 여겼다.신하 강일은 여우의 우화를 통해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듯 재상 소해율이 왕의 권력을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빗대고자 한 것이다.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1여 년 후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정치인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현직 장관을 비롯해 전직 총리 그리고 정당대표로 지낸 인물들로 화려한 경력과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필연적으로 따르는 ‘친문과 반문 그리고 친박과 비박’이냐는 계파 정치의 논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힘 있는 자의 ‘뒷배’가 있어야만 출마와 더불어 당락을 예측할 수 있는 구조이기에 우리나라 정치 현실은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역학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무소속이 되는 순간 계파에 따른 공격이 진행되기에 소속 정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은 당연한 일이다. 신진 정치인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정당 정치를 표방한 역기능적 계파 정치는 새로운 인물 모색에 너무나 인색할 수밖에 없다.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대선출마 가상 여론조사의 결과가 참으로 이채롭다. 현직 공직자로서 본인 스스로 출마에 대한 어떤 의지도 밝힌 바 없지만 여권 선두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더불어 민주당 대표를 크게 앞서고 있다. 윤 총장의 차기 대선출마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45.9%로 ‘출마할 것’이라는 응답인 33.9%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더불어 민주당 지지층에서 불출마라고 응답한 비율이 57.3%, 출마할 것이라고 응답한 국민의 힘 지지층이 52.3%라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국정농단 사건과 전직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핵심적 인물들 중 한사람이기에 그러하다. 촛불집회와 국정농단에 대한 법집행은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과 더불어민주당의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 획득의 주춧돌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없다. 그러함에도 윤 총장에 대한 찬반의 결과가 반대적 결과로 나타난 것은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야권 후보로서 윤 총장이 여론조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한국 정치에 깊이 뿌리내린 ‘계파 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 편이 아니면 언제든 내칠 수 있다’라는 전략 전술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원하는 먹이를 위해 감언이설과 모략을 숨기지 않은 ‘여우들의 세상’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권력에 빌붙지 않는 ‘권력자에 대한 심판자’로서의 모습에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부르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란 동요 속 ‘잠잔다’라는 거짓말에 속지 않고 다가올 여우들의 위협을 국민들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일부 지지층과 일개인의 권력자에 아부하는 여우들이 안타깝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공공의료 확충

김경화경산시 여성단체협의회장코로나19는 지난 1년간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 세계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우수한 방역과 대응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3차 대유행이 본격화 되면서 중환자 병상 부족이 현실화 됐다. 이렇듯 국가적 위기 상황을 겪으며 우리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보건의료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 당 병상은 12.3개로 일본 13.1개에 이어 두 번째다. 병상 수는 상위권인데 왜 병상 부족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 답은 공공의료에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병원 병상 수는 10%도 되지 않는데다 시도별 공공의료 병상 비율 격차도 큰데 이 10%의 공공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환자의 80% 가까이 치료했다.우리나라의 공공의료는 2019년 기준 지방의료원, 국립대학병원, 지자체병원, 중앙정부 소속병원 등 총 221개소로 전체 의료기관의 5.5%에 불과하고, 병상은 9.6% 수준이다. 일반의료 중심 공공의료기관은 63개로 충분한 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별로 편중돼 전국 70개 진료권 중 27개권에는 공공병원이 전무한 실정이다. 시도별 공공의료 병상비율 또한 울산과 세종은 0%, 인천은 4.5%인 반면에 강원 23.4%, 제주 32.1%로 그 격차도 크다.이러한 상황으로 지역 간 의료공급, 건강수준의 불평등과 수도권으로 환자가 몰리는 상급병원 쏠림 등 비정상적인 의료 전달 체계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발생되고 있다.공공의료의 결핍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적정 규모의 권역별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설립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예비타당성 평가 면제와 지자체 국가보조금 차등 지원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병원의 인력과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며 경영 자율권도 보장돼야 한다.정부에서도 공공의료 확충을 국정과제로 선정해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13일 ‘감염병 대응, 필수의료 지원을 위한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간 공공병원은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는 이미지와 병원을 짓는데 드는 경제적인 비용으로 인해 제대로 날개를 펴지 못했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국가의 필수 인프라로 소방서나 군대, 공공어린이집과 같은 차원으로 논의돼야 한다.공공병원은 민간병원의 대체제가 아닌 국민의 생명을 위한 필수시설로 인식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확충돼야 하며 이렇게 공공의료가 활성화 되면 사람들은 어느 지역에 살든지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적기에 받을 수 있다. 이로써 국민전체의 평균적인 건강수준이 향상 될 것이며 건강보험제도에도 큰 도움이 된다. 나아가 의료기관의 시설, 장비 개선 등을 통해 국내 의료산업 발전과 보건의료분야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또한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굳건한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방파제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공공의료를 본격적으로 확대할 때다.

