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학의 발자취 따라가는 특별전 ‘오늘의 문장들’ 대구문학관에서 열려

대구지역에서 발행된 독립출판문예지와 독립출판서점 간행물을 통해 근대문학의 중심도시역할을 해왔던 대구문학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의미 있는 전시가 대구문학관에서 열린다.지난 2016년 2월 출간해 올해 7월 폐간한 대구대표 독립출판문예지 ‘영향력’을 중심으로 지역 독립출판서점인 ‘고스트북스’, ‘더폴락’, ‘차방책방’이 지역문학에 미친 영향력을 조명해보는 전시다.‘오늘의 문장들’이란 주제로 진행되는 대구문학관의 이번 특별전은 현진건 등 전국 문인들이 기고해 근대문학사의 중요 사료로 활용되는 문예지 ‘여명’을 비롯해 ‘죽순’, ‘새싹’, ‘아동’ 등 해방 전후의 문예지가 전시된다.이와 함께 ‘전선시첩’, ‘전선문학’, ‘공군순보(코메트)’ 등 한국전쟁기의 문예지와 대구문학관이 소장한 자료도 함께 공개되고, ‘녹색평론’, ‘시와반시’, ‘사람의 문학’ 등 현재까지도 발행되는 지역의 대표 문예지 최신호도 함께 선보인다.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2016년 2월 창간해 올해 6월, 통간13호로 폐간된 독립문예지 ‘영향력’도 볼 수 있다.‘일과를 마치고 써내려가는 글’을 모티브로 전문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글을 투고 받아 출간하는 독립문예지로 이번 전시에서는 13종 모두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대구문학관 이하석 관장은 “지역에서의 문예지는 향토문학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역 지식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장이었다”면서 “많은 대구 문학인들이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글을 발표해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고 했다.지역의 독립출판 문예지와 각 독립출판서점들의 주제의식이 드러나는 출판물 전시를 통해 대구 문예출판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번 전시는 다음달 8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53-421-1231~2.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가을축제로 옮겨온 글로벌 뮤지컬 축제…‘제1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23일 개막

글로벌 뮤지컬축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DIMF)이 23일 개막공연을 갖고 다음달 1일까지 열흘간 모두 열 네 차례의 무대를 선보인다.특히 이번 개막공연은 딤프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비대면 콘서트(DIMF ON TACT) 형식으로 진행된다.매년 수만 명의 시민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개최되던 초대형 야외 뮤지컬 갈라콘서트의 감동을 온라인으로 생생하게 전할 이번 개막콘서트는 DIMF의 공식 네이버TV 국내 채널에서 무료로 송출된다.아울러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서비스인 OTT플랫폼을 통해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해외 유료 판매도 병행해 DIMF가 해외로 영역을 확장하는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어느 때보다 화려한 라인업으로 기대를 모으는 제14회 DIMF 개막콘서트에는 뮤지컬 배우 이지훈과 인피니트 김성규의 진행으로 마이클리, 김소향, 손준호, 정선아, 민경아, 박강현, 유회승(N.Flying)등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총출동한다.또 뮤지컬 ‘투란도트’, ‘그날들’, ‘라카지’ 등에서 작곡과 음악감독으로 활약한 장소영 음악감독과 공연을 진행할 ‘TMM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레퍼토리는 전 세계 뮤지컬 팬들에게 K-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이번 DIMF에서는 ‘창작지원작’ 4편 가운데 3편이 모두 행사 첫 주에 무대에 오른다.명작 ‘어린 왕자’를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새로운 전개 방식으로 풀어낸 브리즈뮤지컬컴퍼니의 가족뮤지컬 ‘생텍쥐페리’가 오는 25일까지 동구 아양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또 23일과 24일 이틀 동안은 멕시코화가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담은 DIMF 창작지원작 ‘프리다_Last Night Show’가 대덕문화전당에서 공연되고, 기생 ‘산홍’을 중심으로 펼쳐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이야기를 담아낸 ‘산홍’이 문화예술전용극장CT에서 각각 공연된다.지역을 대표하는 창작뮤지컬 두 편도 무대에 올라 축제 열기를 뜨겁게 달군다.초연당시 전회 매진을 기록하는 등 호평 받은 창작지원작 ‘이상한 나라의 안이수’가 5년 만에 달라진 모습으로 DIMF를 다시 찾는다.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중학생 ‘안이수’가 숫자로 가득한 신비한 나라로 빠져들게 된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수의 개념을 뮤지컬의 재미에 녹여낸 가족뮤지컬로 26일까지 서구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한다. 또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을 뮤지컬로 풀어낸 ‘기적소리’는 오는 25일까지 봉산문화회관 가온홀에서 공연된다.축제 개막과 함께 지난 13년간 DIMF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던 해외 공식초청작도 온라인 상영회를 시작한다. ‘마타 하리’, ‘넌 리딩 클럽’, ‘아이 러브 피아프’ 등의 작품이 온라인 개봉을 앞두고 있다.DIMF 배성혁 집행위원장은 “다양한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으로 코로나 시대를 견뎌내고 있는 시민과 문화예술인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행사”라며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방역관리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고 했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예술가 12인의 꿈을 그린 상상…어울아트센터 ‘꿈의 색, 꿈의 빛’

대구 행복북구문화재단(대표 이태현)이 지역 예술가 12인의 작품전을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한다.오는 24일까지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금호와 명봉 그리고 야외공원에서 진행되는은 김상열, 김재경, 심윤, 이우림, 임영규, 임창민, 조덕래 등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 12인이 참여한다. 각각의 공간 특성에 맞춰 설치된 회화, 조각,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미술경향을 소개하고 작가들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이번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은 산책하듯 작품을 관람하고 작가들의 꿈을 향한 고민과 노력의 결실, 그리고 꿈을 그린 상상과 마주하게 된다.특히, 이번 전시는 코로나19로 인해 전시장 방문이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어디서든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온라인 VR 전시’를 함께 진행한다.온라인 전시는 행복북구문화재단 홈페이지(www.hbcf.or.kr)에서 PC와 모바일로 누구든지 관람할 수 있다.한편, 전시기간 중 행복북구문화재단의 공식 SNS을 통해 참여 작가 12인의 작품 이미지를 담은 아트상품(마그넷)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문의: 053-320-5120.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국채보상운동을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기적소리’ 봉산문화회관 무대에 오른다.

