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까지 부동산 투기에 나선 현실

아파트 청약 당첨이 어려워진 2030세대가 ‘갭투자’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청년층을 사실상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아넣고 있다. ‘영끌’과 ‘빚투’에 올인하는 2030의 현실이다. 갭투자는 주택의 매매 가격과 전세금 간의 차액이 적은 집을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투자 방식이다. 시세차익이 목적이다. 최근 2년간 대구의 갭투자자 중 2030의 비율이 33%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투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한 갭투자가 청년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28일 국토교통부가 국민의힘 김상훈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대구시 연령대별 주택거래 현황’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0년 8월까지 2년8개월간 대구의 갭투자 4천816건 중 30대 비중이 27.9%(1천342건)로 40대(33.0%, 1천588건) 다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265건으로 5.5%를 차지, 대구의 갭투자자 3명 중 1명은 2030세대였다. 갭투자 차단 목적의 6·17대책 발표 후에도 30대의 갭투자는 대구에서 유일하게 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수성구의 경우 6월 25.4%, 7월 25.9%, 8월 32.6%, 9월 31.0%로 지속됐다. 정부의 갭투자 규제 강화 조치를 비웃듯 30대의 내 집 마련 욕구가 분출했다. 서울과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갭투자자 중 20~30대 비율이 전체의 3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의 ‘영끌 갭투자’ 결과다.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지역에선 지난달 갭투자 비율이 70%대까지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0억 원을 넘어섰다.실수요와 투기를 구분하지 않고 갭투자 자체를 시장 교란의 온상으로 취급한 영향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상훈 의원은 “무분별한 갭투자 규제는 자칫 지역의 2030 청년세대의 내 집 마련 사다리를 걷어차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정부의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도 5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갭투자뿐만 아니라 급등하는 아파트값 탓에 아예 전세로 눌러앉은 수요도 늘어난 것이다. 아파트 가격의 천정부지 인상은 내 집 마련 꿈을 점점 멀어지게 한다. 영끌 갭투자의 악순환만 거듭된다.정부는 갭투자와 같은 투기수요는 철저히 차단하면서 효율적인 정책금융을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주택 공급을 늘리고 공공임대 주택 확대를 통한 주거 안정은 지상 과제가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엇박자 부동산 대책만 난무한다. 2030도 걱정이지만 후대까지 걱정된다.

대구경북행정통합에 대한 넋두리

오철환객원논설위원최근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대구경북통합의 첫 단추를 꿴 셈이다.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경북에서 분리된 이래 39년 만에 도로 합치자는 것이다. 경북에서 ‘직할시’로 분리됐을 당시 대구는 도시의 격이 높아진 양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정확히 잘 몰랐지만 직할시에 산다는 자부심만으로도 다들 신바람이 났다. 누군가 ‘대구시’라고 말하면 화까지 내며 즉시 ‘대구직할시’라고 정정해주곤 했다. 부산처럼 직할시가 됐으니 대구도 비약적으로 발전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던 차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대구광역시’로 개칭됐다. 그 후 대구의 시세는 쪼그라들어 인천에도 뒤지는 신세가 됐다. 이제 몸집을 불리는 길만이 살 길이라며 ‘같은 뿌리론’을 들고 나와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럴 것 같긴 하다. 분리될 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대도시 시민은 촌민과 갈라서고 싶어 했다. 낙후된 농촌이 도시의 발목을 잡는다고 여기고 뛰는 놈만이라도 앞서가야 한다고 믿었다. 도시사람의 이기심을 여론이고 대세라며 다독이고 따라갔다. 마치 선심 쓰듯이 대도시를 떼어내 독립 시켜줬다. 해당 시민은 무작정 좋아했다. 한치 앞도 못 보는 어리석음이었다.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다.대구와 경북이 분리되었지만 오랫동안 경북도청을 위시해 경북의 주요기관 청사가 대구에 그대로 존치됐다. 행정이야 독립됐다지만 청사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공무원도 큰 변동이 없었다. 대구와 경북의 분리를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4년 전에 경북도청이 현 위치로 옮겨갔다. 경북경찰청 등 경북의 주요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농협 등 공기업까지 연쇄적으로 줄줄이 이전해갔다.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은 비로소 대구와 경북이 딴 몸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가 둘로 쪼개져 남남이 되고 난 후 양쪽이 다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경북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도 고달파졌다. 출퇴근이 힘겹게 된 탓이다. 도청사가 북부에 치우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선지 ‘환동해지역본부’를 포항에 이전·설치했다. 이전성과가 신통찮다는 징후다. 경남 등 청사 이전에 실패한 지자체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구와 경북이 분리된 지 39년, 경북도청사가 이사 간 지 4년이다. 이제 다시 통합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을 보니 새삼 격세지감이 든다. 소위 지역의 대표적 리더라는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예지력과 비전에 대한 통찰력이 너무 한심하고 초라하다. 경북도청사라도 원래 자리에 있다면 대구시청 직원과 경북도청 직원만 통합하면 될 일이다. 당분간 중복적인 직책이 있겠지만 각자 기존에 하던 일을 하면 그만이다. 직무의 대상지역과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사직이 사라지겠지만 그 외 총원은 불변으로 추가적인 예산은 불필요하다.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베이비붐세대가 퇴직하면 자동적으로 다운사이징 될 가능성이 크다. 주민 간 갈등은 발생할 이유가 없다. 행정통합은 공무원의 문제일 뿐이다.지금 와서 다시 거꾸로 되돌리자니 대구시청사와 경북도청사의 통합이 큰 걸림돌이다. 시청소재지와 도청소재지 인근 주민들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다. 양 지역의 주민들 간 갈등을 해결하는 일은 어쩌면 현실적으로 답이 없을 지도 모른다. 편이 갈리고 판이 확대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경북도청사를 이전한 일이 가장 큰 실책으로 불거진다. 일을 저지르긴 쉽지만 원상복구는 어려운 법이다. 쪼개기는 수월하지만 다시 통합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쪼개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다시 통일하는 일은 오랜 세월이 걸리고 많은 희생이 따른다. 분단된 한반도를 통일하는 일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리더가 포퓰리즘에 영합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 이유다.사람과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수도권으로부터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자체의 몸피를 키워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서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관련 지역에서 파생되는 현실적 문제를 풀 수 있는 묘책을 찾아야 한다. 양쪽 공무원들에게 불이익이 없다는 보장은 선결과제다. 이러한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처방이 강구되지 않고 무작정 찬반투표로 결정하려 든다면 예측하지 못한 불행한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양쪽의 지역발전과 땅값변동에 대한 중립적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통합을 성사시키는 핵심 키일 것이다. 갈 길이 험하다.