드라이플라워/ 박성민

여기서 살아나간 향기는 없었다/말라붙은 웃음만 빛깔로 남은 병실/눈뜬 채 잠이 든 그녀/눈꺼풀 떠는 창문//옆으로 돌아누워 거울을 마주 보면/텅 빈 뼛속에서 한 묶음 새가 운다/허공에 부리를 묻는다/물 한 모금 없는 새장//안개가 무성하던 계절은 멈춰 섰다/한 알의 하루를 삼키는 저물녘엔/온몸이 바스라진다/잇몸으로 뜨는 달「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 (시인동네, 2020)박성민 시인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쌍봉낙타의 꿈’, ‘숲을 金으로 읽다’, ‘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등이 있다. 또 다른 목소리의 발현에 전념하고 있는 시인이다. 자아와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에 매진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미학적 자질을 견인해 문학적 성취에 이르고자 전력투구 중이다.‘드라이플라워’도 그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살아나간 향기는 없었다, 라는 첫 대목이 명치끝을 저리게 한다. 향기는 한 생명이다. 오래도록 이 땅을 밟고 살아가야할 소중한 목숨이다. 그렇지만 시의 화자는 살아나간 이가 없었다고 단호하게 천명한다. 이것은 곧 드라이플라워의 이미지다. 말라붙은 웃음만 빛깔로 남은 병실에서 눈뜬 채 잠이 든 그녀가 있고 그 순간 창문은 눈꺼풀을 떤다. 창문은 그녀에게는 희망이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움직이는 존재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눈꺼풀이 떤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와 세계가 한 호흡을 이루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옆으로 돌아누워 거울을 마주 보면 텅 빈 뼛속에서 한 묶음 새가 울고 있다는 표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텅 빈 뼛속에서라는 구절을 통해 그녀가 지금 얼마나 병약한가를 여실히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허공에 부리를 묻는다고 했을 것이다. 물 한 모금 없는 새장이기에. 안개가 무성하던 계절은 멈춰 섰고, 한 알의 하루를 삼키는 저물녘에는 온몸이 바스라진다. 하여 참으로 기막힌 표현인 달이 잇몸으로 뜬다, 라는 결구에 이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그는 ‘숲을 金으로 읽다’에서 자연의 비의 앞에 선 한 자아의 심경을 진솔하게 진술하고 있다. 난시의 가을인가, 도리마을 은행 숲에 버려진 잎들끼리 껴안고 뒹구는 땅 눈부신 폐허의 풍경이 금빛으로 타오른다, 라고 시적 정황을 적실하게 형상화한다. 폐허이지만 폐허의 풍경은 금빛이고 그것은 타오르는 금빛이어서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눈부시게 한다. 너 떠나자 가을이다, 어깨를 움츠린 가을이라는 둘째 수 초장은 의미심장하다. 너는 누구인가 쉽게 물을 수가 없다. 다만 네가 떠나고 나자 가을은 찾아왔고, 그로 말미암아 가을은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 그리고 우듬지까지 밀어올린 눈물의 뿌리들이 써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하여 화자는 보풀 이는 너의 손등을 가만히 만져본다. 끝으로 추워지는 영혼마다 어깨들 감싸주듯 맨살이 맨살을 더듬는 은행 숲이 빛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숲을 금(金)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정황을 환기시키고 있다. 숲이라는 글자 모양에서 금을 읽어낸 혜안은 시인으로 하여금 부단히 시를 쓰게 하는 영감이자 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아와 세계를 민감하게 읽고 받아들이는 예지가 시인에게 있기 때문에 미적 자질을 육화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터다. 이러한 일은 시인에게 주어진 몫이자 행운이다. 시인이 왜 쓰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드라이플라워’나 ‘숲을 金으로 읽다’를 통해 우리는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것으로 족한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기자수첩-비대면에 안일했나…SNS도 세 치 혀 조심

말을 함부로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것을 설화(舌禍)라고 한다.이 시대의 스승이셨던 법정스님이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가 말조심이다.스님은 어느 글에서 ‘세 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내가 두 귀로 들은 이야기라 해서 다 말할 것이 못 되고 내가 두 눈으로 본 일이라 해서 다 말할 것 또한 못 된다’고 했다.또 본 것과 들은 것을 모두 말해버리면 자신을 거칠게 만들고 결국 궁지에 빠지게 한다며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돼 내 몸을 태운다고 경고했다.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려고 쏟아낸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에게 꽂히는 비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한 말이다.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다.또 소통이다.그런 점에서 스마트폰 시대를 사는 요즘은 SNS의 게시글과 댓글이 곧 말이 된다.최근 구미시의회 일부 의원이 올린 SNS 글이 논란이 되고 있다.거칠거나 거짓으로 남을 해칠 목적으로 쓴 글은 곧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마주보지 않으니 모르겠거니 하지만 SNS 글에도 그 사람의 얼굴 표정과 글 쓸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옛 추억을 떠올리며 쓴 글에는 그리움이, 아름다운 꽃을 보며 감상을 적은 글은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하지만 다른 이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해코지하려는 글에는 서슬퍼런 칼이 도사리고 있다.다른 이들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한 문장만 읽어도 그가 가진 마음과 표정을 알 수 있다.새로운 것을 알려주고 자신이 가진 지식을 공유하던 소통의 공간이 SNS가 언제부터인가 누군가를 헐뜯고 공격하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그래서 요즘은 SNS를 하기가 두려울 정도다.많은 누리꾼이 SNS를 통해 위선을 떨며 끊임없이 누군가를 괴롭힌다.그리고 그 글을 읽는 누군가는 글쓴이의 위선쯤은 눈감아 준다.환호하며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다.이곳에서는 팩트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소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일방적인 주장이 있을 뿐이다.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 디지털 연구소장을 지낸 구본권이 쓴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라는 책의 일부분이 떠오른다.“전통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새로운 의미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통화 태도와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 문자 대화와 SNS에서의 표현법 등은 모바일 환경에서 누군가의 인상과 됨됨이를 판단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현대적 의미의 ‘세 치 혀’로 통하는 SNS에서도 대화의 기준을 바로 세우길 기대한다.