국채보상운동을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기적소리’가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봉산문화회관 무대에 오른다.당초 2020 대구시민주간 특별초청공연으로 계획됐던 공연이지만 코로나19로 미뤄져오다 이번에 새롭게 보강한 버전으로 아홉 번째 무대를 갖게 된 것.뮤지컬 ‘기적소리’는 ‘지역특화문화콘텐츠개발사업’에 선정된 창작뮤지컬로 지난 2015년 초연된 후 41번의 공연 동안 모두 2만 여명의 관객을 모은 작품이다.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와 아역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더욱 풍성한 볼거리로 제공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식이 열린 대구역, 경상감영 교방, 달성학교 강당은 물론 대구에서 가장 번화했던 북성로 등 일제 강점기 대구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대구메트로아트센터 정판규 대표는 “나라 빚을 대신 갚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을 널리 알리고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지역 대표 콘텐츠로 육성할 것”이라고 했다. 문의 053-795-0303.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용학도서관 2020 길 위의 인문학 마지막 프로그램 ‘대구 제대로 알기’

대구 수성문화재단 용학도서관이 다음달 7일까지 ‘2020년 길 위의 인문학 - 대구 제대로 알기’행사로 ‘대구의 문화’를 돌아보는 행사를 진행한다.강연과 탐방형식으로 진행되는 ‘대구의 문화’는 용학도서관이 올해 진행한 길 위의 인문학 마지막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도서관은 ‘대구의 정체성’, ‘대구의 사회’란 주제를 연이어 다뤄왔다.이번 프로그램의 강연은 △10월23일 영남대 박승희 교수(국어국문학과)의 ‘대구 문화예술의 역사’ △10월30일 대구경북연구원 오동욱 연구위원의 ‘대구공회당에서 대구콘서트하우스까지’ △11월6일 인디053 이창원 대표의 ‘대구, 청년문화를 품다’란 소주제로 용학도서관 시청각실에서 각각 열린다.이어지는 탐방프로그램은 다음달 7일 영남대 박승희 교수(국어국문학과)의 안내로 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 오오극장, 대구음악창작소 등을 둘러본다.또 같은 날 오후 5시 용학도서관 시청각실에서는 경북대 김규원 교수가 ‘대구의 미래를 묻다’란 주제로 강연과 토론으로 진행한다.용학도서관 김상진 관장은 “대구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대구문화의 방향성을 알아보는 기회를 통해 대구의 미래를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길 위의 인문학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국비 공모사업으로, 용학도서관은 올해 8년째 선정됐다. 문의: 053-668-1725.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김미향 ‘저승 궁궐’ 수상소감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눈부신 햇살 아래서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상이라는 것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햇볕은 고운 빛깔 뽑아 가을을 물들이고 가을은 한 뼘 더 나 자신을 키우고 성숙되게 만들 것입니다.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 애썼습니다. 그런 생각이 깊어질 때면 심연엔 이러한 감정들이 오랫동안 살면서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옷자락에 매달린 바람을 묵묵히 바라봅니다. 어쩌면 내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붙잡고 끝까지 늘어지는 글쓴이가 되겠습니다.부족한 글을 선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더욱 정진하여 진솔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2013 대구일보 전국수필대전 동상△2014 대구일보 전국수필대전 입선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김미향 ‘저승 궁궐’

하늘이 몸을 연다. 주산이 붉은 눈을 뜬다. 크고 작은 무덤들이 섬처럼 떠 있는 산등성이에도 햇발이 비친다. 시공간을 넘어 천년을 오갈 수 있는 길, 왕릉 길 문턱을 조심스레 넘어선다. 과거를 잇는 탯줄 같은 좁은 길이 산잔등까지 이어진다. 낯익은 듯 낯선 땅. 태고의 숨소리로 가득한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길에 발을 들여놓는다.잿빛으로 박제된 옛 도시 곁에서 흐르고 있는 오늘의 풍경이 기묘하다.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길에서 문득 현실로 돌아오는 데는 길 중간중간에서 스치는 사람들을 볼 때다. 천오백 년이 넘도록 비바람에 씻기고 깎이면서도 제 모습을 잃지 않은 무덤은 단순한 비경이 아니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사였다. 이채로운 전경 속에 다채로운 삶이 널려 있는 곳, 양옆의 떼무덤을 뒤로하며 대가야 속으로 들어간다. 내 안에서도 지난날이 도도록하게 올라온다.봉긋하니 솟은 뒷산의 무덤은 철부지들의 놀이터였다. 솔가리를 긁어모으고 솔방울을 줍다 꾀가 나면 우리는 갈퀴와 포대 자루를 밀쳐놓고 다람쥐처럼 미뽈을 오르내렸다. 배고프면 삶은 고구마를 먹었고 묏등에 앉아 삘기도 질겅거렸다. 무덤을 미끄럼틀처럼 타고 노느라 땔거리를 주워오라는 어머니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크고 나서야 그곳이 문중 산이고 문중 어르신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눈앞에 놓인 이 무덤이 개구짓하며 놀던 그 묘지의 확대판 같다.