언택트 추석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불효자는 ‘옵’니다.”올해 추석 풍경을 한마디로 표현한 강력한 현수막 문구가 온라인을 휩쓸고 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로 시작하는 가수 진방남이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1940)에서 ‘웁’을 ‘옵’으로 바꾼 기발한 문구다.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하는 대신 고향에 내려오면 불효자라고 내세웠으니 이보다 더 강력한 카피가 있을까.지난해까지는 추석 전이면 동네마다 귀성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올해 그 자리는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가 추석 풍속도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즐겁고 풍성해야 할 추석이 코로나19로 인해 고향에 가지 않는 것이 효도라는 기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나서서 추석연휴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연일 호소하고 있다. 오죽하면 정세균 국무총리마저 나서서 “나를 팔아라”라고 까지 할까.이런 영향인지 실제로 코로나19는 민족 대이동이라는 한가위 귀향 풍속까지 바꿔놓고 있다. 최근 한국교통연구원의 ‘추석 연휴 통행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은 고속도로 일평균 이동량이 지난해에 비해 28.5%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우려’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일 년에 큰 명절 두 번, 설날과 추석을 기다리던 부모님의 상실감도 클 듯하다. 그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을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터라 고향에 오지말라는 말을 하면서도 가슴을 타들어갈 것이다. 자식들 입장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방역을 위한 마땅한 조치라고 이해하면서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입장이 죄송한 뿐이다. 가려니 불안하고 가지 않으려니 왠지 죄스러운 마음뿐이다.어찌됐든 이번 추석은 집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집콕족’들이 많아질 듯하다. 어르신들이 겪는 LID 증후군(Loss 상실, Isolation 고독, Depression 우울)도 늘어날 것이다. LID 증후군이란 핵가족화에 따른 노인들의 고독병으로 자녀가 분가해 떠나고 주위에 의지할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손실에 따른 고독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지는 증상이다.이런 와중에 제주도와 강원도 등 유명 관광지는 추석 연휴를 맞아 빈방이 없을 정도로 예약이 꽉 찼다는 소식이다. 귀성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여행은 대폭 늘어났다. 연휴 기간 제주도 방문 예정자는 3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을 정도다.아이러니다. 고향 부모님을 찾아뵙는 사람들은 불효자이고 추석 연휴를 즐기러 관광지로 몰려가는 사람들은 효자인가. 물론 정부나 지자체에서 나서서 홍보하는 귀성자제는 코로나방역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5일간의 추석연휴를 이용해 국내 여행을 떠나는 ‘추캉스족’(추석+바캉스족)이다. 관광지가 감염 확산의 진원지가 될 확률이 더 커졌다. 귀성도 포기하고 여행도 하지않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외식이나 여가활동은 당연히 늘어날 것이다. 5일 연휴를 집에만 들어 앉아있을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귀성자제만을 권고할 게 아니란 말이다. 고향을 찾되 철저한 생활방역 준수, 사회적 거리두기 유지를 홍보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필자도 서울에 있는 아이들의 귀성을 만류했다. 추석 당일 사촌들까지 모여서 이집저집 다니며 함께 지내는 차례도 올해는 그만 두기로 했다. 대신 가족끼리 조용하게 따로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바이러스가 추석명절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꿔놓았다. 가족친지들의 만남을 코로나19가 빼앗아가는 느낌이다.비대면 추석, 우울한 명절이다. 고향 방문은 고사하고 추모공원이나 봉안시설까지 폐쇄되거나 제한 운영된다. 더 큰 걱정은 추석명절 풍속도가 이젠 많이 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코로나가 종식된다 해도 내년 추석부터는 많이 변할 것이다. 그렇다고 추석의 본래 의미마저 잊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세상은 각박하지만 추석 때 만이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만 같은 넉넉함을 나눴으면 한다. 아울러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고향방문 자제라는 2020년의 추석 신풍속도도 올해 한 번으로 끝나길 기대한다.

인각사/ 김용주

세상 힘든 길이 마음의 짐 지는 걸까// 용서하고 잊기 위해 절집 찾은 어느 하루// 바람이 등 뒤로 와서/ 내 어깨를 다독인다// 법당 앞 배롱나무 자다 깨다 듣는 설법// 울울한 시간 두고 써 내려간 이치대로// 가슴에 불씨 하나를/ 촛불처럼 밝힌다시조집 「본다, 물끄러미」 (일일사, 2018)김용주 시인은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해 2009년 ‘시조세계’와 ‘대구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이태 전 점자 겸용 시조집 「본다, 물끄러미」를 펴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즈음 ‘인각사’를 읽는 마음이 별다르다. 인각사는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산에 있다. 삼국시대 신라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이다.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기도 하다. 절 입구에 깎아지른 바위가 있다. 기린이 뿔을 이 바위에 얹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라 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일연선사가 중창하고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했다. 절 앞의 길은 삼국유사로다. 화자는 세상 힘든 길이 마음의 짐 지는 걸까, 라고 말하면서 용서하고 잊기 위해 절집을 찾은 어느 하루 바람이 등 뒤로 와서 어깨를 다독이는 것을 느낀다. 인각사로 가는 길은 구비길이어서 마음의 짐을 부려놓을 만하다. 요즘은 길이 잘 닦여서 그런 느낌이 덜 들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주변의 풍광과 더불어 요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어서 시름을 덜어내기 좋았던 기억이 있다. 등 뒤로 와서 어깨를 다독이는 바람도 학소대를 휘돌아 냇물을 건너오는 바람이어서 위로를 안겨주기에 안성맞춤이다. 절 마당을 다니다가 보면 삼국유사를 집필하던 때의 일연서사의 장삼자락이 어딘가에서 펄럭이는 듯한 생각에 젖어들 때도 있다. 단순히 유서가 깊다고만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기운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아무래도 그것은 삼국유사와 관련이 깊다. 문학적 상상력의 보고가 탄생한 곳이기에. 법당 앞 배롱나무는 자다 깨다 하면서 설법을 듣는다. 그래서 화자는 울울한 시간 두고 써 내려간 이치대로 가슴에 불씨 하나를 촛불처럼 밝힌다. 그 불씨 그 촛불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고 타오를 것이다. 번뇌를 조금씩 사를 불씨, 그것은 곧 화자의 삶을 추동하는 힘이다. 그는 또 ‘능소화가 있는 풍경’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일체를 꿈꾸는 노래를 부른다. 거꾸로 벽을 타고 누구를 기다리는가, 하고 질문하면서 한여름 어린 손길 억척스런 그리움이 오늘은 목 길게 빼고 긴 나팔을 불고 있는 것을 예의주시한다. 그러면서 그 무슨 할 말 많아 송이송이 피어났다가 얼마 있지 않아 송이채 떨어지는 처연한 아름다움을 유정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화자는 이 생을 지나가는 일마저도 너를 닮고 싶구나, 라고 읊조린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여름 날에 활짝 핀 능소화를 바라보게 되면 어떤 강렬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화가는 그림을, 시인은 내적 충동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언가 치열하게 형용하고 싶다는 뜨거운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운 꽃이 능소화이기 때문이다. 능소화가 피었다가 진 곳에 잘 물든 감나무 잎이 떨어져 뒹군다. 문득 어느 해 가을 인각사 가는 길 양편에 줄지어 서서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가 생각난다. 한가위를 맞아 그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보면 차디찬 가을 물이 유유히 흐르는 학소대에 발길이 닿게 될 것이다. 그때 인각사, 라고 입속으로 고요히 절 이름을 한번 불러보라.기나긴 역사 속의 유한한 존재인 자신을 더욱 긍휼히 여기게 되리라.이정환(시조 시인)