협동조합 택시, 불황 돌파 새로운 모델 되길

법인택시와 개인택시 제도의 장점을 모은 ‘협동조합 택시’가 크게 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택시업계의 새로운 탈출구로 주목받으면서 협동조합 설립이 증가하고 있다. 협동조합 택시는 가입 기사들의 만족도가 높아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현재 대구지역 협동조합 가입 택시는 1천100여 대(9개 조합)에 이른다. 전체 법인택시 4천400여 대 중 4분의 1이 협동조합 택시다. 지난 2016년 4월 ‘대구택시협동조합’이 100여 대의 택시로 출범한지 5년 만에 10배의 성장을 한 것이다.협동조합 택시는 지난 2015년 과도한 사납금, 열악한 근무여건 등 택시업계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 후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면서 조합 설립이 늘고 있다.협동조합 택시의 장점은 개인택시처럼 회사 운영비 절감분 등이 모두 기사에게 돌아가 일한 만큼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고율도 낮아진다고 한다. 연료 구입, 보험료, 차량 정비 등은 법인택시와 같은 이점이 있다. 이들 사항은 협동조합에서 공동관리하게 돼 기사가 직접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2천만 원 가량의 현금 출자를 하고, 매달 일정액의 운영비를 내는 조건으로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운영비는 통상 40만~50만 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 조합원들이 법인택시에 있을 때보다 매월 30만~5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늘어났다고 말한다.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기사의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면 과속이나 난폭운전 등이 줄어들어 승객에 대한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지게 된다. 택시 협동조합 설립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스템의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다. 협동조합이 기사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할 수 있다면 시민에게도 좋고, 기사에게도 좋다.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택시기사는 기피 직종이 된지 오래다. 수입이 적고 일이 힘든 때문이다. 그러나 택시는 시민의 발로써 없어서는 안될 교통수단이다.협동조합 택시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크다. 공익형 운영모델 개발, 종사자 교육 등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책 마련이 요구된다. 해외 성공 사례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초기 가입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가입 못하는 기사들을 위한 지원책도 강구됐으면 한다.새로운 제도가 시행착오를 겪어서는 안된다. 협동조합 택시가 지역 택시업계의 새로운 운영모델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한다.

부스/ 김동혁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 나는 주유소 유리부스에서 근무한다. 늦은 시간에 차 한 대가 셀프세차장에 들어온다. 여자운전자가 쓰레기통에 흰 봉지를 버리곤 사라졌다. 쓰레기통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나왔다. 동정심 따윈 없었지만 강아지를 부스로 데려왔다. 낡은 포터가 들어왔다.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해 가는 꿀꿀이 차다. 꿀꿀이아저씨와 그의 벙어리아들이 타고 있다. 아저씨는 그 아들을 마구 거칠게 다룬다. 강아지를 달라고 해서 아들에게 강아지를 줬다. 새벽 두 시경 어머니 전화가 왔으나 받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기일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괜찮은 주유소를 했다. 그 덕에 대학원까지 돈 걱정 없이 마쳤다. 나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했고 아내는 빚을 내어 영어교습소를 차렸다. 아내는 영혼까지 끌어와 학원 사업에 올인 했다. 어느 순간 빚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내는 둘째를 낳고나서 홀연히 사라졌다. 재산을 정리하고도 그 빚을 청산하지 못하자 아버지는 명줄을 놓았다. 어머니는 아직 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눈이 내렸다. 염화칼슘을 뿌렸다. 새벽 네다섯 시쯤, 주유소 이층에 세든 보도방 승합차가 들어왔다. 토사물을 털어내는 일로 다투었다. 일용잡부들을 태운 승합차가 올 시간이 됐다. 폭설 탓인지 승합차는 오지 않았다. 나는 아내가 남긴 사채에 시달렸다. 사채는 갚아도 줄지 않았다. 주유소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돈을 받으러 주유소로 찾아왔다. 열흘 후에 갚겠다고 했지만 허사였다. 집에까지 찾아와 애들을 데려갈 듯 협박하곤 돌아갔다.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여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소장도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소장은 내게 야간근무를 권했다. 월급은 많았지만 어린 두 딸을 두고 야간에 집을 비우는 것이 문제였다. 작은 아이가 근무 중에 없어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놀이터에서 찾긴 했지만 여간 놀라지 않았다. 소장이 가불을 해주어 밀린 사채이자를 해결했다. 다시 눈이 내렸다. 염화칼슘이 떨어져 삽으로 눈을 치웠다. 눈 더미가 많이 생겼다. 퇴근할 땐 맑은 하늘이 보였다. 거리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도로엔 차들로 가득 찼다. 세상이 생기를 되찾았다. 폭설이 내린지 며칠 지났다. 꿀꿀이아저씨가 왔다. 아들이 강아지와 함께 포터를 몰고 사라졌다고 한다. 혹시 보거든 연락해 달란다. 사실, 그 아들이 포터를 타고 주유소에 왔었다. 조수석엔 강아지가 타고 있었다. 그는 기름을 넣고 셀프세차를 했다. 세차장 바닥까지 깨끗이 씻었다. 그는 편안하고 예의바른 모습으로 떠났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찾지도 못할 것이다. 새벽 4시, 늦음과 이름의 경계가 없는 시간, 주유소는 조용했다.…빚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다. 아내는 어린 두 딸을 두고 가출했다. 야간알바를 하면서 근근이 연명한다. 사채업자가 돈을 받기위해 딸을 두고 협박까지 한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살기가 죽기보다 힘들지만 두 딸을 지켜내야 한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견뎌내야 산다. 엔코 된 차를 밀어주고 난 다음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조금 회복한다. 아버지와 함께 막장인생을 살던 벙어리아들이 강아지와 함께 새 출발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본다. 얼어붙은 세상도 해가 뜨면 생기를 되찾는다. 엄동설한이지만 봄은 온다. 새벽 4시, 곧 해가 뜬다. 용기를 내야지.오철환 (문인)