가슴으로 들어온 풍경이 무시로 말을 건넨다. 알아들을 수 없다. 하지만 까마득한 옛 시대의 언어에 귀 기울이며 산길을 오른다. 숨이 차오를 즈음 능선을 뚫고 솟구친 소나무 앞에 도착했다. 늠름하다. 철갑을 두른 호위무사 같다. 그 뒤로 말로만 듣던 우리나라 최고 순장 무덤인 지산리 제44호분이 주산의 심장부를 타고 앉아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의 땅처럼 순수한 비경에 매료된다.첫 대면이다. 온몸의 신경이 깨어나 대가야의 숨결을 마주한다. 대체 고요한 이 땅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속이 궁금했지만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이미 마음은 무덤 속으로 스며들어 여기저기 둘러본다. 진짜 속살이 궁금해졌다. 천년의 시간이 불룩하게 쌓여 있는 고분에 인사를 건네며 돌아선다. 들꽃이 무덤가에 하얀 불을 밝혔다. 가야인들에겐 죽음으로 기억되는 자리지만 꽃엔 생명의 터전이다. 사멸의 땅에도 꽃이 피어났다. 뛰는 맥박을 느끼며 대가야 왕릉 전시관으로 걸음을 내밟는다.지산리 고분군 제44호.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해 놓았다. 마치 저승 궁궐 같았다. 왕의 자리인 으뜸 돌방이 가운데 있고 그 주변으로 2기의 딸린 돌방과 32기의 순장덧널이 있었다. 무덤의 주인은 왕을 지키는 호위무사를 비롯해 시녀, 마부, 농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왕이 죽으면 그와 같이한 사십여 명의 백성, 어린이도 예외 없이 묻는 순장 제도가 참 불가사의했다.마음이 뒤숭숭하다. 왕을 위한 삶이 죽음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산목숨을 생다지로 내놓아야 하는 민초들의 생을 생각하면 순장 풍습이 봉인된 제44호 고분군을 어찌 위대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주군이 딛는 걸음이 곧 길이 된 세상. 겉보기엔 웅장했으나 그 속엔 아프고 슬픈 이야기가 묻혀 있었다. 서민의 공포가 배어 있는 제44호분은 소리 없는 절규였다.순장 묘를 몇 번이나 에돈다. 맴돌 때마다 이웃 같은 익숙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아리따운 시녀와 믿음직한 호위무사, 두려움에 질렸을 앳된 소녀와 다정한 부부의 겁먹은 표정이 스쳐 간다. 어떤 종말인들 슬프지 않을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마지막 순간을 대면해야 하는 필연적 숙명 앞에 우리는 모두 한몸일 뿐이다. 무서운 죽음 앞에서의 몸짓을 상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 하지만 어쩌랴. 이 또한 지나간 역사인 것을.그들은 사라지고 이제 흔적만 뚜렷이 남아 있다. 울부짖었던 자리는 보고 느끼는 전시 공간이 되어 후세대를 불러들인다. 죽음으로써 끝이 아니라 후대들과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비상을 꿈꾼다. 뭔가를 지킨다는 건 그것이 존재했던 시간을 기억하는 것. 본래 것을 해치지 않고 재창조한 전시관은 그렇게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세월 속으로 사라질 뻔한 가야국의 흔적을 그대로 살리고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환상 같은 이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훗날, 이 순간도 역사의 한 부분이 되리라.대가야 고분의 내부를 엿보았다. 잔인했지만 지나온 것 또한 발자취라 생각하니 소란하던 마음이 조금은 고요해진다. 천오백 년 전 또래가 입었을 평상복을 가상으로 착용하며 가야 여인이 되어본다. 이야기를 쫓다 보니 알게 되었다. 지체 높은 귀족의 야심도 이름 없는 하인들의 목숨도 값진 역사라는 것을 말이다. 고대 도시는 이제 풍경으로 흐른다. 깊게 잠들어 있는 태고의 시간에 또 하루의 겹이 쌓여 풍광을 만든다.천년의 시간을 가까이서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에 물음표투성이일 때 한 번쯤 들러 그들의 문화를 접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실물 크기의 묘제와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함께 묻은 물건들이 문화가 되어 숨을 쉬고 있다. 많은 돌무덤은 옛 가야인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타임캡슐이자 멀고 먼 과거로의 여행을 도와주는 타임머신이었다.대가야 지산동 고분군은 이제 우리의 보물이 되었다. 책 속이 아니라 오늘의 이 작은 도시 고령에 온전히 살아 숨 쉰다. 가야의 모습을 복원해 나가면서 이천 년 역사의 도시로 거듭나는 이곳은 아직 끝나지 않은 한 권의 역사책이다. 페이지마다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걸음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펼쳐본 책장엔 바람의 걸음보다 사람의 발길이 더 오갔으면 한다.태양의 기운이 주산의 어깨 위로 흘러내린다. 저 산천초목들도 대가야의 흥망을 지켜보며 웃고 울었으리라. 가지를 늘어뜨린 늙은 나무들이 굽었으되 꺾이지 않은 대가야를 닮았다. 바람결에도 고대국가의 향기가 묻어나는 듯하다. 여기에서는 햇빛도 역사의 빛이고 바람도 역사가 담긴 바람이었다. 능선에 솟은 봉분을 머리에 이고 천천히 돌아선다.* 미뽈: 묘의 봉우리(경상도 사투리)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가을에 시 한편