대중교통 광고, 이용환경 개선과 조화 이뤄야

도시철도, 시내버스 등 대구지역 대중교통의 운영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역사와 차량 등 시설 내외부 상업광고 유치를 통해 경영 위기를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올해 대구지역 도시철도, 버스 등의 운영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인 4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시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대중교통의 경영합리화는 당연히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수익 못지않게 매일 이용하는 시민들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대구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48억3천800만 원의 광고 수익을 기록했다. 4년 연속 증가했다고 한다. 공사 측이 광고 수주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현재 대구도시철도 1, 2호선의 58개 역 중 역이름 부기(附記)광고는 24개 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부기광고는 공식 역이름 옆에 상업성 광고 시설의 이름을 병기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역이름 부기광고를 하지않는 3호선은 전동차 측면에 랩핑광고를 한다.도시철도는 역사벽면, 기둥, 게시판, 환승방향 안내 조명판 등 이용객들의 눈길이 닿는 곳은 모두 광고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용객이 많은 도심 역사는 어느 한 곳 빼꼼한 구석이 없을 정도다. 전동차 내 안내방송에도 광고가 들어간다.시내버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좌석과 차체 벽면 등 내부 곳곳에 광고가 부착돼 있다. 차량 외부 측면과 뒷면에도 광고가 붙는다. 버스 승강장도 예외가 아니다.상업광고는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문구와 색상으로 광고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곤 한다. 지나치게 튀는 광고는 시민들의 눈을 쉽게 지치게 한다. 보기 싫은 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 눈만 뜨면 대중교통 시설에 설치된 광고판이 보이니 피곤하다.성형 등 일부 광고의 경우 소비자를 현혹하는 과장·허위광고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대중교통은 공공시설이다. 경영과 이용환경 개선의 조화가 중요하다.이용하는 시민들이 편안하게 대하고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광고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내용은 물론이고 색상, 글자 크기 등을 세세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현재 도시철도의 경우 의료분야 광고가 주를 이룬다. 메디시티 대구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광고가 적은 것은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역경제의 한 단면인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공공시설 상업광고의 게재 기준을 정비하고 시스템 상 허점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대구와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문화 정체성(文化 正體性)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이다. 이는 같은 문화에 소속돼 있는 구성원을 통해 공유되고, 그 집단의 동질성을 확보함으로써 구성원 전체의 화합과 통합을 이뤄내고, 자긍심을 갖도록 한다. 대구와 수성구는 문화사적으로 존재 의미가 우뚝한 도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챙겨야 마땅한 문화사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점이 있다. 이 때문에 다른 도시나 외국에서 어렵사리 대구와 수성구를 찾은 방문객에게 자랑할 만한 소재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대구와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가 오는 10월16~18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진행될 ‘2020 대구수성 한국지역도서전’에서 펼쳐진다. ‘수성특별전I’과 ‘수성특별전II’이란 이름으로 두 가지 내용의 영상 콘텐츠가 소개된다. 대구가 출판문화의 거점이며, 수성구는 출판의 기록성 덕분에 대구 정신이 태동된 곳이란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출판은 문화산업의 뿌리다. 특히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뉴미디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출판은 정보와 지식을 소통하고 공유하는 유력한 미디어였다. 영상이 주력 매체로 부각된 오늘날에도 출판시장은 위축됐지만 출판의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대구는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출판문화의 거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거란족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기 위해 제작된 초조대장경 경판이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됐으며 당시 인쇄도 이뤄졌다. 지난 2011년 초조대장경 판각 1천년을 맞아 동화사를 중심으로 복원사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대구에 경상감영이 상시 설치되면서 영영장판(嶺營藏板)을 제작해 영남권 전역을 대상으로 영영본(嶺營本)을 펴냈다. 영조 때는 왕명에 의해 경상감영이 금서에서 해제된 ‘반계수록’을 출판해 전국에 배포했다. 그 당시 흔적이 동구 옻골마을 백불암 고택에 ‘반계수록 최초 교정 장소’란 안내문과 함께 남아 있다. 이와 함께 문중과 사찰 등에서도 문집과 족보, 불경 등을 출판했다.대구의 출판문화는 감영이 출판을 주도하다가 맥이 끊긴 다른 지역과 달리, 조선시대 이후에도 계속됐다. 관영 출판이 왕성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늦었지만, 1900년대 초반부터 재선당서포와 광문사 등 상업출판사들이 방각본(坊刻本)을 펴내면서 민영 출판을 이어갔다. 또 현대에 들어와서도 북성로와 침산동 등지에서 기계산업이 왕성했던 대구는 인쇄기계 제작의 메카로 부각됐다. 기계식 인쇄기를 수집하고, 그 인쇄기로 책과 명함 등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전북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책공방에는 대구산(産)임을 증명하는 철제 라벨이 붙은 인쇄기가 상당수 소장돼 있다. 지금도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과 성서공단 출판산업단지가 가동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유일한 지역 단위 출판지원기관인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도 존재한다.아날로그 출판문화의 결과물인 문집을 통해 확인된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은 조선 중기 문인인 계동 전경창 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동에서 나고 자란 계동 선생은 도산서원을 찾아 퇴계 이황의 가르침을 받은 뒤 자신의 집에 마련한 계동정사에서 대구 유림에 퇴계 성리학을 처음 전파하고,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을 건립한 뒤 후학을 양성해 대구를 인재의 도시로 만든 인물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문집인 ‘계동집’에 수록된 가헌(家憲)을 통해 ‘내 방에는 문구, 거문고, 활만 두라’고 할 정도로 문무를 모두 중시한 선비였다. 이같은 사실은 계동집은 물론, 낙재 서사원과 모당 손처눌 등 제자들의 문집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계동 선생의 가르침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대구를 침범하자 낙재와 모당 등 제자들이 모두 의병장으로 활약하면서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게 만들었다. 이 정신은 항일 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 초반 대한광복회과 의열단의 무장독립운동, 1940년대 반딧불 사건과 태극단 사건 등 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승한 대구 정신의 정점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효시인 2·28민주운동이다. 불의에 저항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대구 정신의 뿌리를 계동 선생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세계적 유행(Pandemic)으로 선포된 코로나19 방역조치 때문에 세계화 현상이 주춤하면서 국제교역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추세를 뜻하는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오프라인에서는 국내시장을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됐고, 온라인에서는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지역성 또는 로컬리티(Locality) 개발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 됐다. 지역성은 문화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대구와 수성구는 지금이라도 문화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란 구호와 함께,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인 ‘글로컬’이란 용어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붉은 신호등/ 고희림