시장 심리 안정이 특단의 대책이다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보통과 구별되게 다름.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특단(特段)이 가지는 사전적 의미다. 통상적으로 이런 표현을 쓰게 되면 처한 상황은 제 각각이지만 청자(듣는, 혹은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긴장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꾀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특정 시장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정책당국의 발표는 해당 시장의 긴장감과 혼란을 초래해 종국에는 시장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그래서, 웬만하면 정책당국은 ‘특단의 조치’ 또는 ‘특단의 대책’ 등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이 일부 특정 시장에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국내 부동산시장의 문제 해결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준비 중이라는 표현이 나와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놀람의 배경은 우선 그 표현이 암시하는 바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그도 그럴 것이 지난 수년 간 국내 부동산시장에서 일어난 상황은 물론이고 우리 경제의 성장 과정을 되돌아 보더라도 다른 자산시장에 비해 부동산시장이 유독 과도하게 팽창했다는 점에서 개선의 필요성이 있기에 특단의 조치라는 표현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법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부동산시장의 과열이 우리 경제 전반의 생산성 하락은 물론 지속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주요 리스크 중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그런데, 내심 불안한 마음에 뛰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한 것도 그에 못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지난 수년 간 수요억제책을 중심으로 수많은 부동산 대책을 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시장 안정화에 실패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기존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지난 과오를 만회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실망감 때문도 아니다. 하물며, 공공 재개발, 역세권 개발, 신규택지 개발 등 부동산 공급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구정 연휴 이전이라는 얼마 남지 않은 짧은 기간에 발표한다는 계획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이는 정책당국의 단호한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시장심리의 불안정성을 완화 또는 해소시킬 만한 구체적인 재료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앞으로도 과연 시장이 원하는 만큼의 정책 대안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시켜 줄 만한 재료를 시장에 제공하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물론, 정책당국의 지적처럼 1인 가구 증가 등 인구통계학적인 변화와 완화적 통화금융정책과 이에 따르는 자금쏠림현상에 의한 초과수요 발생 등도 부동산시장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부동산 관련 조세 부담 강화, 재개발 재건축은 물론 임대주택 등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이 기대와는 달리 주택 공급 감소 현상을 야기함으로써 부동산시장의 불안정을 확대시켰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눈 앞에 보이는 국내 부동산시장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정책당국의 대응에 대해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불안하게 느끼기는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잘못 된 것이 정책당국만의 탓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가혹하기 그지없는 처사이기도 하다. 막말로 아무리 정책당국인들 모두가 원하는 곳에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저마다 지불할 수 있을 만큼의 가격으로 무제한 주택을 공급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더군다나, 불안한 부동산시장의 움직임에 나름대로 적극 대응하고자 하는 국민 개개인의 잘못(이기심) 탓으로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여하튼 지금 중요한 것은 국내 부동산시장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공급 부족에 있다는 것과 수요 억제를 중심으로 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대응만으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시장과 정책당국의 공감대가 비로소 형성됐다는 점이다.오는 설 연휴 이전에 시장의 예측 수준을 뛰어넘는 공급 확대책이 발표된다고 하니 그에 거는 기대가 크지만, 모처럼 형성된 시장과 정책당국의 공감대가 제대로 반영돼야만 시장 심리 안정과 정책목표 달성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수험생 감소와 지역 대학의 생존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2021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마감(1월11일)된 후, 지역 대학들은 예견된 일이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정시모집에서 수험생은 가, 나, 다 군별로 한 번씩 총 3회 지원할 수 있다. 대학 입장에서 보면 경쟁률이 3대 1이 넘어야 실질 경쟁률이 1대 1이 된다는 말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부분 대학의 경쟁률이 낮아졌다. 문제는 3대 1이 안 된다는 학교 8할 정도가 영호남에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북도 11개 대학이 3대 1에 못 미쳤다. 이번 월요일(18일)에 정시 원서접수를 마감한 지역 전문대도 모집정원의 절반을 채우기도 힘들 정도로 경쟁률이 떨어졌다.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지방 대학들은 교육 당국이 나서라고 주장한다. 수도권 정원을 합리적인 선으로 줄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대학은 모집인원을 줄이는 대신 등록금 인상을 허용해주는 등의 혜택을 주자고 말한다. 