가을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사춘기 시절 가슴 속에 품었던 시인의 꿈을 이 가을 다시 한 번 살포시 끄집어내 보자. 어느 결에 우리 곁에 온 이 가을이 더 멀리 떠나기 전에 모두가 계절을 노래하는 시인이 돼보자.◇회색도시/박주엽 지음/그루/168쪽/1만3천 원말하지 않는다고 흐르는 물이 멈추지 않는다/말 많은 세상 말 주워 담으려고 묵언 중이다/숲 속 새는 무슨 말을 하는지 주워 담지 못하겠다/입 꾹 다물고 즐거운 것과 꼭 남길 말만 눈에 담으니/언사안정이 묵언을 불러 박수로 화답 한다.‘한맥문학’ 시부문 신인상, ‘문학예술’ 시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박주엽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회색도시’가 도서출판 그루에서 출간됐다.작가가 8년 동안 짬짬이 써 놓은 시를 묶어 출간한 시집이다. 젊은 시절 하나둘 적어둔 낙서장 같은 글들을 정리해 펴낸 생애 첫 시집 ‘그림자’를 시작으로 ‘넝쿨’, ‘시들은 장미에 짙은 향기가 난다’ 등을 발표했다.시인은 “문학이 주는 의미는 세월을 비켜가지 않는다. 10년 전이고 20년 전이고 하물며 50년 전까지 들추게 하는 그것이 문학이 주는 힘이면서 산물”이라고 이야기 한다.창작시로 인권을 대변하고, 후세대를 위한 열린 세상의 작은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다는 시인은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인권시를 개척한 인물이다. 대구 북구문협 창립멤버이기도 한 시인은 이번 시집 출간과정에 커다란 고통과 슬픔이 배여 있다고 소개했다.이번 시집 ‘회색 도시’에는 가족 간의 꿈과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 비뚤어진 세상, 잘못된 모순의 사회상을 바로잡고자 한 시인의 소망이 가득 담겨 있다. 또 현상을 중심에 두고 세상 부조리를 눈여겨보며, 현실적 거리 감각을 유지하면서 유토피아를 찾아간다.그의 시 세계는 일상어의 어법과 호흡을 그대로 구사해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면서 사실 속의 신선한 생동감을 반영해 냈다는 평이다. 시인의 자아 세계가 다양한 어조의 변화와 더불어 긴밀하게 어우러진다.시인은 “시를 이야기하며서 기본 중심의 감각과 감성이 어우러진 객관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주관적이어야 하고, 기교(미사여구)가 들어가서도, 리얼리티를 상실해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오월의 바람/곽도경 지음/두엄/125쪽/1만2천 원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2020년 출판콘텐츠 창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곽도경 시인의 시화집 ‘오월의 바람’이 도서출판 두엄에서 발간됐다.‘오월의 바람’은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과 남편 김상곤씨의 사진이 함께 들어있어 읽을거리 볼거리를 함께 충족시켜 주는 시화집이다.시인의 시는 대체로 일상과 가족 그리고 풍경 등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여 진 시로 문단의 주류를 형성해 온 추상적 사고와 과도한 지적 경쟁의 사유를 벗어난 편안하고 따스한 시어들로 구성돼 있다.시집 속에 있는 그림 또한 시인의 소녀 시절 꿈을 엿보는 듯 추상적 풍경들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들을 추억 속으로 안내한다.시집 표지글을 장식한 김경호 시인은 “곽도경 시인의 시편에서는 ‘알을 품은 어미새’처럼 섬세한 시선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품어내는 ‘눈물 나는 봄날’ 같은 시심이 느껴진다. 이번 시집 속에 그녀가 만들어 놓은 시의 실핏줄을 따라가다 보면 아픈 이웃들의 마음마저 꿰매주는 ‘신기료장수’처럼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싯구들과 조우하게 되고 위로받게 될 것이다”고 했다.지난 봄 코로나의 공포가 대구·경북을 휩쓸고 지나갈 무렵 시인은 코로나를 기록한 대구의 시인들이 출간한 시집 ‘아침이 오면 불빛은 어디로 가는걸까’에도 시를 소개한 바 있다.대구에서 출생한 시인은 ‘시선’을 통해 문단에 선을 보였다. 시집으로 ‘풍금이 있는 풍경’을 발간하기도 했으며 화가이기도 한 그는 청도 북대암에서 ‘절간이야기’라는 시화전을 가진 바 있다. 또 지난해에는 ‘인연의 고리’라는 인물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2018년 고령문학상, 2019년 제5회 누리달 공모전 대상, 2020년 낙동예술대전 서양화부분 특선 등 여러 수상 경력이 있으며 현재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 보급운동 문학회 ‘시하늘’의 운영자 중 한 명으로 활동 중이다.◇끝은 끝으로 이어진/박승진 지음/창비시선/116쪽/9천 원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삶의 근원적 슬픔과 ‘목소리 없는 타자들’의 삶을 진솔한 언어로 기록해온 박승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끝은 끝으로 이어진’이 출간됐다.불혹을 넘긴 나이에 문단에 나온 시인은 묵묵하고 결연한 걸음으로 슬픔의 정서를 주조음으로 한 독특한 시적 문법을 구사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다져왔다.2011년 등단 4년 만에 첫 시집 ‘지붕의 등뼈’를 냈고, 2016년 ‘제2회 박영근작품상’에 이어 두 번째 시집 ‘슬픔을 말리다’로 제19회 가톨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은 실패와 소외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존재들과 자연에 바치는 송가다.시인은 탁월한 묘사력과 섬세한 언어로 삶의 진솔한 풍경을 담아내며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감동적인 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삶에 대한 성찰과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을 자아내며 가슴을 적신다.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늘 측은지심이 담겨 있는 시인의 시에는 슬픔과 허무가 가득하다. 사는 게 꼭 ‘거세당한 비육우 같다’는 삶의 비애가 잔잔하게 흐른다. ‘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던 초기의 애잔한 마음이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사무치는 듯하다.