사후에도/ 그 존재가 확실한 용도의/ 돼지나 소 막창같이 질긴, 저 붉은/ 신호등의 붉음 앞에서/ 멈추고 멈추어 온 나는 지금도 멈춘다/ 저 붉은 신호등의 붉은색은 다만/ 나를 잠깐 멈추게 하는 가식인가/ 내가 진짜 멈추는 이유는/ 신호등의 저 붉은색이/ 질서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질긴, 환상 때문인가「대구문협대표작선집Ⅰ」 (2013)신호는 일정한 부호, 표지, 소리, 몸짓 따위로 특정한 내용이나 정보를 전달하거나 지시를 할 수 있는 전달매체 또는 그렇게 하는 데 사용하는 행동이나 부호이다. 신호등은 차량이나 사람에게 신호를 알려주는 장치로 보통 교통신호등을 말한다. 신호등 색깔의 의미는 일정한 행동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전 세계적으로 붉은색은 정지, 노란색은 신호 변경 예고, 녹색 또는 파란색은 통과 등의 의미로 해석된다. 세부적인 내용은 각 나라별로 조금 다르지만 붉은색은 정지하라는 뜻에 한정된다.돼지나 소의 막창은 죽은 후에 전골로 요리되거나 불에 구워져서 술안주가 된다. 그 용도가 사후까지 끈질기게 따라오고 그 막창의 질긴 식감이 질기도록 따라붙는다. 신호등의 붉은색도 돼지나 소의 막창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태어나기도 전에 붉은색 신호등에 멈춘 것이 태어난 후에도 계속 멈춘다. 앞으로도 붉은색 신호등 앞에 끈질기게 멈춰 설 것이 확실하다. 아마 죽고 난 후에도 붉은색을 보면 멈추어 설 것 같다.그렇다면 붉은색 신호등의 원 개념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사람들을 잠깐 멈추게 하는 전달개념을 단순히 원 개념으로 받아들이긴 곤란하다. 과거로부터 그렇게 해왔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길들여진 대로 붉은색에 본능적으로 정지하는 것일까. 끈질기게 되풀이된 학습으로 인해 형성된 세뇌와 관성에 따라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일종의 조건반사일 수 있다. 허나 붉은색이 잠재적 위험을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인 신호에 지나지 않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만물의 영장 인간에 대한 비하이자 모독이다.붉은색에 말없이 정지하는 원 개념은 아름다운 질서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써 약속을 지키고 질서를 존중함으로써 공동체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시스템에 동참한 결과다. 질긴 습관과 무심한 가식 그리고 질긴 환상으로 이어지는 무감각한 인간군상의 고루한 삶이 눈을 가리는 장막이 되고 숨을 틀어막는 장애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자유로운 영혼은 반발심을 갖기도 한다. 반사적으로 자동화된 의식구조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작은 파격과 일시적 일탈의 유혹은 인지상정이다.빨강은 흥분해 피를 들끓게 함으로써 노동자를 선동하는 색깔로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완수하는 데 최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빨강은 공산주의의 상징색깔로 채택되었고 적색깃발은 공산국가 국기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로 부르게 된 연유다. 6·25를 겪으면서 반공은 감히 거부할 수 없는 가치가 되었고 빨갱이는 해충보다 더 해로운 존재로 박멸대상이었다. 빨갱이는 늑대같이 험악하게 생긴 시뻘건 얼굴에 머리에 뿔이 난 모습이었다. 빨강은 금기였지만 호기심에 찬 유혹이기도 했다. 신호등의 붉은색이 빨갱이를 은유한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빨갱이를 적대시하던 시대를 살아온 사람에게 붉은색은 정지하고 접근하지 말아야 하는 질긴 고정관념이었고 거부하고 배척해야 하는 조건반사였으니까. 오철환(문인)

코로나에 붕괴 직전 지역 공단…회생 돕자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지역 기간산업마저 위태롭다. 사회 전 분야가 코로나19로 멈춰 서면서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대구·경북의 산업도 끝 모를 추락세다. 모두가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이제나저제나 괜찮아질까 기다리지만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빚을 내 버텨도 한계에 도달했다. 도처에 문 닫는 기업들이 속출한다. 그런데도 코로나19는 잡힐 기색조차 없다. 이젠 내년 상반기에나 나올 것으로 보이는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에 기댈 뿐이다. 그런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정부 지원책에 의지해 겨우 간당간당하는 기업의 목숨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등 소득주도경제성장 정책 여파로 휘청대던 지역 기업들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터지면서 아예 주저앉을 상황에 놓였다. 코로나19 초기 정부 정책 자금과 대출 등으로 지탱하던 지역 기업들이 코로나 장기화로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는 등 폐업이 늘고 있다. 직원 숫자를 줄이고 마른 수건을 짜듯 각종 경비를 줄여 운영해도 한계에 달한 기업들의 선택은 문을 닫는 방법 밖에는 없다.공단마다 출입 차량이 뜸하고 기계 소리가 멈춰 섰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감이 쌓여 처리에 분주해야 할 공단마다 적막감만 감돈다. 대구 염색산업단지의 올해 2분기(4~6월) 공장 가동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75.3%에서 46.7%로 주저앉았다. 대구 성서산업단지는 60.1%로 지난해보다 9% 이상 떨어졌다.지역 공단들의 경우 이미 코로나19 이전에 파탄 직전에 몰렸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코로나19로 결정타를 맞았다. 다른 방책을 찾아야 하지만 경제 전 분야가 코로나 쓰나미에 강타당해 빼꼼한 구석조차 보이지 않는다.결국 코로나19를 조기 격퇴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국내 첫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1월20일)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세 자릿수를 넘나들며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코로나를 잡고 경제 상황이 언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예측할 수가 없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막막하다. 일단 중소기업 안정자금 등 지원책은 대상자 선정 폭이 제한돼 있고 액수도 적어 언 발에 오줌누기격에 불과한 형편이다. 정부 곳간도 비어 재정 여력이 없다. 하지만 기채를 해서라도 난국은 넘어서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너무 많다. 하지만 지역 중소기업들의 파탄을 눈을 번히 뜨고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지자체, 경제계 등 모두가 힘을 모아 길을 열어보자.