지역 대학이 붕괴하면 지역 경제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지역 대학도 교육 당국만 쳐다보지 말고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대학이 지속적인 수험생 감소를 알면서도 그동안 치열하게 고민하며 능동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듣기 거북하겠지만 지역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가 주된 원인이니 아무리 용써도 소용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져, ‘설마’ 대학이 망하겠느냐는 다소 안일한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며, 망하면 나만 망하나 모두가 ‘한 구덩이’에 빠질 건데”라는 생각으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았는지를 깊이 성찰해 봐야 한다. 대구·경북에서 수능시험을 친 모든 학생이 타지역에 가지 않고 몽땅 지역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에 진학한다 해도 올해는 2만 명 이상의 학생이 모자란다. 정원을 줄이지 않으면 앞으로 매년 이와 같은 현상은 되풀이될 것이다. 지역 대학들은 더 심각한 파국에 이르기 전에 강도 높은 구조 조정으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인문계 학과 대부분은 사정이 어렵지만, 수도권 상위권 대학을 보며 활로를 찾아야 한다. 입시기관의 배치표를 보면 수도권 최상위 대학의 경영, 경제학과나 같은 대학의 최하위 학과는 합격점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어느 학과에 입학해도 복수전공과 부전공으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 사회대 학생 중 자신이 선택한 학과를 정말 좋아하는 소수는 제대로 공부해 해당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학생은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복수전공 할 수 있게 해 준다. 학과 이기주의를 버리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 상생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자연계 학과들은 더 적극적으로 지역 중소 업체들과 산학 협력 관계를 맺고 졸업생이 전공을 살려 취직할 수 있게 지역 밀착 맞춤식 교육 등을 통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입시철이 다가와야 많은 대학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신입생 유치 활동을 한다. 이는 정말 비생산적이다. 최고의 홍보 수단은 ‘현재 자기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재학 중인 학생이 자기 학교와 학과에 만족하면 그 학과에는 다음 해에도 학생이 모이게 된다. 입학 당시 일회적으로 장학금을 주고 고급 휴대전화를 주는 등의 사탕발림 유인책은 별로 효과가 없다. 대학 당국은 입학한 학생을 좀 더 정성껏 관리해야 한다.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 상당수가 “학교나 학과에 비전도 없고, 교수님도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 말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이미 늦었지만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지역대학들은 무력감과 패배감에서 벗어나 위기 타개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제 대학은 지역 사회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 어려움을 설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학과 지역민이 상호 신뢰감을 형성하게 되면 생각지도 못한 묘책이 많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은 지역의 소비와 생산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방 자치단체, 산업체, 언론 등의 기관과 지역민 모두가 지역 대학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월성원전 삼중수소 검출 논란, 신속 규명을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검출된 방사성 물질 삼중수소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환경단체와 원자력 학계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월성원전의 삼중수소 검출 소식에 주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결국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전문가들로 조사단을 꾸려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다시 불거진 원자력 안전 논란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최근 월성 원전 지하수 배수로 맨홀의 고인 물에서는 71만3천 베크렐/리터(㏃/ℓ)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이는 원안위의 관리 기준인 4만㏃/ℓ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환경단체가 원전 주변 주민의 삼중수소 피폭을 우려하며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이에 원자력 학계는 반론을 내놓았다. 원전에서 검출된 삼중수소의 방사선량이 많지 않으며 설령 삼중수소가 인체에 흡수되더라도 반감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배출된다고 했다. 한 전문가는 월성원전 주민의 체내 삼중수소 피폭량이 바나나 6개를 먹었을 때의 피폭량과 같다고 분석했다. 삼중수소가 인체에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부적절한 비교’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신체 유해성 여부가 과장되지는 않았는지 전문가 조사를 통해 가릴 필요가 높아졌다.정치권도 부산하게 움직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주 현장을 찾은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 의원 13명이 18일 월성원전을 방문했다. 삼중수소 검출 진상 파악에 나선 것이다. 이날 현장에는 감포읍발전위원회 등 주민 100여 명이 피켓을 들고 “탈원전 정당화를 위한 민주당의 왜곡 조작 언론 보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또 반대 측 주민들은 오염된 물로 사람이 살 수 없다며 이주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원안위는 지난 17일 민간 전문가 등으로 조사단을 구성해 월성원전 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방사능 괴담 수준의 자료가 발표돼 주민들을 불안케 해서는 곤란하다. 과학적 근거 없이 공포만 부풀리는 악성 뉴스를 퍼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야당 일각에서는 검찰의 월성원전 폐기 수사를 희석시키려는 물타기용 가짜 뉴스라고 의심하는 있는 마당이다.한수원은 원전 시설 내에서 삼중수소의 지하수 누출 여부를 주도면밀하게 확인하고 공기나 빗물로 스며든 것인지, 원인을 찾아 밝혀야 한다. 원안위는 각계의 여론을 반영해 민간인 전문가들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결과를 공개, 논란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이참에 지진에 취약한 구조로 걸핏하면 안전 논란을 빚고 있는 월성원전의 안전 상태를 정밀 점검하고 태풍과 지진 등에 대한 안전 대책도 마련하길 바란다. 주민 불안을 하루빨리 가라앉히는 것이 급선무다.