시인은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채 몸은 있어도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유령들과 같은 존재들에게 주목한다. 특히 삶의 종막에 이르거나 황폐해진 삶의 터전에서 뿌리 뽑힌 채 고독하게 죽어가는 소외된 ‘늙은 존재들’의 일생을 사뭇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삶의 진실한 의미를 되새긴다.한때 혁명을 꿈꾸기도 했던 시인은 이 세계가 살아 있는 고통의 형식이라고 여긴다. 시인이 살아가는 ‘지금-여기’는 ‘바닥’이고 ‘허공’이다. 시인에게 삶은 아무리 사력을 다해도 오르지 못하고 늘 문 앞에서 실패하고 마는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한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현대 개념미술을 소재로 한 연극 ‘유산 게임’ 봉산문화회관에서 공연

봉산문화회관과 지오뮤직이 연극 ‘유산 게임’을 오는 25일까지 봉산문화회관 ‘스페이스 라온’ 무대에 올린다.현대 개념미술과 미술시장을 소재로 만들어진 연극 ‘유산 게임’은 지난해 상주단체 레퍼토리 공연으로 초연되면서 현대미술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만 접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연극 ‘유산 게임’은 신체에 한계를 설정하고 그 한계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한 현대미술가 이건용 작가의 ‘신체 드로잉’ 방식을 모티브로 한다.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현대 미술작가 ‘백화수’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작을 가장 잘 해석하는 자녀에게 3천억 원 상당의 작품들을 남기겠다고 유언한다.그 유산을 둘러싼 세 명의 자녀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아버지의 작품을 해석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연극이다.지오뮤직은 연극 ‘유산 게임’을 시작으로 대구 중구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북성로 이층집’, 판소리 뮤지컬 ‘활극 심청’을 연이어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문의: 053-661-3521.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현대음악 속으로 한 걸음 더,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공연 ‘디퍼런트시리즈’

관객이 자주 접할 수 없었던 ‘현대음악’ 장르를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지역 음악가들의 해설과 연주를 곁들인 대구콘서트하우스 기획공연 ‘디퍼런트시리즈’가 오는 23일 열린다.창작음악 및 현대음악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대구콘서트하우스가 지난 2013년 재개관 이래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공연으로 이번이 12번째 무대다.20세기의 선율과 화성으로 재탄생한 신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디퍼런트시리즈는 지금까지 미국현대음악뿐만 아니라 윤이상, 강석희, 박영희 등의 작품을 다뤄왔다.아울러 대구지역 작곡가들의 창작곡 발표, 무용 및 미디어와의 협업, 신구의 조화 등을 선보이며 현대음악의 무한한 확장을 시도해왔다.이번 디퍼런트시리즈에서는 신고전주의를 중심으로 한 음악을 선보인다.고전주의의 명확한 조성감과 뚜렷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새로운 선율, 화성, 리듬, 조성, 관현악 어법 속에서 재탄생한 신고전주의는 낭만을 탈피해 간결하고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이후 신고전주의는 20세기 전반 세계음악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이번 무대에서는 힌데미트, 슈니트케,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그리고 바르톡까지 지나친 감성은 멀리하되 일반적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함과 예술의 일상성을 선보이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대음악의 진수를 느끼게 해 줄 이번 공연을 위해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이 의기를 투합했다.진행과 총감독을 맡은 권은실씨를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김지혜, 이강원, 안수영(플룻), 정혜진(클라리넷), 최용준(오보에) 등이 함께해 새로운 현대음악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대구콘서트하우스 이철우 관장은 “지역 작곡가들이 연구하고 심혈을 기울여 빚어낸 작품으로 20세기의 향취를 경험하게 될 무대”라며 “음악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며, 우리 시대의 창작도 후대에 계속해서 연주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 053-250-1400.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문화예술회관…가을과 함께 찾아온 국악 무대, 어린이 국악뮤지컬 등 공연 이어져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토돌이는 등굣길 학교로 곧장 가라는 엄마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장난감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지나가는 별주부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용궁에 가면 장난감과 사탕을 주겠다는 별주부의 말에 속아 토돌이는 바닷 속 용궁으로 따라간다.