거리두기 시대의 추석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여명 속으로 차를 몰았다.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 연장을 챙겨 선산으로 향했다. 들판은 누르스름하게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단풍도 어느새 울긋불긋 물이 들었다. 바이러스와 정신없이 싸우는 동안에도 자연은 인간들이 착실하게 추석을 맞이하라고 준비를 다 해주고 있나 보다.몇 밤만 자고 나면 중추절이다. 떡방아 찧는 소리 속에 추석이 다가온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30여 년 전 내가 갓 결혼했을 때만 해도 집에서 송편을 빚었다. 그해 나온 햅쌀을 물에 불려 깨끗하게 씻어 건져 물기가 빠지면 떡 방앗간에 가지고 갔다. 그곳에서 하얀 쌀가루로 갈아 집으로 가져오면 숙모님들은 반죽해서 모두 둘러앉아 밤이 이슥할 때까지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저마다의 소원을 담아 예쁜 송편을 빚었었다. 햇과일과 햇곡식을 조상에게 바치며 정성껏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추석, 둥그런 보름달이 떠오르면 누구보다 먼저 그달을 보면서 가슴 속에 품었던 이루고 싶은 소원을 간절히 빌곤 했다. 어린 시절엔 무던히도 기다려지던 명절이었건만 세월이 무심하게 흐르면서 세태도 변해가고 또 그때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그에 대한 기대도 의미도 엷어져 간다.송편을 잘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고 정성을 다하던 이들도, 솔향기가 솔솔 떡에서 나도록 넣어보자며 솔잎을 따오던 분들도 이제는 모두 저세상으로 가셨다. 양가 부모님 모두 안 계시는 추석 명절이라서 이번부터는 간편하게 지내기로 했다.더구나 올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다 함께 모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정부 정책에 동참하는 의미에서라도 간략하게 보내면 어떨까 하는 안을 내게 됐다. 명절이 돼서야 서로 얼굴을 만나는 형제자매들이라 그래도 추석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벌초를 함께 하기로 했다. 조상님 산소를 살피고 단정하게 풀을 깎아 추석달이 떠오를 때 기분 좋게 지내시게 하면 후손들의 마음이 그래도 편하지 않겠는가. 벌초하는 날을 어렵사리 잡았다. 오고 가는 거리를 생각해 덜 밀릴 것으로 생각하는 날을 받아서 예초기 날을 갈고 낫을 찾고 갈퀴를 챙겨 산소로 향했다. 새벽의 도로는 어둑할 때부터 붐비기 시작이다. 너도나도 추석 전에 성묘하러 가는 모양이다. 길에서 둘러보니 도로 옆으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에도 갈색 빛이 내려오고 있다. 희뿌옇게 터오는 동녘 하늘에 새 떼들이 한가로이 무리 지어 날아가고 있다. 마치 조상의 흔적을 찾아 돌아보듯이.풀이 수북하게 솟아오른 산소를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탄가스를 넣어 사용하는 예초기에 4개째 가스를 교환할 때쯤 서울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한 동서와 조카가 도착했다. 시누이도 정성스레 대게를 삶아왔다. 각자 정성껏 챙겨온 음식을 펴놓고 향을 피워 조상께 차례 인사를 올린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덜 붐비는 시간에 벌초하는 시간에 벌초 겸 성묘 겸 모시게 됐다고 남편이 아뢰었다. 두 번 엎드려 절하고 술을 한 잔씩 모두 돌아가며 올린 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조상님들 편안히 지내시기를 기원했다.명절은 늘 바쁘게 동동거리면서도 문득 멈춰서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깜빡 잊고 있었던 이들을 떠올리게 되지 않던가. 서로 서로 얼굴 마주하고 그동안 못다 한 정을 듬뿍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느 고향 마을에 붙어 있다던 문구에도 있지 않던가.“불효자는 ‘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찾아 가 자칫 코로나라는 무서운 역병을 전해줄 수도 있으니 마음은 늘 가까이 있더라도 이번 추석만은 몸은 멀리해야 할 것 같다. 늘 자식들을 그리워할 부모님이지만, 어쩌겠는가. 멀리서 안부 전하며 그리움을 마음 밭에 묻어 둬야 하지 않겠는가.하산하는 길가에 어디서 날아와 뿌리 내려 피어났을까. 가우라가 활짝 피어 바람에 살랑댄다. 논두렁에는 노랗게 피어난 커다란 돼지감자꽃이 큰 몸짓으로 흔들거린다. “나도 여기 있어요. 여기 서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지키고 있었다고요”라고 외치는 것 같다. 노란 꽃을 본 조카가 아는 꽃이 나왔다며 환하게 웃는다.“제가 아는 유일한 꽃이에요. 저것은 바로바로 ‘코스모스’에요.”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살펴 가라고 손짓하는 듯한 묘소들을 뒤로하고 내려오며 거리두기 시대의 추석을 생각한다. 어쩌면 코로나 이후의 명절 풍경은 이렇게 변해갈지도 모르겠다고.명절이 다가온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리운 이들에게 따스한 안부를 전해보자. 얼굴 뵈러 가진 못하지만,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서 밀린 정 듬뿍 나눌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기력 다해 대답 못하면 사살하나