이익공유제는 빛 좋은 개살구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민주당은 코로나로 인한 양극화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왔다. 성과가 좋은 기업들의 이익 일부를 갹출해 어려운 기업들에게 나눠주자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코로나로 인해 득을 본 기업이 해를 입은 기업에게 적정부분을 나눠주자는 이야기다. 뜻하지 않은 재난에 기해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는 충분히 보기 좋다.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합리적이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익공유제는 보기는 좋아도 맛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다.한때 경제학자 출신 총리가 동반성장의 한 방법으로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한 적이 있다. 초과이익은 정상이익을 초과하는 이익이고 자본사용대가인 기대이익을 초과하는 순이익이다. 초과이익은 혁신과 위험부담, 공격적인 투자의 결과로 발생한다. 허나 초과이익은 지속적으로 유지·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 경쟁에 의해 소멸된다. 기업혁신의 한시적 보상이자 과실인 초과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는 이윤동기를 무력화시킬 따름이다.굳이 초과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면 초과이익을 계산해낸 후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규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초과이익은 학문적 개념이어서 실무적으로 정확한 금액을 산출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 발생원인을 정확히 따져서 그 기여자에게 적절히 배분하는 일도 어렵다. 초과이익공유는 경제학의 기본가정 중의 하나인 이기심을 가볍게 보는 한계도 걸림돌이다. 게다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이제 초과이익공유제는 코로나 이익공유제라는 변종으로 다시 부활했다. 코로나 이익공유제도 초과이익공유제의 함정을 벗어나기 힘들다. 정책은 선의와 도덕성만으론 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한 이해득실을 분리·추출해내고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래예측과 혁신으로 성공한 기업의 이익을 코로나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단정해 도덕적 책무를 부담시키는 일은 경제행위가 아니다. 현재 성공적인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낸다는 보장도 없다. 이익이 날 때 연구개발하고 재투자해야 살아남는다. 일시적으로 큰 이익이 났다고 나누라는 말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지 말고 함께 망하자는 것이다.코로나로 인한 피해에 대해선 국가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런 일을 하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소득에 비례해 세금을 낸다. 코로나로 인한 이득은 증세를 통해 정상적으로 국고로 환수된다. 그 돈으로 어려운 기업 구제하면 된다. 코로나 피해 기업은 세금을 덜 내기도 하겠지만 국가의 지원을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이익을 많이 낸 기업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반대급부는 덜 받는 구조다. 그러한 시스템이 양극화를 완화하는 자동조절장치로 기능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 이익을 나누라고 압박한다면 중첩적으로 불평등한 부담을 과하는 것이다. 자신이 낸 세금이 자신을 위해 쓰이지 않는 것을 감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권력이 기업에게 이익을 나누라고 눈치를 준다면 기업가정신을 훼손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손실이 생길 경우 보태주는 것도 아닌데 이익이 많다고 나눠야 한다면 도둑이나 강도와 다를 바 없다. 이익이 생기면 나누고 손해가 생기면 그만인 상황에서 누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혁신하고 투자하려 할 것인가.사회주의 소련이 리베르만 이윤도입방식을 받아들인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지금 정도로 굴기한 것도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이익사유화를 인정한 덕분이다. 사회주의국가들이 실패를 인정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는 판국에 이익공유제라는 사회주의방식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시도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동이다.기존 시스템으로 역부족인 상황이라면 자율적인 기부를 활성화하는 방법이 맞는다. 기부금에 대한 세금감면은 그 인센티브다. 세상은 혼자 살수 없다. 그냥 놔둬도 이기적 동기에서 협력업체나 소비자를 돕는 법이다. 좋은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가 존재해야 좋은 제품을 만들고, 구매력이 풍부한 소비자가 존재해야 많이 팔아 이익을 낼 수 있다. 팔을 비틀어 나눔을 강제할 필요가 없다. 큰 선거를 앞두고 있다. 소수 대기업의 이득을 다수 중소기업에게 나눠주는 이익공유제는 표퓰리즘 의혹만 살 뿐이다.