대구문화예술회관이 국악 저변확대와 문화 관객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를 위한 국악뮤지컬 ‘토돌이의 모험’을 오는 24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공연한다.어린이 국악 뮤지컬 ‘토돌이의 모험’은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전래동화 ‘별주부전’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각색해 국악뮤지컬로 완성한 작품이다.대구시립국악단을 중심으로 동·서양 악기가 하모니를 이루며 연극, 무용, 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한 무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종합예술 공연이다.지난 2017년, 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공연한 바 있는 ‘토돌이의 모험’은 이전보다 화려한 무대, 탄탄한 스토리와 음악으로 재구성해 대구시립예술단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작품이다.연출가 겸 작가로 활동 중인 손호석씨의 대본을 바탕으로, 김성경이 연출을 맡아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주인공 토돌이 역은 대구시립극단의 윤정화 배우가 맡고 별주부에 남준우, 용왕은 김현준 배우가 출연하고, 정가빈(토돌이 엄마), 정영래(여우)배우와 함께 지역의 젊은 소리꾼 김수경이 해설자로 나선다.이에 앞서 대구 두류공원 성당못의 명소 ‘부용정’에서는 특별 국악 기획공연 ‘귀정’이 열린다.오는 22~23일 이틀간 국악으로 힐링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이번 공연은 ‘어떤 일이 잘못돼 가다가 바른길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공연의 명칭을 ‘귀정’으로 정했다는 게 행사 관계자의 이야기다.오는 22일에는 대구시립국악단 가야금 수석으로 활동하는 김은주와 대금 수석 배병민, 타악 수석 김경동씨 등이 ‘가야금, 대금 정악합주’, ‘정악대금독주 상령산’, ‘양금, 단소 병주 세령산’,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를 들려준다.이날 무대의 소리에는 대구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이수자 양수진이 출연해 ‘흥부가’ 중 ‘박타는 대목’으로 흥을 더한다.23일에는 대구시립국악단의 피리 수석 김복희, 거문고 차석 김순녀, 해금 차석 이주영, 타악 수석 공성재 연주자가 ‘피리독주 상령산’, ‘합갑득류 거문고 산조’, ‘생황, 해금 병주 수룡음’, ‘지영희류 해금산조’등을 들려준다. 또 소리꾼 정지혜씨가 ‘춘향가’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대목인 ‘사랑가’를 공연한다.이번 공연은 실내공연장을 벗어나 대구의 명소인 두류공원 성당못의 부용정 정자에서 진행되는 이색공연으로 기대를 모은다.대구문화예술회관 김형국 관장은 “어린이를 위한 국악뮤지컬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국악을 통해 가을밤에 전하는 국악의 매력에 취해보는 시간”이라며 “특히 부용정은 매우 운치있는 장소로 우리 전통국악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귀띔했다.전석 무료로 진행되는 기획공연 ‘토돌이의 모험’과 ‘귀정’은 대구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해야 입장 가능하다. 문의: 053-606-6131.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고마리 ‘덴동어미화전가’ 수상소감

덴동어미화전가를 신문에서 보았다. 일부가 나온 것을 인터넷에서 전문을 찾아 읽었다. 거기에 ‘지지리도 복 없는 여자가 대성통곡하고 있었다’면 난 이 가사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종 주먹을 휘두르며 까탈을 부리는 생 앞에, 화전을 지지며 능청스레 응수하는 여인들. 기죽지 않는 입담과 들풀 같은 해학, 거기다 끈끈한 연대의 미덕까지 두루 갖췄다.요즘 유행하는 ‘센 언니들’을 만나는 것 같았다. 센 언니들은 지랄같은 인생에 환불원정대를 만들어 당당히 자기 몫을 요구하고 있었다. 굴종과 침묵 눈물과 비탄을 요구하는 시대 정서에 은근하면서도 당차게 맞서고 있다.무섬마을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덴동어미들을 만났다.반가의 뒤란에서 깊은 안방에서, 혹은 무심히 놓인 다듬잇돌에서 그네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몇 백 년을 뛰어 넘은 벅찬 해후였다. 반갑게 손잡고 내 등을 가볍게 다독일 것만 같은 따스함. 비단 봄볕의 온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경북 여행은 다닐수록 중독이 된다. 금맥을 캐듯 여기저기 묻혀있는 삶의 원형질을 만나는 까닭이다. 하여 바람구두를 신고 더 부지런히 다녀 볼 요량이다.습기를 털어 낸 가을바람이 맑고 까슬하니 좋다.△2010년 시문학 등단△시집 3과4 (2017)△2020년 모래톱 문학상 수상 외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고마리 ‘덴동어미화전가’