잠시 잊고 있었던 북한 정권의 잔학성이 다시 드러났다. 무장한 군인이 우리 민간인을 죽이는 일이 또 일어났다.북한은 실종된 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측 해역으로 들어간 우리 공무원 A씨를 지난 22일 사살했다. 2008년 금강산에서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 경비병의 조준사격으로 피살된 데 이어 또 다시 항거불능 상태의 민간인이 집중사격을 받고 숨진 것이다.A씨는 부유물을 타고 무려 38㎞를 떠내려가 북한 측에 발견됐다. 기력이 소진된 데다 비무장 상태여서 북한군이 발포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25일 보내온 북측 통지문에 의하면 검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이 현장 사살의 이유다. 해상에서 장시간 표류한 사람을 사살하는 비인도적 행위에 전세계가 경악했다.-북한, 중국인·미국인이라면 발포했을까현재 북한군에는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북중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 적발된 사람이 “중국과 밀무역을 하는 북한인이 아니고, 중국인이나 미국인이라면 사살하겠나”라는 의문이 든다. 해당국의 강한 반발과 보복 조치 등을 의식해 체포 후 심문하는 등의 절차를 거칠 가능성이 크다.A씨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사살된 것이다. 처음 심문하는 북한군에게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군이 총격을 가한 것은 남한이 만만하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어떤 도발을 해도 특별한 대응이 없더라는 판단 하에 저지른 만행이다. 북한이 우리를 대하는 한 단면이다.우리 국방부는 각종 정황을 종합한 결과 북한 측이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까지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 측은 총격 후 부유물 등을 수색했지만 시신은 찾지 못했으며 많은 양의 혈흔만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실 여부에 따라 향후 논란이 증폭될 수 있는 부분이다.A씨가 실종된 서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역은 우리 군의 최전방이다. 24시간 내내 일촉즉발의 긴장이 이어진다. 각종 첨단장비와 정예병력이 대거 투입돼 있다.그런데도 A씨 실종신고 접수 후 27시간이 지나도록 행방을 찾지 못했다. 해군, 해경, 해수부 소속 선박 20여 척과 항공기 2대까지 투입돼 수색을 벌였지만 작은 단서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합동 경계·수색 능력에 한계를 노출시킨 것이다. 감시 사각지대나 노후 장비가 없는지 점검하고 최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북한 당국은 책임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하루 뒤 북한 통일전선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것에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했다”는 내용을 담은 통지문을 청와대에 보내왔다.북한 측은 현장에 있던 정장(艇長)이 사격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북한군 최고 수뇌부가 깊숙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이 자신들의 사과에 최소한의 진정성이라도 담으려면 우리 측이 요구하는 남북 공동조사에 응해야 한다.그래서 사건의 진상을 한점 숨김없이 밝히고 최종 책임자를 찾아내 엄중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는 작은 첫 걸음이 될 것이다.-만만하게 보인 결과…되풀이 안되게 해야이번 사건은 남측의 엄중 항의와 북측의 사과 표명에 이은 후속 조치 등으로 조기에 일단락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남북 관계에 지워지지 않을 또 하나의 생채기로 남을 것이다.모든 국민이 전쟁은 안된다는데 동의하지만 이번과 같은 만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도 반드시 필요하다.무모한 도발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북한에 일깨워 줘야 한다. 말로만 하는 경고는 안된다. 국제사회 공조를 통한 다양한 압박이 가장 현실적 방안이다. 한미, 한미일 등 우방 간 공고한 공조는 그 자체로도 강력한 대북 압박이 된다.남북대화는 이어가더라도 장밋빛 평화 모드에 집착하면 안된다. 몇 차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며 우리가 남북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잊은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새가 되고 싶은 나/ 박진형

꽃이 새가 될 수 있다면/ 나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돌멩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땅 따먹힌 땅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검은 비닐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오색 풍선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구름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자유가 자유를 그리워하듯/ 그대가 눈물뿐인 사랑을 끌어안듯/ 새가 비로소 새가 되듯 「대구문협대표작선집」(2013)새의 메타포가 무엇인지 숙고해보는 일이 ‘새가 되고 싶은 나’를 감상하는 첫걸음이다. 인간은 날 수 없다. 물에선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할 수 있지만 하늘을 나는 일은 오랫동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하늘을 나는 새는 적어도 부러운 존재였다. 그리스신화에도 하늘을 날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난다. 다이달로스가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로스에게 달아주지만 태양에 가까이 갔다가 바다로 추락하고 만다. 하늘을 나는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현실적으로 먹을 것 걱정 없을 새가 목가적이고 고고한 존재로 여겨졌다. 새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는 시공을 초월한다. 신약성서에선 비둘기를 성령에 비유했다. 새는 하늘과 땅을 중재하는 거룩한 존재였다. 밤에 나는 새는 악령의 심부름꾼이나 사악한 세력과 결탁한 무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새는 영물이었다. 특히 큰 새는 태양신, 천둥의 신, 바람의 신 등으로 숭배 대상이었다. 새의 머리를 한 신들이 등장하는 점에서 새는 지혜와 지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남미의 콘도르는 영혼을 신과 이어주는 신성한 존재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콘도르는 영적 세계에 도달하고 싶은 잉카인의 염원이었다. 티베트에는 시신을 독수리에게 주는 천장 풍습이 있다. 독수리가 시신을 먹고 그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면 영혼이 승천하거나 부귀한 집안에서 환생한다고 한다. 윤회사상이다. 새는 흔히 누구도 구속하지 못하는 자유를 상징한다. 새는 창공을 훨훨 날아올라 제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먹은 대로 날아간다. 땅에서 떨어질 수 없는 인간에게 새는 자유의 상징으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새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주인에게 매인 노예나 일상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는 억압을 떨치고 거리낌 없이 비상하는 말 그대로 자유의 우상이다. 새에게 주어진 자유는 신화와 역사의 기저에 잠복된 메타포라 할 수 있다. 꽃이 새가 될 수 있다면 꽃으로 남을 꽃이 과연 얼마나 될까. 꽃 없는 삭막한 세상은 슬프지 않을까. 벌과 나비 또한 배곯을 사정이 훤하다. 식량위기가 닥치고 생명체가 멸종할지 모른다. 나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묵묵히 녹음을 지키며 산소와 피톤치드를 듬뿍 나눠줄 나무가 무척 그리울 것이다. 돌멩이가 새가 될 수 있다면 새가 하늘에 가득한 세상이 자유로운 모습일지 의문이다. ‘땅 따먹힌 땅’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지구가 새가 될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검은 비닐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깨끗하게 될 것이지만 ‘알프레드 히치콕’의 공포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오색 풍선이 새가 될 수 있다면 아이들이 무척 섭섭해 할 일이다. 구름이 새가 될 수 있다면 비가 오지 않아 사막이나 황무지가 지구를 뒤덮을 것이다. 꽃, 나무, 돌멩이, 땅 따먹힌 땅, 검은 비닐, 오색 풍선, 그리고 구름 등은 각각 제자리에 있을 때 ‘자유가 자유를 그리워하듯’ 자유롭고 값지다. ‘그대가 눈물뿐인 사랑을 끌어안듯, 새가 비로소 새가 되듯’ 자유는 제약을 아울러 내포하는 법이다. 오철환(문인)