잔도(棧道)/ 김덕남

한 발은 이승에서 또 한 발은 저승에서/하루치 목숨 늘여 밑줄 치는 붉은 이름/수천 길 낭떠러지에 선반 하나 매단다//길은 늘 양지보다 음지가 길었었지/흡반처럼 달라붙는 어둔 길 지워보려/허공에 발을 딛는다, 먹구름을 밀어가며//메아리 돌아와도 풍문은 흩어질까/웅웅 우는 산을 돌아 무릎 꿇는 외진 밤/산짐승 울음 보탠다, 돌아갈 날 있을까「거울 속 남자」 (책만드는집, 2020)김덕남 시인은 경남 경주 출생으로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와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가 있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애오라지 시조 창작에만 열정을 쏟고 있어 그 과실이 풍성하다. 얼마나 치열하게 시조와 쟁투를 벌이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잔도’는 특이한 제목인데 시의 소재로 삼을 만하다. 잔도는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맨 길로 중국 삼국시대 전쟁 이동 통로로 시작됐고, 잔도를 낼 때는 사형수를 일부 투입해 완공 후 형을 감해 주었다고 한다.한 발은 이승에서 또 한 발은 저승에서 하루치 목숨 늘여 밑줄 치는 붉은 이름으로 수천 길 낭떠러지에 선반을 하나 매단다, 라고 노래하고 있는 데서 보듯 인생길은 그리 순탄치만 않음을 상기시킨다.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닌 듯한 요즘에는 더욱 그러하다. 두 발 중에 언제 한 발이 더 무겁게 저승 쪽으로 디디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실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위태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다잡으며 더욱 삶의 고삐를 옥죄어 잡고 앞을 보고 나아가야만 한다. 시의 화자가 길은 늘 양지보다 음지가 길었음을 기억하며 흡반처럼 달라붙는 어둔 길 지워보려고 허공에 발을 딛기까지 하고, 먹구름을 밀어가며 헤쳐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메아리 돌아와도 풍문은 흩어질까, 라고 반문하다가 웅웅 우는 산을 돌아 무릎 꿇는 외진 밤에 산짐승 울음을 보태면서 돌아갈 날에 대한 희망을 떠올리고 있다. 삶에 대한 이러한 진중한 탐색과 사유는 소중하다. 주어진 나날을 더욱 값지고 유익하게 보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그는 ‘작약 앞에서’라는 시조에서 열정의 불꽃을 한껏 터뜨리고 있다. 코끝을 스치는 듯 양 볼에 스미는 듯 당신의 한숨처럼 가슴에 물이 들어서 한 종지 고명을 얹어 꽃망울이 피는 것을 바라보면서 설렌다. 그 마음은 이슬을 톡톡 튕겨 향낭을 터뜨리다 눈길 한 번 삐끗 놓쳐 사랑까지 놓쳐버려 오월의 손톱 속으로 초승달은 지는데, 까지 이르면서 감정의 고조는 극대화된다. 그런 후 바람에 먹을 갈면 속마음 전해질까, 라면서 지워진 길은 멀고 생이별은 더욱 멀어 한 천년 꽃잎이 이마 위에 뚝 뚝 지는 것을 애절하게 바라본다. 아주 오래 전 최정산 정상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별안간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산정의 널따란 평원 위에 수만 송이의 작약 꽃이 만개해 눈을 부시게 했던 것이다. 천상의 모습이었다. 군락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이를 수 없었다. 일찍이 작약의 아름다움을 그만큼 실감실정으로 가슴에 품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그 생생한 장면이 뇌리에 박혀 있다.‘잔도’는 삶에 대한 의지를 다져주는 시편이다. 더 힘차게 살아가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작약 앞에서’는 더욱 멋지게 애틋하게 이름답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눈길 한 번 삐끗 놓쳐 사랑까지 놓쳐버려서는 아니 되리라. 지워진 길은 멀고 생이별은 더욱 멀지라도 끝까지 오롯이 자신을 지켜야 할 터다. 오늘 하루 진실로 그렇게 살 일이다.이정환(시조 시인)

어려울 땐 백지장도 맞들어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본의 아니게 시간이 남아돌고 있다. 비자발적 실업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어서다. 당초엔 1개월 정도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준비부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남는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비자발적 실업자의 일상 중에서 게을러지지 않는 방법 중의 하나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그전에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을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서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평소엔 쉽지 않았던 점찍어둔 영화를 보는 것도 그렇다.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찾다가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의 여운이 깊었다.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라는 커피에 관한 다큐영화였다. 매일매일 새로운 커피를 마시며 조금씩 커피 맛을 알아가는 중이어서 ‘모두를 위한 커피’라는 부제에도 강하게 이끌렸다.스토리는 단순했지만 영화에 담겨진 뜻은 남달랐다. 무대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카페 ‘감브리누스’. 이곳에선 이탈리아어로 ‘미루어진 커피’라는 뜻의 카페 소스페소라는 독특한 방식의 커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커피를 마신 사람이 한 잔 값을 더 내고 영수증을 통에 넣고 가면 돈이 없는 누군가가 그 영수증을 카운터에 제출하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맡겨둔 커피’가 더 어울리겠다.이탈리아인들에게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조건일 정도로 필수다. “한 잔 하실래요?” 한국에선 당연히 술을 이야기하는 이 한마디가 이탈리아에선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커피를 나누자는 의미다. 이탈리아에서 커피 기부운동이 생겨난 이유이다. 