물 위에 섬처럼 떠 있는 마을. 내성천이 삼면을 휘감고 도는 물도리동 마을은 차라리 비현실적이다. 무섬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그제야 사람들이 발붙이고 사는 곳이란 현실감이 온다.마을에는 반가의 기품이 흐르는 고택이 여러 채 있다. 세월의 화살을 비켜간 듯 정정한 집들은 그 후손이 거주하는 곳도 있다.내 발길은 마을의 한 집 앞에서 멈췄다. 만죽재 고택 바로 옆의 김덕진 가옥이다. 성채처럼 견고해 보이는‘ㅁ’자형 본채와 작은 방앗간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구조다. 남정네들의 공간인 사랑채와 여인들의 거소인 안채가 한 몸처럼 붙어있는 게 독특했다.규방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탓에 고졸한 맛은 덜하다. 하지만 거처하는 사람의 불편을 담보로 하는 고택 보존은 좀 이기적인 데가 있다. 큰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조를 허용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부엌 뒤편에 숨기듯 자리한 아담한 방이 보인다. 가까이 갔다. 여인들은 이곳에서 바느질이며 마름질을 했을 것이다. 긴 노동의 시간을 달랠 노래와 이바구도 필요했을 것이다. 알음알음으로 규방의 언어인 한글도 익혔다. 사대부에게 멸시받던 한글은 여인들의 치맛자락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네들은 고달픈 일상사를 글로 짓고 읊조리며 위안을 삼았다. 작은 방에서 먼 옛날 여인들 가사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덴동어매하고 동네 여자들하고 봄에 화전놀이를 가그덩, 가가 잘 노는데 똑 내겉이 시집와가 이레 만에 천청상이 되뿐 색씨 하나가 한탄을 해 가매 우는 게라’ 요즘 말로 바꾸면 이렇다. ‘덴동어미하고 동네 여자들이 봄에 화전놀이를 가거든. 덴동어미가 참 잘 놀지. 그런데 꼭 나처럼 시집와서 일주일 만에 남편 잃고 과부가 된 색시 하나가 한탄을 하며 우는 게야.’세 번 개가해 네 명의 남편을 모두 잃은 덴동어미가 동네 여자들과 화전놀이를 가서 불렀다는 ‘덴동어매화전가’다. 주거니 받거니 울다 웃다 흐벅지게 불렀을 내방가사를 이 지방 여인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나는 댓돌에 앉아 환청인 듯 들려오는 화전가를 지그시 눈 감고 듣는다. 첫 남편은 그네 타다 죽고 두 번째는 괴질에, 세 번째는 익사하고 마지막 낭군은 불에 타 죽었다는 억세게 재수 없는 여자 덴동어미. 운명의 비정함에 굴하지 않고 활달한 기운마저 느끼게 하는 이 노래는 조선 여인들의 굴곡진 삶을 해학과 웃음으로 승화시켰다.뒤란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줌에도 여인들의 희로애락이 묻어온다. 고택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다. 바람이 일더니 갑자기 작달비가 내리친다. 처마 밑으로 화들짝 피했다. 뿌연 빗줄기 속, 삼 년 전 세상을 뜬 작은어머니의 일생이 문득, 덴동어매화전가에 오버랩 됐다.섬마을 큰애기였던 작은어머니는 열일곱에 동네 언청이 총각에게 팔리듯 시집갔다고 한다. 마음 맞춰 살다 보니 아이도 생기고 살림도 늘었는데 새우잡이 나갔던 낭군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는 친정에 맡기고 등 떠밀려 재가를 했다. 야속하게도 나이 차 많았던 남편이 폐병으로 먼저 가버렸다. 동네 사람들이 팔자 더러운 년이라 손가락질했다. 친정 옆 동네에서 새우젓 장사를 열어 억척스레 살았는데 우리 작은아버지와 눈이 맞아버렸다. 다시는 재가하지 않겠다고 머리털을 움켜쥐며 맹세했지만, 사람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세 번째 신랑이랑 재미나게 사는데 그동안 설움을 모두 갚고도 남을 만큼 행복했다. 천성이 다정했던 작은아버지는 작은어머니를 애기라고 부르며 업어주고 예뻐했다. 그런 통에 어린 내게 부끄러운 장면을 몇 번이나 들키기도 했다. 하지만 덴동어미보다 생의 결이 고왔던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작은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낙상 사고를 당했다. 시멘트를 들고 비계를 오르다 추락했다. 작은아버지는 오래도록 병상에 있었다. 입술이 허옇게 부르튼 작은어머니는 혼잣말로 입술을 달싹이곤 했다. 처음엔 넋두리라고 지나쳤는데 어느 날 잠든 작은아버지 곁에서 흐느끼듯 읊조리는 노래를 들었다.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마냥 슬픈 느낌은 아니었다. 애이불비의 정서가 덴동어미와 작은어머니를 연결하고 있었다.비 그친 마당을 나서 외나무다리로 갔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덴동어미들과 화전가가 있을까. 깊은 규방에 갇혀 삼종지도를 강요받았던 여인들은 또 다른 덴동어미였을 것이다.무섬마을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마저 사친의 정을 사무치게 했을 것이다. 예전 무섬마을의 유일한 통로였던 외나무다리는 길이가 150m에 폭은 30cm에 불과하다. 길고 가늘게 설움을 삭혀야 했던 여인들의 심중을 보는 것 같다. 폭이 좁아 긴 장대에 의지한 채 건너야 했던 것처럼 여인들은 서로를 부축하고 지지했을 것이다. 나는 양팔을 벌려 중심을 잡으며 걸었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을 말갛게 흐르는 강물이 보듬어 주는 것 같았다. 오뚝이 같은 여인들은 끝내 이 다리를 건너 어머니를 만나고 말았으리라. 누구나의 가슴마다 애이불비의 화전가는 불려지고 흘러나갔을 것이다.멀리 비단처럼 휘감아 도는 내성천이 보이고 강 따라 펼쳐진 은모래 백사장이 반짝인다. 바닷가 백사장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넓이와 기세다. 자기 삶 앞에 당당했던 덴동어미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 다리를 되돌아와 마을 한가운데로 갔다. 만운고택이 있다. 시인 조지훈의 처가라고 한다.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외씨버선처럼 뽑아낸 시인의 처가답게 운치 있다. 지훈의 시비도 보인다. 무섬마을의 절경을 노래한 ‘별리(別離)’라는 시다.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나즉히 흰 구름은 피었다 지고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초록 저고리 당홍치마 자락에말 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이 땅에 살다 간 수많은 덴동어미의 넋을 위로하는 걸까. 이어지는 촉촉한 시어에 마음이 아릿하게 스며든다. 어느새 구름 걷히고 햇빛이 쨍하게 비석을 비춘다. 가라앉았던 마음도 햇살처럼 튀어 오른다. 스마트폰으로 화전가를 검색했다.‘이내 수심 풀어내어 이리저리 부쳐보세천만 첩이나 쌓인 설움 웃음 끝에 하나 없네 ’아픔마저 꽃전으로 부쳐 내던 덴동어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무섬마을에 가득하다. 개가를 포기한 청상은 어떻게 살았을까. 씩씩한 화전가를 만들어 굽이굽이 불렀을까. 수도교를 빠져나와 국도를 달린다. 무섬마을이 실타래처럼 오래 풀리고 있었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수성아트피아…바로크시대 작품을 아우르는 ‘바흐 사이클 시리즈’