기업은행 대구 유치, 지역 역량 총동원하라

공공기관 대구유치 범시민추진위원회가 24일 출범했다. 시민단체, 정계, 경제계, 학계, 관계 등 각계 인사 20여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에 맞춰 대상 기관 선정, 유치전략 개발 등을 하게 된다. 2차 지방이전 대상 기관은 120여 개다. 이에 앞서 대구시는 전체 유치 희망기관을 물산업, 첨단의료, IT 등 3가지로 분류해 지역 실정에 맞고 시너지 효과가 높은 기관을 우선으로 유치에 나선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특히 IBK기업은행(중소기업은행)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단독 공략 대상으로 지정해 추진할 방침이다. 몇개 기관을 포기하더라도 기업은행만 유치하면 공공기관 2차 유치전은 성공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만큼 기업은행의 유치 효과가 크다는 이야기다. 대구는 ‘중소기업의 수도’로 일컬어진다. 지역 전체기업 가운데 중소기업 비율은 99.95%(19만1천여 개)에 이른다. 중소기업 종사자 수 역시 67만4천여 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93.92%를 차지한다. 전국 8대 특별·광역시 중 최고 수준이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설립된 국책은행이다. 중소기업은행법 제1조(목적)에 ‘중소기업에 대한 효율적 신용제도를 확립해 자주적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경제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명시돼 있다. 기업은행 본점을 중소기업의 도시 대구로 이전하는 것은 법률에 규정된 설립목적에 부합한다. 동시에 중소기업 육성을 주요 목표로 정한 현 정부의 국정 추진방향과도 일치한다. 사람과 기업의 수도권 집중으로 고사위기에 처한 지방경제 회생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은 2018년 9월 당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수도권의 122개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겠다며 논의의 불을 댕겼다. 여기에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도 포함돼 있다. 지난 7월에는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포함한 국가균형발전계획을 보고했다. 정부와 여당은 연말까지 지방으로 이전할 공공기관을 확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금융기관 유치에 공을 들이는 지역이 많다. 부산, 전남, 전북, 강원, 대전 등도 나섰다.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본점이 서울에 있어야 경쟁력이 유지된다는 서울중심론자들의 반발도 변수다. 대구시가 기업은행 유치라는 소기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역 역량이 총동원돼야 한다. 다른 지역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 가장 앞에 서서 돌파해 나갈 수 있는 정교한 전략적 뒷받침도 필수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

대구시와 경북도가 행정통합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시·도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돼 앞으로 최고 자문기구 역할을 할 대구경북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고 9월 말까지는 500명의 시·도민이 참여하는 대구경북민간추진위원회도 출범할 예정이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은 사실 이번에 처음 나온 주장은 아니다. 2000년대 초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민간 차원에서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통합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실제적인 성과를 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 가운데,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대구경북행정통합 이슈가 올 초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제안하고 권영진 대구시장이 이에 호응하면서 지역의 최대 의제로 다시 급부상하게 됐다. 그 배경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같다. 지방을 초토화하고 있는 수도권 블랙홀에 대응하고 지방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초광역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방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사람과 돈이 수도권에만 몰리는 현상이 수십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데 이를 바로 잡을 힘을 가진 정치권이나 중앙정부는 입으로만 국가균형발전, 지방 살리기를 외칠 뿐 실제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게 현실이다. 현재 진행되는 대구경북행정통합 논의를 보는 지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보다 ‘실익이 뭘까’일 것이다. 제안 수준으로 제시된 대략적인 기본구상안을 놓고도 벌써 온라인에선 찬반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찬성 측의 의견은 대략 이렇다. ‘행정 절차가 단축되면 행정처리 지연으로 인한 손실과 행정 규제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인구 500만 명 넘는 지방정부는 정부와의 교섭 및 협상력이 강화될 것이다’, ‘수도권의 일방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반대 측 의견도 있다. ‘인구수만 불리는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식의 통합은 안 된다.’‘생활밀착형 행정이 더 요구되는 시대에 통합으로 행정비효율의 우려가 있다’, ‘재정, 권한 강화 없이 하는 행정통합은 하나 마나 한 것이고 세금만 낭비하는 것이다’.올해 초 출범한 대구경북통합연구단이 4월 제시한 기본구상안에 따르면, 대구시와 경북도는 1대1 통합을 원칙으로 한다. 또 기초지자체에 대해서는 경북 23개 시·군의 지위는 지금처럼 유지되고, 대구 8개 구·군은 유동적이다. 8개 구·군의 경우 통합 이후 대구시의 위상에 따라 지금과 같은 지위가 유지될 수도, 상실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앞으로 공론화위 등의 논의 과정에서 더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할 사안이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을 처음 제안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당시 올해 11월까지 주민투표 실시, 내년 6월까지 기본계획 수립, 그리고 의원입법이나 정부입법읕 통한 특별법 제정 등 구체적 일정까지 함께 제시한 바 있다. 당장은 시·도민들의 의견을 한 데로 끌어모으는 일이 선결과제인 만큼 공론화위가 우선 출범했다. 그러나 주민투표로 통합이 결정되더라도 헤쳐가야 할 앞길이 평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정부·여당의 행정수도이전 주장이나 다른 지역의 통합 움직임은 언제든 대구경북행정통합에 변수가 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행정수도이전의 경우 국가균형발전이나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지방의 통합 추진을 후순위로 밀어낼 수 있고 또 광주시와 전남도를 비롯해 대전시와 충남도, 부산시와 경남도 등의 통합론도 정치권의 이해와 맞물릴 경우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는 사안이다. 이참에 전국 단위 행정구역 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민주당 행정수도완성추진단장인 우원식 의원은 ‘전국 곳곳에서 통합 요구가 나오고 있어 이 같은 광역권 발전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여·야 합의로 관련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외에 행정대통합을 통해 지금의 수도권 단일 체제를 메가시티 단위의 다극 체제로 전환하고 장기적으론 연방제 국가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대구·경북으로선 모두 신경 쓰이는 것들이다. 국가균형발전을 앞세운 정치권의 정쟁에 휩쓸릴 경우 대구경북행정통합이 자칫 암초를 만날 수도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이 같은 상황 전개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날씨의 과거와 미래, 기상과학관  