영화에서 카페 소스페소는 ‘잔에 담긴 포옹’이라고 표현한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따뜻함을 전해주는 마법이다. 그래서인지 커피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회적 연대라고도 하지 않던가.영화 ‘카페 소스페소’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커피를 내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해진 주인공이 없이 커피로 얽힌 이들 각자의 삶을 비춰준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도 있다. 출소를 앞둔 수감자나 길거리의 문제아들의 일자리 교육을 돕는 ‘스쿠니치협회’에서 하는 교육을 받고 얻은 일자리이다. 이 협회는 카페 소스페소 외에도 ‘피자가 주는 희망’과 같은 사업들을 하며 문제아들의 사회적응을 돕는다.나폴리에서 시작한 카페 소스페소의 따뜻함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미국 뉴욕 등으로 번져나갔다. 한국에서도 ‘미리내 카페’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형태의 카페가 있었다. ‘미리 낸다’는 뜻으로 커피 혹은 음료를 마시고 다음에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값을 미리 지불하는 곳이었다. 2013년 ‘미리내 가게’를 시작한 전북 군산의 ‘착한동네 카페’에선 아직까지 이런 연대가 이어져오고 있다. 착한동네 카페는 커피 외에도 미장원, 세탁소, 공예 외에도 인문학 강좌 등을 재능기부로 엮은 ‘미리내 네트워크’를 만들어 생활기부를 진행하고 있다.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최근의 ‘착한 선결제’ 캠페인도 이와 비슷한 사회적 연대일 것이다. 방법은 평소 이용해오던 음식점이나 카페에 들러 먼저 일정금액을 결제해두고 꾸준히 재방문을 하는 식이다. 금액이 크든 적든 선결제는 더 이상 돈 나올 곳이 없는 소상공인들로서는 위기 속에서 만나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다. 각 시도 관공서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SNS에서도 선결제 영수증 인증과 관련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그렇지 않아도 대구경북 지역 소상공인들은 이제 견뎌내는 힘조차 버거울 정도다. 와중에 대구시가 식당, 카페 등의 영업시간을 오후 11시까지로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형평성 경고를 받고 하루만에 오후 9시로 변경함으로써 이들은 더 힘들어졌다. 백지장도 맞든다는 심정으로 카페 소스페소이든 미리내이든 착한 선결제든 자영업자들을 도우는 따뜻함이 필요할 때다. 관공서나 공공기관 뿐 아니라 사회 곳곳으로 이같은 나눔이 커피 향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대구시-정부 엇박자, 방역 신뢰 떨어뜨린다

대구시와 경주시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하루 만에 철회했다. 지역의 식당, 카페 등 일부 다중 이용시설의 매장 내 영업시간을 오후 11시까지 연장하려다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돌아선 것이다.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여전히 엄중한 상황이다. 있어서는 안될 혼선이다. 지자체와 정부 간 혼선은 방역 대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된다. 또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관련 업계를 ‘희망고문’하는 결과로 이어진다.정부는 지난 16일 다중 이용시설의 업종별 영업 규제와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지속한다고 밝혔다. 다만 노래방, 헬스장 등 일부 시설에 대해서는 오후 9시까지 제한적으로 운영을 허용키로 했다.이날 대구시는 이 같은 방침에 더해 노래방 등 일부 시설의 영업시간을 오후 11시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또 중점관리시설에 포함된 유흥시설 5종 가운데 단란주점, 감성주점, 헌팅포차에 대해서는 집합금지 규제를 해제키로 했다.그러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17일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즉각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업종이나 지역 간 형평성 논란이 심해지고, 풍선효과로 인한 감염 확산의 위험성이 커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중대본은 핵심 방역 조치는 지자체에서 조정할 수 없다는 공문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구시가 규제완화 방침을 급히 철회했다. 경주시도 유사한 소동을 겪었다.대구시와 경주시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의 방침에 더해 자체적 완화조치를 취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성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지자체와 정부 간 ‘사전협의를 했다, 안했다’는 시비도 일고 있다. 주민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다. 중대본이 발뺌할 만큼 제대로 된 협의없이 규제를 완화한 것이 문제다. 지금은 코로나로부터 주민과 지역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충분한 사전 협의가 필요했다. 중대본이 “규제 완화가 지자체 권한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제지에 나선 것을 탓할 수 만도 없다.지난 주부터 전국의 신규 확진자 발생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확진자가 주기적으로 ‘늘었다, 줄었다’를 되풀이할 것이다. 언제든 다시 재확산할 가능성이 있다.코로나 사태가 발생한지 1년이 됐다. 그간 이번과 같은 혼선을 막을 수 있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유사 사태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시급하게 세세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 대이동이 예상되는 설 연휴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경각심을 늦춰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