음악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대작곡가들의 명곡을 한 무대에 올려 그들의 생애와 음악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기획된 수성아트피아의 ‘사이클 시리즈’ 올가을 무대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다.무반주 바이올린·첼로 모음곡과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 바로크시대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바흐 사이클 시리즈’는 오는 21일과 22일 이틀간 모두 세 차례의 무대를 갖는다.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앞둔 지난해 사이클 시리즈로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전한바있는 수성아트피아는 올해 ‘바흐’의 작품을 다룬다. 예술감독은 경북대학교 김호정 교수(첼로)가 맡는다. 올해 ‘바흐 사이클 시리즈’는 3파트로 이틀간 나눠 공연된다.21일 오후 2시에는 ‘바이올린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이 연주된다.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으로 구성돼 기교는 물론 음악적 깊이를 갖춰야 소화할 수 있는 곡으로 알려졌다.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일컬어지지만 정해진 해석이나 테크닉이 없어 바이올리니스트 혼자 끝없는 한계에 부딪혀야하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현악 3중주’와 ‘바로크 실내악’ 작품들을 선보인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원래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 된 곡이지만 최근에는 현악 3중주로 편곡하여 많이 연주되고 있다.이 곡은 반복하지 않고 전곡 연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50분 정도로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단일 작품으로는 유례없는 긴 연주시간과 큰 형식을 가지고 있다.골드베르크 변주곡 외에도 바흐의 트리오 소나타, 오케스트라 모음곡 등을 바이올리니스트 김나연, 송정민, 비올리스트 이수민, 첼리스트 김호정, 더블베이시스트 조재복, 플루티스트 안명주, 쳄발리스트 아렌트 흐로스펠트가 함께 연주한다. 22일 오후 7시30분에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이 연주된다.각각 여섯 개의 악장의 구조를 지니고 있고, 역사상 무반주 첼로 솔로를 위해 쓰인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악기 하나로 긴 시간동안 공연되는 바흐 무반주 공연은 어떤 연주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공연이지만, 연주자등에게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곡이기도 하다.이 음악은 베를린 이 무너진 곳에서 9·11 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연주될 만큼 위로와 평화의 음악이다.첼로리스트 이언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과 6번, 이윤하가 2번과 4번, 김유진이 3번과 5번을 연주한다. 수성아트피아 정성희 관장은 “무반주 전곡 시리즈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이번 기회에 바로크 시대를 느껴보는 소중한 경험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석 2만 원으로 수성아트피아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다. 문의: 053-668-1800.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지역예술인 역량강화를 위한 ‘제4차 멘토스쿨’ 개최

대구예술인지원센터는 지역예술인 역량강화를 위한 제4차 멘토스쿨을 개최한다.오는 28일 북성로 ‘대화의 장’ 카페에서 진행될 이번 멘토스쿨의 주제는 ‘포스트 코로나, 축제의 미래’로 축제기획자 황운기씨가 멘토로 나선다.대구컬러풀페스티벌 총감독인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변화하는 축제의 방향성과 진화하는 축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이번 멘토스쿨에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세계축제의 여러 사례와 현황을 분석해보고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선제적 대응 방안도 탐색해 보는 자리를 갖는다.대구예술인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멘토스쿨은 코로나19로 예술활동과 프로모션이 어려워진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준비한 멘토링 프로그램이다.문화예술계 저명인사를 초청해 급변하는 시대에 예술가의 생존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전략과 창의적 사고, 지속가능한 예술 활동에 대한 길잡이 역할로 매월 1회씩 진행 중이다.문의: 053-430-1231.서충환 기자 seo@idaegu.com