김종석 기상청장“왜 이렇게 덥지?”, “바람은 왜 부는 걸까?”, “올해는 비가 왜 이렇게 많이 오지?” 이처럼 날씨와 관련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이 기상청에 있다. 기상청은 기상·기후서비스 제공을 주요 업무로 하는 국가 기관이지만 창의적인 기상인재 육성과 기상과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상과학관 건립’이다. 기상과학관을 통해 기상기후 지식을 보급하고, 재난안전교육, 체험교육을 통해 지역민의 위험기상 대응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또한, 맞춤형 교육으로 취약계층의 기상기후 교육의 갈증을 해소하고, 기상과 문화가 있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관광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기상과학관은 전국에 총 4곳이 있으며 2014년 대구기상과학관 개관을 시작으로, 2017년 전북기상과학관, 2020년 밀양기상과학관과 충주기상과학관을 신규 개관했다.또한 전북기상과학체험관을 확장 중에 있으며 홍성과 여수에 2023년 서해안기후대기센터와 해양기상과학관을 건립 예정이다.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은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약 53만여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가면서 지역 내 과학문화시설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12월 기후변화와 지진, 홍수 등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는 4D영상관을 새롭게 구축했으며, 올해는 2전시관에 태풍, 지진 및 지진해일, 기후변화, 열기구 등의 체험전시물을 새롭게 설치하여 관람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전북기상과학관은 기상과 천문이 융합된 국내 유일의 특성화 과학관으로 어른들에게는 동심을, 아이들에게는 꿈을 주는 과학관이다. 비록 소규모의 과학관이지만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관람객들에게 해설 및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기상과학지역교육센터 역할을 수행하기도 해 자유학기제를 시행하는 학교의 학생들이 체험 장소로 찾기도 하는데, 청소년 기상인 꿈꾸기 체험, 기후변화 이해하고 대학가기, 대학생! 미래 기상인 직업체험 등의 다양한 맞춤형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올해 5월 개관한 밀양기상과학관은 국민과 함께하는 소통형 기상과학 문화 플랫폼 구현을 목표로 대형 토네이도와 나만의 시크릿노트를 만나 볼 수 있다. 1층 기상현상관, 2층 기상예보관과 기후변화관 외에 기획전시관과 교육실, 특수 영상실을 갖추고 있다. 1층 기상현상관에서는 기상관측과 예보체험전, 기상현상의 종류와 기상요소에 대해 탐구할 수 있게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전시물들이 있다. 올해 7월, 개관한 국립충주기상과학관은 기상과학에 대한 이해 증진과 이상기후 및 위험기상에 대한 대국민 인식을 확산하고자, 충주시와 협력하여 충주시 연수자연마당내에 건립됐다. 날씨 속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체험형 과학관으로, 상설전시관은 기상현상 중심의 체험물로 구성된 5개의 체험존(기온, 바람, 태풍, 구름, 비와 눈)으로 구성돼 변화하는 날씨를 따라가며 쉽고 재미있게 기상과학의 원리를 체험할 수 있다.또한 유아전용 체험관과 날씨 관련 도서 1천여 권을 비치한 북카페가 마련돼 지역민을 위한 기상과학 문화의 장으로 활발하게 이용될 것으로 기대한다.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언택트 전시가 과제로 남아 있으나, 기상청은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특별행사를 통한 국민 참여 활성화와 과학관과 지역 유관기관 간 교류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다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준비된 전시, 체험, 교육, 문화행사 등이 제한적으로 관람 가능 하지만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많은 국민이 기상과학관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고향 가을/ 장식환

석류알 틈서리로/ 주홍빛 배어들어// 차라리 푸른 자락/ 외로 앉은 가을 하늘// 기러기/ 울음소리도/ 된서리에 떨어진다// 굽으로 돌아가는/ 이어지는 강물 소리// 하얀 뿌리 내리다가/ 꽃대공만 섰는 노래// 들창문/ 고운 살결에/ 빛이 되어 반짝인다// 아직도 두고 보면/ 고향산 먼 나루터// 노 저을 외진 길이/ 가슴에 와 놓이는데// 속새풀/ 바람에 날려/ 늦가을을 흩는다「대구시조 23호」(2019, 그루)장식환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7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연등 들고 서는 바다」 「그리움의 역설」 등을 펴냈다.가을도 초입을 지난 지 오래고 눈앞이 곧 추석이다. 매미울음은 벌써 그쳤고 산과 들의 빛깔도 완연히 달라졌다. 황금들판을 바라보면서 풍요로움을 느낀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문득 마음이 서늘해지면서 먼 옛날의 고향집이 생각난다. 아, 또 다시 가을이구나, 가을이 깊어가고 있구나, 라면서 얼마간 쓸쓸함을 느낀다.여기 가을을 맞은 이의 마음을 다독여줄 시가 있다. ‘고향 가을’이다. 마흔 해 전에 지면을 통해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석류알 틈서리로 주홍빛 배어들어 차라리 푸른 자락 외로 앉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데 기러기 울음소리도 된서리에 떨어진다. 고향 가을의 정취를 정감 있게 그리고 있다. 관찰에서 비롯된 섬세한 감각과 밀도 높은 서정성이 돋보인다. 이어서 화자는 굽으로 돌아가는 이어지는 강물 소리를 귀담아 듣는다. 또한 하얀 뿌리 내리다가 꽃대공만 섰는 노래가 들창문 고운 살결에 빛이 되어 반짝이는 것을 본다. 지극히 평화롭고 아늑한 정경이다. 향수에 깊이 젖어들게 한다.고향산 먼 나루터에 이르면 노 저을 외진 길이 가슴에 와 놓이는 것을 느낀다. 아직은 갈 길이 멀고 아득하다. 그 외진 길이 눈앞에 있는데, 이따금 고향 마을이 떠올라 마음 속 깊이 쟁여둔 그리움을 자아올린다. 몸에서 떠날 수 없는, 영원히 몸과 함께 할 고향이기에 속새풀 바람에 날려 늦가을을 흩는 그 어느 가을날 고향 강둑을 찾았을 법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남은 길에 대한 벅찬 예감과 기대로 옷자락을 한없이 흩날렸을 것만 같다.끝부분에 나오는 속새풀은 ‘고향 가을’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어로서 묘한 울림을 준다. 속새는 식물체 모양이 말 꼬리를 닮았고, 조상으로 치면 양치식물들처럼 족보가 아주 빠른 선조들 식물에 속한다고 한다. 어둠침침한 숲속의 습지가 고향인 늘 푸른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 풀이 결구에 놓임으로써 이 시편에 의미와 맛을 더하고 있다. 속새풀, 속새풀이라고 부르노라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깊어진다. 그것은 석류알, 주홍빛, 푸른 자락, 가을 하늘, 기러기 울음소리, 된서리, 강물 소리, 하얀 뿌리, 꽃대공, 들창문 고운 살결, 고향산 먼 나루터, 노 저을 외진 길이라는 애틋한 이미지들의 연첩으로 노스탤지어를 무한정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해마다 맞는 가을이지만 이번 가을은 더욱 다른 느낌이다. 전무후무한 난제가 쉬이 잦아들지 않고 있어서 그러하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속에 잠들어 있는 시심을 깨워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 길은 곧 시와 함께 하는 삶이다. 오래 전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 이가 있다. 「녹색평론」주간 평론가 김종철이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향한 열망을 품고 노력을 기울일 때다.그러기 위해서는 ‘고향 가을’과 같은 시편을 더 많이 찾아 읽어야겠다. 이정환(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